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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05. 2023

걱정은 걱정을 먹고 자란다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걱정 없이 살면 사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재미있게 사는 사람은 걱정이 없을까? 걱정이 없기 때문에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걸까? 짐작건대 우리 주변에 걱정 없이 사는 사람 없다. 저마다 이런저런 고민과 걱정을 갖고 살기 마련이다. 다만 크기를 키우지 않는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부터 생각하는 걸 걱정이라고 한다. 그러니 실체가 없다. 바꿔 말하면 생각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걱정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리부터 걱정하기 때문에 스스로 고단한 삶을 산다. 걱정이 걱정을 먹으면서 자라듯이 말이다.


2013년, 다니던 직장에서 3개월째 월급이 안 나왔다. 다음 달에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월급 못 주는 걸 미안해하지 않는 대표의 태도도 괘심해 그만두지 못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못 받은 월급을 받아내겠다고 다짐했다. 옮길 직장도 알아보지 않았다. 고만고만한 직장으로 옮기느니 다른 직업을 가져보고 싶었다. 직업을 바꿔보겠다는 각오와 못 받은 월급을 받아낼 각오로 이곳에서 버티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동료인 홍대리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기로 했다.


휴업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 눈치 보지 않고 공부했다. 퇴사한 게 아니니 출근 시간을 지켰다. 업무 대신 수험서를 폈고 동영상 강의를 들었다. 공부하는 중에도 꼭 필요한 업무는 계속했다. 못 받은 월급을 받기 위한 법적 조치도 함께 진행했다. 대표에게 숨겨놓은 재산은 없는지 찾았고, 법의 도움을 받기 위해 법률공단, 노동부를 쫓아다녔다. 그때는 자격증 시험도 중요했고 월급을 받아내는 것도 중요했다. 둘 다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공부보다는 못 받은 월급 받아내는 게 더 시급한 문제였다. 그러니 공부가 생각만큼 잘되지 않았다.


일 할 시간에 공부하는 게 편치 않았다. 솔직한 심정은 못 받은 월급을 받아낼 방법이 있었다면 거기에 매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몇 달을 매달려 법으로 할 수 있는 조처는 다 했다. 이미 내 손을 떠났고 법의 도움만이 남았다. 남은 건 새 직업을 위해 자격증 공부에 집중하는 것뿐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다. 아니 마음이 불안하니 몸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 같다. 월급을 다 받아낼 수 있을지 막연했고, 공부를 한다고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덜 불안하고 덜 고민하기 위해 시작한 공부였지만 걱정만 더 커지고 있었다.


6개월 동안 시험 준비를 했다. 시험을 두 달 앞두고는 매주 모의고사와 오답 풀이 스터디도 했다. 그즈음 압류했던 장비에 대한 경매도 마무리되었다. 8백만 원을 받아냈고 3천만 원 정도는 받을 방법이 없어졌다. 1년 넘게 매달렸지만 노력에 비해 성과가 미미했다. 체불 임금은 일단락되었고 남은 건 공인중개사 시험이었다. 월급이라도 다 받아냈다면 그나마 시험에 부담이 덜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시험의 불안은 못 받아낸 금액만큼이나 커져 있었다. 시험 날이 다가올수록 차분할 수 없었다.


동차 합격을 목표로 공부했지만 나는 1차만 합격하고 홍대리는 2차까지 붙었다. 자격증을 딴 홍대리는 공인중개사 사무실로 직장을 옮겼다. 한 번 더 시험을 봐야 했던 나는 다시 직장을 구했다. 자격증도 없이 공인중개사 일을 시작하는 게 불안해서 다시 건설회사를 찾아 이직했다. 직장을 다니며 2차 시험을 준비했다. 이미 직장을 구한 터라 공부가 절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일을 한다는 핑계로 공부하는 척만 했고, 결국 2차 시험에 불합격했다. 직장을 다니고 있던 터라 도전이 절실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공인중개사를 포기했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할 때 마흔이었다. 체불 임금도 다 못 받고 직장도 구하지 못했을 때였다. 그때까지 직업에 대한 고민 없이 직장에만 매달려 살았다. 새로운 직업으로 공인중개사를 준비했지만 불안과 걱정을 이기지 못하고 시험에 떨어졌다. 10년 넘게 해 왔던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도 불안했고, 시험을 잘 볼 수 있을지 걱정됐고, 그 일이 나와 맞는지도 알 수 없었다. 불안, 걱정, 고민만 이어졌고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1년 넘게 공부한 보람도 없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고 8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일을 해오고 있다.


"상황을 바꿀 방법이 없다면 아무리 걱정을 하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는가?"

《느긋하게 웃으면서 짜증 내지 않고 살아가는 법》 - 브라이언 킹


그때는 불안과 걱정에 먹이 주지 않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 당시 불안과 걱정은 실체가 없었다. 시험에 대한 걱정은 시험을 보기 전까지는 결과를 알 수 없다. 체불 임금을 위해 경매 결정을 받아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경매를 통해 얼마를 받게 될지는 내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걱정과 불안에 먹이를 주기보다 내 손에 들린 수험서에 최선을 다하는 거였다. 매일 정해놓은 분량을 채우는 꾸준함이 어쩌면 불안과 걱정에 먹이를 주지 않는 방법이었을 것 같다.


무언가 걱정거리가 머릿속에 들어차기 시작할 때면, 뇌가 달콤한 활성화를 원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무언가를 하면 된다. 책을 읽어라. 산책하라. 설거지를 하거나 거실을 청소해라. 재미있는 TV 쇼를 시청하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해라. 어떤 짓이든 상관없다. 말 그대로 어떤 행동이든지! 걱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각이 올라탄 기차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뇌의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고 상상해라.

《느긋하게 웃으면서 짜증 내지 않고 살아가는 법》 - 브라이언 킹


우리는 걱정을 안 하고 살 수 없다. 걱정을 대신할 무언가 있다면 덜 걱정할 수 있다. 독서, 산책, 취미, 집안일, 글쓰기 같은 방법이 도움이 된다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행동을 한다고 당장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걱정에서 한 발 떨어질 수는 있다. 여전히 걱정을 갖고 산다. 8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걱정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늘 따라다니는 걱정에게 에너지를 빼앗기기보다 눈에 보이는 독서와 일기 쓰기에 집중한다. 손에 잡히는 성과에 집중하려 노력 중이다. 또 어떤 문제로 걱정하는지 글로 쓰면서 생각을 전환하려고 한다. 정답은 아니지만 쓰지 않았을 때보다는 걱정의 크기가 줄어드는 느낌이다. 며칠 동안 쓰고 나면 불안의 크기도 줄어드는 것 같다.


실체가 없는 걱정으로 불안해 하기보다, 독서, 산책, 글쓰기 같은 몸을 움직이거나 지금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행위로 도움받을 수 있다. 이런 행동을 꾸준히 한다면 걱정의 크기는 줄고, 줄어든 만큼 재미가 커질 거로 생각한다. 다행인 건 돈이 들거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소보다 조금 더 부지런하면 막연한 불안과 걱정으로부터 가벼워질 수 있다. 무얼 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나처럼 매일 10분 동안 일기를 써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하루 10분으로 걱정이 줄어든다면 충분히 시도해 볼 가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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