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할 일 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할 때
우리 네 식구 중 둘째 딸만 성향이 정 반대다. 어쩌다 잠깐 둘째가 없을 때면 집은 절간 같이 적막하다. 나와 아내도 대화가 적은 편이고, 큰 딸도 식사 때 말하나 둘째와 놀 때 말고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둘째는 우리 표현으로 자유로운 영혼이라 부른다, 대부분의 행동이 의식이 흐르는 대로 이어진다. 단 1분도 느긋한 시간이 없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걸어 다녀 본적이 없다. 언제나 멈춰 있지 않으면 뛰어다니는 두 행동으로 구분된다. 아이를 가만히 두고 보면 매 순간 하고 싶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부모 눈치 안보고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찾아 쉴 새 없이 하고 있다. 인형을 잔득 꺼내놓고 상황 극에 몰입하고, 스케치북을 펼쳐 놓고 떠오르는 대로 그려 내고, 재활용 박스를 몇 시간씩 자르고 붙이며 작품을 만들어 낸다. 하고 싶은 걸 끊임없이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해야 할 것도 있다. 학습지를 시키면 표정이 굳어진다. 안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취학을 앞두고 있어 걱정이 앞선다. 기본기는 다져놓고 보내고 싶은 부모 욕심이랄까. 어쩌면 부모의 불안을 없애기 위해 아이에게 해야 할 일을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 든다. 정해진 분량을 급하게 풀고 다시 하고 싶을 걸 찾아 나선다. 아이도 조금씩 배우고 있다.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다는 걸. 해야 할 걸 하고 나야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를.
나도 둘째처럼 하고 싶은 것만 하던 때가 있었다. 커갈수록 하고 싶은 건 줄고 해야 할 것 들이 늘었다.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해야 했고,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스펙을 쌓아야 했고, 승진을 위해 자기계발 해야 했고, 더 많은 월급을 위해 끊임없이 일을 해야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경제적 여유까지 갖는 건 꿈같은 얘기였다. 20여년 이어온 직업은 하고 싶은 것 보단 해야 하는 일이 되어 있었다. 스스로 선택했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나랑 안 맞는단 생각이 강해졌다. 그렇다고 다른 일을 찾아볼 용기가 없었다. 그때까지 해온 게 아까웠고, 다른 걸 찾을 노력도 안했다. 다른 분야 도전에 앞서 실패 걱정이 앞섰다. 해보지 않고 겁부터 먹었다. 자연히 해서는 안 된다고 결론 나 있었다. 하루는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의 연속이다. 정해진 시간 잠을 깨는 건 직장을 가기 위한 것이고, 일은 하는 건 월급을 벌기 위한 것이고, 회식은 조직 생활에 낙오되지 않기 위한 것이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돈 걱정 없이 삶을 즐기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만 만나는 싶었다. 정도전은 고려 말 엘리트 관료였다. 사신을 맞이하라는 왕명을 거역한 결과 7년간 유배 살게 된다. 해야 할 일을 거부한 결과가 긴 시간 유배로 이어졌다. 하지만 반전은 이때부터다. 유배 이후 그는 서민의 삶속으로 들어간다. 백성들이 어떤 삶을 살고 무엇이 문제인지 하나씩 알아간다. 그렇게 수년을 방랑하며 민심을 읽어갔다. 민심을 읽고 꿈을 갖게 된다. 희망 없는 고려를 대신 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만들어낸 나라가 조선이었다. 정도전은 조선을 준비하며 원대한 꿈을 가졌다. 수도를 옮겨 새로운 도시를 만들었다. 도시의 기본계획 까지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그가 줄을 그으면 길이 되었고, 점을 찍으면 집이 되었다고 한다. 또 통치의 근간이 되는 법전을 구상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게 경국대전이었다. 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다. 타성에 젖은 여느 관료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면 그에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철학과 원칙 있는 삶을 살았기에 새로운 세상을 열고 싶은 열망도 꿈도 갖게 되었다 생각한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 ‘불혹’ 이라한다. 40대면 세상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나이라는 의미이다. 어느 정도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쉽게 흔들리지 않는 입지를 굳혀가는 시기이다. 하지만 요즘 세태엔 더 많이 흔들리는 때 인 것 같다. 기대 수명 80살을 기준으로 보면 40대는 절반이 지난 시기이다. 정년 이후 새로운 삶을 준비하기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노후를 준비하고 싶어진다. 40대는 실패해도 덜 부담스러운 나이라는 인식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걸 찾아보려고 한다. 이때까지 해야 하는 일을 해 왔다면 다음은 하고 싶은 걸 찾아야 한다.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지만 실상은 호락하지 않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취미가 직업이 된다는 의미의 ‘하비프러너’라는 신조어가 있다. 평소 관심 갖고 꾸준히 공부해온 취미를 통해 새로운 직업으로 발전시키는 사람들이다. 관상어에 취미를 갖고 있던 30대는 상권과 상관없는 곳에 다양한 관상어를 갖춰놓은 매장을 열었다. 온라인으로 소문이 나자 하나 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도심에서 프랜차이즈 매장 내는 것과 비교도 안 될 비용으로 자신의 새로운 일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취업 준비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시작한 달리기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이도 있다.