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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l 16. 2023

그렇게 삶은 나아지는 중이다


M7412 버스는 23분 뒤 도착 예정. 9700번은 회차지 대기. 때마침 9711번이 도착했다. 상암동을 통과하는 노선이지만 다른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다. 논현동, 신사동을 지나 올림픽대로로 빠지는 교차로에 멈췄다. 멈춰 선 자리에서 꼼짝 안 한다. 몇 분째 두고 보던 승객도 하나 둘 고개를 든다. 버스기사도 상황 파악이 끝났는지 핸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바로 한남대교로 올라탄다. 강변북로를 이용하려는 것 같다. 그곳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차선을 가로질러 신호 대기 중인 맨 앞차 앞에서 유턴을 감행한다. 내가 상대 운전자였다면 욕이 나올 만큼 거침없었다. 며칠 동안 이어진 비로 도로는 제 기능을 못 했다. 거기에 주말을 즐기는 차량이 늘어나며 말 그대로 주차장이나 다름없었다.


유턴한 버스는 강변북로로 진입하지 않았다. 다시 한남대교 남단으로 향했고 올림픽대로로 진입했다. 이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올림픽대로를 달리던 버스는 얼마 안 가 또다시 반포대교로 올라탔다. 반포대교 북단에서 강변북로로 진입했다. 1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강변북로에 올라선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하철 탈걸. 후회해도 이미 내 몸은 버스에 실려 있었다. 버스 좌석 중 좋아하는 끝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아 헤드폰을 쓰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면서부터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아침에 쓰다가 멈춘 글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바깥 상황이 신경 쓰여 고개를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그러니 글도 쓰다 안 쓰다 반복 중이었다. 버스가 강변북로에 올라섰을 즈음 남은 글을 마무리했다.


풀리지 않는 정체와 남은 거리를 감안하니 적어도 1시간 이상 더 걸릴 것 같았다. 휴대폰 배터리는 26% 남았다. 남은 시간을 버틸 수 있을지. 새벽에 쓴 글을 '일산 아지매' 카페에 올렸다. 조회 수가 2천을 찍었고 댓글도 열 명이나 남겼다. 답글을 남기는 데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버스는 여전히 강변북로 위를 기어가는 중이었다. 가만히 있자니 몸이 근질거려 다시 블로그를 열었다. 9시부터 5시 반까지 이어진 '해나경 고시원 클래스' 정규 강의 후기를 썼다. 후기를 쓰는 데 30분 남짓 걸렸다. 그 사이 버스 정체도 풀렸고 강변북로를 벗어나 상암동으로 들어섰다. 다 쓰고 나니 버스는 행신동을 지나고 있었다. 강남역에서 버스를 탄 지 2시간 정도 지난 뒤였다.


두 시간 동안 음악을 들으며 여러 종류의 글을 썼다. 에세이 한 편, 강의 후기, 댓글에 답글을 적었다. 2시간 동안 오롯이 글만 썼다. 중간중간 버스가 어디로 얼마큼 갔는지 확인하면서 말이다. 같은 버스를 탄 사람들은 저마다 할 일을 하면서 같은 시간을 보냈다. 누구는 잠을 자고, 누구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누구는 게임을 또 누구는 동영상에 심취해 있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데 평소보다 두 배는 더 걸렸다. 버스에 갇혀 옴짝달싹 못했다. 그 시간 동안 무얼 할지는 저마다의 선택이다. 늘어난 차로 정체되는 도로에 갇히면 짜증부터 난다. 짜증이 난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앞 차가 가야 내 차도 갈 수 있다. 그저 앞차 꽁무니만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풀릴 일이다. 그러니 버스 안에 있는 동안 무얼 할지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잠을 자든, 음악을 듣든, 동영상을 보든, 멍을 때리든 저마다의 선택이다. 그중 어떤 시간이 더 가치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같은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선택에는 좋고 나쁨이 없는 것 같다. 그 순간 내린 선택은 자신이 원하는 걸 했을 뿐이다. 다만 선택의 결과로 무엇을 얻게 되었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두 시간 동안 숙면을 취했다면 피로가 어느 정도 풀렸을 것이다. 정체되는 동안 좋아하는 음악에 심취했다면 감성이 충만해졌을 수 있다. 옆 사람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면 그 또한 소중한 시간이다. 답글을 달고 후기를 적으며 여러 사람과 글로 소통했다면 의미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인생은 주어진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며 자기만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의미와 가치를 만들지는 오롯이 자신의 선택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그저 자신이 선택한 삶을 잘 살고 있는지 매 순간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며 조금씩 나아지는 삶으로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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