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마음대로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고만고만한 인생을 산다. 살다 보면 여러 고비를 만난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길 바랄 때도 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또 다른 불행이 이어진다. 이런 일이 한 번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파도치듯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끝날 것 같지 않은 불행에도 해 뜰 날이 온다. 어쩌면 불행의 기준은 저마다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다. 내 기준이 아닌 남의눈에 맞추려니 행복도 불행으로 여기는 게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돌이켜보면 여태껏 살아오는 동안 내 뜻대로 된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스물네 살, 제대 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남는 게 체력이라 몸을 써서 돈을 많이 받는 일을 찾았다. 실내 천장 마감 팀 조공으로 시작했다. 자재를 나르고 작업 발판을 조립하고 작업 보조로 일했다. 일당은 6만 원이었다. 한 달 20일만 일해도 120만 원이었다. 이 정도만 벌어도 자취는 물론 학비까지 충당할 수 있었다. 두 달까지는 순조로웠다. 월급을 두 번 나누어 받았고 그중 절반은 깔고 갔다. 다음 달에는 한 달 치를 못 받았지만 일은 계속했다. 일감이 줄었는지 하루 걸러 하루 쉬었다. 시간이 갈수록 쉬는 날이 많았다. 결국 한 달 치 월급은 돈이 생기는 대로 주겠다는 말을 끝으로 실직자가 됐다. 혈기 왕성한 20대였다. 일자리는 또 구하면 된다고 나를 위로했다. 이제 시작이었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근근이 생활비만 버는 정도였다. 독립을 했다. 아는 형이 운영하는 고시원에 한 달 20만 원짜리 방을 빌렸다. 복학을 하면서 6시간 일하고 한 달에 80만 원 받은 자리를 구했다. 병원 원무과 차트 관리 업무였다. 몸을 쓰지도 머리 굴리지도 않는 업무였다. 요즘 말로 꿀 빠는 일이었다. 졸업할 때까지 착실히 다니면 학비와 생활비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6개월을 못 넘겼다. 고시원을 운영하는 형이 사업을 시작했다. 나에게 함께 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당장에 원하는 만큼은 못 주지만 비전은 명확하다고 했다. 자신만 믿고 따라주면 충분히 보상하겠다고 했다. 평소 믿고 따랐던 형이라 딱 하루만 고민하고 선택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을 4년 반 동안 함께 했다. 그동안 월급은 열 손가락을 못 채웠다. 일하는 시간보다 일을 준비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무위도식이나 다름없었다. 직장 경험이 없던 나는 일머리도 몰랐다. 시키는 일도 잘 못했다. 그 형도 의욕만 앞설 뿐 체계나 노하우가 없었다. 여러 번 실패를 반복했다. 결국 어느 날 기약도 없는 야반도주로 모든 게 산산조각 났다. 내 손에는 돌려 막기로 쌓인 카드빚만 남았다. 서른 살이었다. 나를 위로할 기운도 없었다. 끝은 아니었지만 막막했다.
운 좋게 직장을 구했다. 친구가 꽂아준 자리였다. 서른에 전공이 다른 직장 다운 직장을 가졌다. 이제 갓 졸업한 20대 신입과 다를 게 없었다. 어쩌면 더 불리한 조건이었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이를 물었다. 그 모습이 좋게 보였는지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끈기 없는 성격 탓에 한 직장에 오래 다니지 못했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 학교도 갔다. 입학 후 15년 만에 졸업했다. 서른다섯이었다. 그때까지 전공과 다른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러니 졸업장은 별 의미 없었다. 그나마 고졸은 아니어서 서류전형은 근근이 통과했던 것 같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렵다고 했다. 한 번 직장을 옮기니 두 번 세 번은 일도 아니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직장을 옮겼고 15년 동안 9번 이직했다. 굴 직한 프로젝트를 경험하지도, 기술 자격증을 따지도, 나름의 노하우도 갖지 못했다. 맹숭맹숭한 직장인이었다. 이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그렇다고 잘하지도 못했다. 나이만 먹었다. 정신 차려보니 마흔셋이었다. 막막했다. 내가 나를 위로할 만큼 잘 살았는지 모르겠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나보다 더 불행한 일을 겪은 사람도 있다. 이 정도 일은 힘든 축에도 못 낄 수도 있다. 고통에는 절대적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 저마다 느끼기 나름이다. 남과 비교해 내 불행의 크기를 가늠하는 게 보통이다. 정작 중요한 건 남과 비교가 아닌데 말이다. 나의 과거가 힘들고 불행했다고 여기면 좋은 면이 안 보인다. 찾아보면 분명 좋은 일도 있었고 행운도 따랐다. 여전히 사는 게 막막한 사람 있을 테다. 나만 일이 안 풀리고 나에게만 안 좋은 일이 생기다고 여긴다. 마음먹기 나름이다.
나도 지난 20여 년 동안 되는 일이 없었다. 내 뜻대로 되기보다 안 된 일이 더 많았다. 잘 될 거라는 희망보다 그냥 살았던 것 같다. 살다 보면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싶었다. 다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때려치울 용기도 못내 억지로 끌려다녔다. 생각해 보면 이런 나도 이제까지 살아왔다. 보잘것없는 인생이었지만 그런대로 살아냈다. 삶이 막막하다면 지금 이 글에서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다 풀어놓지 못했지만 이보다 더한 일도 겪으면 살아내는 중이다. 그러니 이런 나를 봐서라도 용기를 한 번 더 냈으면 한다. 모를 일이다. 한 번 더 용기 냈을 때 바닥을 딛고 수직으로 솟아오를지 말이다. 앞일은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