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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l 24. 2023

작가가 책을 사달라고 말하는 게 격 떨어지는 행동일까?


작가는 글만 쓰는 사람이 아니다. 책을 낸 작가는 책을 팔 줄 도 알아야 한다. 생산과 영업을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한다. 기가 막힌 글을 써낸다면 영업은 저절로 된다. 나는 아직 기가 막힌 글을 못 쓴다. 그래서 영업을 해야 한다. 주변 사람에게 내가 책을 냈다고 알려야 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길이 없다. 내가 책을 냈다고 뉴스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쓰는 것도 고된 작업이다. 책을 파는 건 더 고된 과정이다. 영업을 업으로 사는 직장인이나 사업가에겐 익숙할 수 있다. 물건만 바뀌었을 뿐 팔아야 하는 본질은 똑같을 테니 말이다. 나도 책을 팔기 전에 두어 가지 팔았던 경험이 있었다.


군대 제대 후 첫 아르바이트가 여성 구두 판매점이었다. 2만 원부터 10만 원 이상 다양한 신발이 구색을 갖춘 매장이었다. 전직 복싱 선수 출신인 사장은 수완이 좋았다. 때로는 무심하게 때로는 살갑게 동네 아주머니를 들었다 놨다 했다. 나도 옆에서 그가 하는 멘트를 따라 했다.


나는 성격이 반대였다. 조곤조곤, 때로는 부끄러웠고, 가끔은 손님의 기에 눌려 한 마디 못하기도 했었다. 그럴 때면 눈치 빠른 사장은 나 대신 거친 손님에게 신발을 팔아 내는 신공을 발휘하기도 했다. 몇 개월 근무하면서 제법 능글맞게 농담을 건넬 정도가 되었다. 레자를 가죽이라고 진실처럼 말해야 하는 게 불편했다. 불편한 진실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그만두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영업을 했던 장소는 대형 마트 수산 코너였다. 위아래 흰색 조리복과 장화를 신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흰색 비닐 앞치마가 유니폼이었다. 나만 입었다면 창피해서 못 입었다. 함께 일하는 모두 같은 복장이었다. 복장 통일은 동질감을 일으킨다. 아군이 있기에 전장에서 싸울 용기가 충만했다.


주말 오후면 진열대 생선보다 많은 사람이 매장을 채웠다. 그들에게 한 마리라도 더 팔기 위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온갖 생선 이름 외쳤다. "고등어 한 손 3,900원", "삼치 1마리 4,500원", "갈치가 2마리에 9,900원". 매대 앞을 지나는 한 사람이라도 눈길을 돌릴 수 있게 배에 힘을 잔뜩 주고 외쳤다. 목소리가 커지는 만큼 생선 손질 담당도 바빠졌다. 네댓 시간 악을 쓰고 나면 매대도 바닥을 드러냈다. 우리 체력도 바닥났다. 준비한 생선이 사라지는 게 보이니 더 악착같이 팔았다.


20대 때 일이다. 군기가 바짝 들어 못할 게 없을 때였다. 20년도 더 지났다. 지금은 못 하는 게 더 많아질 나이다. 그때처럼 하라고 하면 얼굴부터 붉어질 것 같다. 그렇다고 영업을 안 하는 건 아니다. 요즘은 다른 형태의 영업을 하는 중이다. 내가 나를 파는 중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리면서 나를 선택해 달라고 영업 중이다.


책도 같은 의미에서 썼다. 내가 어떤 일을 겪었고 그 일을 통해 많은 사람이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길 바라서다. 내 책을 선택하면 삶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다고 홍보하는 중이다. 물건을 써보지 않고는 좋은 점을 알 수 없다. 책도 마찬가지다. 읽어보지 않고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다.


믿고 사는 책은 대개 검증된 작가가 써낸 책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름 석 자가 브랜드인 작가 말이다. 나는 이름 석 자는 있지만 브랜드는 아직이다. 브랜드를 갖기 위해 부지런히 책도 팔고 나도 팔아야 한다. 20대 때의 패기를 다시 끄집어내고 싶다. 얼굴에 철판 몇 장 깔고 여기저기 아무에게나 내 책을 팔고 싶다.


브랜드가 부족해 인터넷에 홍보해도 체감을 못 한다. 홈쇼핑처럼 판매 실적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구매 인증 사진을 보내주지 않으면 샀는지 안 샀는지 알 길이 없다. 그저 샀겠거니 믿을 뿐이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2년 반 걸렸다. 투고 후 6개월 만에 계약했다. 계약 후 다시 6개월 만에 파기됐다. 1년 남짓 퇴고를 거쳐 다시 투고했다. 연락 온 출판사는 계약 대신 공모전에 응모하자고 제안했다. 한 번 더 퇴고 후 응모했다. 떨어졌다. 다시 퇴고했다. 그리고 투고했고 계약했고 책이 나왔다.


단 세 줄로 요약했지만 그 시간은 나에게 많은 걸 남겼다. 이제까지의 과정은 무엇보다 내 책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계기였다. 물건이 좋으면 긴 말 필요 없다. 물건이 스스로 영업을 한다고 할까. 내 책도 그렇다. 누구에나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내 책을 읽으면 분명 책을 읽기 전과는 달라져 있을 거라고.


레자를 가죽으로 속이는 게 싫었다. 아무리 언변이 화려해도 레자가 가죽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없는 일을 지어내며 그럴듯해 보이는 책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도 안 된다. 오로지 내가 경험하고 느끼고 깨달은 내용만 담았다. 그래야 한다. 그래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내 책을 안 읽으면 손해라고. 읽기 전까지 계속 남의 텃밭에서 감자만 캐고 있을 거라고.


이런 글이 작가의 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작가의 격은 무엇일까? 책을 썼으니 알아서 사서 읽어줄 거라고 두고 보는 걸까? 아닐 테다. 오히려 내 책에 자긍심을 갖고 한 명이라도 더 말을 건네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영업 사원이 실적으로 말을 하듯, 작가도 판매 부수로 브랜드가 만들어진다. 당당하게 내 책을 홍보하는 게 작가의 격이 아닐까? 남의 입을 빌려 홍보하는 바이럴도 도움이 되겠지만, 무엇보다 작가가 스스럼없이 알리고 홍보하는 게 더 효과 있을 거로 생각한다.


작가를 직업으로 선택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책이 팔려야 생계에 도움이 된다. 책을 팔려면 나부터 당당해져야 한다. 내가 2년 반 피 땀 눈물 흘리며 써낸 책이다. 누구보다 아끼고 귀한 책이다. 그러니 더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이 변화와 마주했으면 한다. 이 책이 실마리가 되어 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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