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달리기를 할수록 재미를 갖게 되었고, 체계적인 연습을 통해 풀코스 마라톤을 몇 차례 완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체계적인 훈련 경험과 달리며 느꼈던 감정들을 정리해 한 권의 책을 내게 되었고 이후 건강과 관련 된 컨텐츠로 발전시키며 어느새 어엿한 기업을 운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흔에 시작하는 은퇴 공부』의 저자 백만기 작가는 하비프러너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은퇴 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그도 직장을 다니며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음악과 미술을 좋아한 그는 직장 생활 틈틈이 밴드 활동과 미술공부를 했다고 한다. 또 글쓰기를 좋아해 일찍부터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고 한다. 이런 활동은 직장 생활에 지장 없는 범위에서 꾸준히 이어 왔다. 그를 은퇴의 걱정에서 자유롭게 해 준건 이런 취미들 덕분이라고 한다. 새로운 기회는 그동안 이어온 취미를 통해 찾아왔다고 한다. 음악을 좋아한 취미는 합창단, 음악 동호회 등을 지속하며 왕성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고, 미술을 좋아한 취미는 큐레이터 일을 경험해 볼 수 있었고, 글쓰기 취미는 다양한 매체에 기고를 통해 책 출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위해 시간을 할애 했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갔기에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이런 사례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결코 남의 얘기만은 아니다. 나이에 얽매여 시도조차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일단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잊고 있던 꿈도 좋고, 동경하던 취미도 좋고, 꼭 도전해보고 싶은 것도 좋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보고 싶은 한 가지를 찾아낸다. 평일과 주말 시간을 활용해 배워보는 시간을 갖는다. 성과가 나올 때 까지 꾸준히 노력해 본다. 성과가 나오기 전에 포기하면 자신과 맞는지 알 수 없다. 짧게는 1~2년, 길면 4~5년 노력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일인지 확인해 봐야 한다. 설령 생각했던 결과가 아니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을 했고, 이를 통해 또 다른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과정은 새로운 기회가 되어준다. 은퇴 이후가 걱정 없는 새로운 일을 갖게 된다면 몇 년의 투자는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다.
40대 초반으로 접어들며 은퇴 이후를 걱정하게 되었다. 그동안 건설업계에 있었지만 내 성격과는 안 맞는 걸 알기에 다른 일을 갖고 싶었다. 고민해 봐도 언제나 답은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경력과 경험을 살려 관련 된 사업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같은 업종의 뜻 맞는 친구와 사업 구상도 해 봤다. 아니면 누구처럼 없는 돈 끌어 모아 잘나가는 프랜차이즈 매장하나 차릴 고민도 했었다. 생각의 끝에 걸리는 한 가지는 실패에 대한 부담감이었다. 적성에 안 맞는 업종에 오래 있었던 경험하나 믿고 그 길에 다시 뛰어드는 건 자신 없었다. 자영업자 60%가 3년 내 망한다는 현실에서 버텨낼 자신도 없었다. 망하는 60%가 내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걱정이 걱정을 낳는 꼴이었다. 해보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며 시도조차 안하고 있었다. 망설이던 내 엉덩이를 걷어 차 준 것이 책이었다. 책을 읽으며 이런 걱정을 씻어 낼 수 있었다. 책을 통해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큰돈 들어갈 일도 없고, 실패의 걱정도 없었다. 몇 년 책 읽는다고 그 시간을 낭비하는 건 결코 아니었다. 책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다 생각하면 기꺼이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한 권 두 권 쌓이며 생각에도 변화가 생겼다. 글을 한 편 두 편 쓰면서 새로운 꿈도 갖게 되었다. 2년 넘는 시간 책 읽고 글을 쓰며 새로운 직업을 꿈꾸게 되었다. 지난 2년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기회가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해왔던 일을 이어가는 건 어려워진다. 사회에서도 더 이상 찾지 않는다. 노동력이 줄어들수록 선택할 수 있는 일도 좁아진다. 가족 부양의 의무는 끝이 없다. 나이 들수록 가진 재산이 없으면 제대로 된 부양을 받지 못한다는 농담 섞인 걱정이 현실이 되어간다. 은퇴이후도 일정한 수입을 필요로 한다. 연금에 의존하며 살기엔 그간의 경력과 경험이 아깝다. 이럴 때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고 싶은 걸 찾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열심히 탐색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도 있다. 무엇을 찾고 선택하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나이를 떠나 즐겁게 할 수 있게 된다. 즐기다 보면 돈은 자연스레 따라 온다. 하고 싶은 일을 통해 삶의 만족도는 높아진다. 삶에 만족하면 돈을 좇을 이유도 없어진다. 오히려 돈이 당신을 좇아 올 것이다. 은퇴이전 까지 ‘해야 할 일’로 삶에 최선을 다했다면 은퇴이후는 ‘하고 싶은 일’을 통해 그동안 애쓴 나에게 행복을 선물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