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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l 25. 2023

인간관계의 유통기한

인간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단다. 표현이 기가 막히다. 한편으로 많은 의미가 담긴 것 같다. 유통기한을 넘긴 음식은 상한다. 상한 음식은 다시 못 먹고 버리는 게 답이다. 인간관계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원해진다. 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연락하는 게 어려워진다. 그렇게 멀어지고 회복할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상해서 버려지는 음식처럼 말이다.

대인관계를 잘하는 사람의 특징이 있다. 평소 연락을 자주 한다는 거다. 별일 없으면 없다고, 일이 생기면 일 때문에 연락한다. 연락받는 쪽은 언제나 상대방이 나를 생각한다고 느낀다. 마음이 고맙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스스럼없이 연락을 주고받게 된다. 특별한 목적 없이 그저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방법인 것이다.

사람 사이 문제가 생기는 건 이해관계 때문이다. 조건 없이 주고받기 보다 준만큼 돌려받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그러니 나에게 이득이 안 되는 사람은 멀리한다. 반대로 도움이 될만한 사람이면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해관계 따지지 않고 늘 같은 마음가짐으로 상대를 대하는 사람이 더 많은 걸 얻는다. 누구나 아는 진리이다. 알면서도 잘되지 않는다. 아마도 아는 대로 행동한다면 언제 어디서나 환영받는 사람이 될 테니 말이다.

20대 때는 곧잘 연락하고 지냈다. 먼저 찾아가는 편이었다. 오라는 사람 없어도 갈 곳은 많았다. 찾아다니는 노력 덕분에 찾는 사람도 많았다. 서른 넘어 잦은 이직과 결혼으로 인간관계도 소원해졌다. 백수로 지내는 시간, 마뜩잖은 직장, 나에게 불만이 쌓일수록 사람을 멀리했다. 연락 횟수가 점차 줄었다. 내가 안 하니 상대방도 안 한다. 딱 그만큼의 관계였던 것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그런 사이가 되었다.

살다 보면 사람이 필요한 때가 꼭 온다. 어쩌면 그 한 번을 위해 평소 관계를 잘 만들어놓으라고 조언을 하는 것 같다. 맞는 말이다. 부탁할 일은 때때로 생긴다. 그때 아무렇지 않게 연락할 수 있을 만큼 관계를 만들어 놓는 게 능력이라고 한다. 능력이라고 하지만 별것 없다. 가끔 먼저 연락하는 게 전부이다. 쉽지만 아무나 꾸준히 못 하는 게 문제이다. 일이든 관계든 꾸준한 사람이 득을 보는 게 진리이다.

새 책 출간에 앞서 추천사를 부탁했다. 한 분은 흔쾌히 허락했다.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한 분은 1년 만에 연락하려니 한참 망설이게 됐다. 그나마 좋은 일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응해주셔서 더없이 감사했다. 그러고는 지난 1년을 후회했다. 그런 사람 되지 말자 했지만 그러고 있으니 말이다.

예약 판매에 들어가면서 고민이 깊어졌다. 출판사에서는 이 기간 동안 제법 팔려야 브랜딩에 유리하다고 했다. 판매는 작가의 역량이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내 책을 알리고 구매할 수 있게 만드는 게 글재주보다 더 필요하다. 어쩌면 잘 파는 능력이 글재주 있는 작가로 포장하는 것일 수 있다. 결국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글이 좋은 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기가 막힌 책을 써도 팔리지 않고 읽히지 않으면 빛을 못 보니 말이다. 판매와 담을 쌓고 오로지 글만 쓰는 작가도 제법 있을 터다. 나는 생계가 달린 문제라 판매 부수에 연연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사람이 더 절실해졌다.

발을 담그고 있는 단톡방을 다 뒤졌다. 자주 연락하는 몇 명을 빼고는 길게는 1년 이상 조용한 곳도 여럿 있다. 배고픈 사람이 밥상 차린다고, 아무렇지 않은 듯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인사 뒤에는 예약 사이트 링크를 올렸다. 못마땅해하는 사람 분명 있을 터였다. 그래도 상관하지 않았다. 반응이 오면 오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응했다. 따지고 보면 그들 중에도 나처럼 아쉬울 때 찾는 사람 분명 있다. 망설이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얼굴에 철판 한 번 깔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게 지금 나에게 필요했다. 적어도 한 명이라도 책을 사준다면 고마울 따름이다.

어쩌면 유통기한이 지난 인간관계라도 붙잡고 싶은 게 요즘 심정이다. 한편으로 후회도 든다. 싱싱할 때 지키지 못했다는 게. 관계는 기브 앤 테이크가 정석이다. 준만큼 돌려받게 되어있다. 대단한 걸 주는 게 아니다. 그저 평소에도 상대방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표현하는 게 전부다. 전화 한 통, 문자 하나면 충분할 테니 말이다. 그 쉬운 걸 꾸준히 하지 못해 늘 아쉬운 소리만 하게 된다. 사회적 동물로 살려면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실수를 반성하면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 그동안 관계의 유통기한을 잊고 산 실수를 반성한다. 반성은 하지만 쉽게 고쳐지지는 않을 것 같다. 오래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새로 만드는 관계에도 애정을 부어야 한다. 어떤 관계이든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테니. 한 가지, 적어도 아쉬운 소리 안 하게끔 노력할 필요 있다. 꼭 나의 필요에 의해서 상대를 찾는 게 아니더라도 상대가 나를 언제나 찾게 하는 것도 원만한 인간관계에는 꼭 필요하다.

성능 좋은 냉장고 한 대 장만해야겠다.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면서 유통기간 긴 인간관계로 유지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