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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l 26. 2023

감정과 잘 지내고 있나요?


신림동에서 대낮에 묻지 마 칼부림이 있었다. 피의자는 자기만 불행한 게 싫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아마도 그런 감정을 오래전부터 느꼈을 것 같다. 되는 일도 없고 빚도 지면서 희망이 보이지 않았을 터다. 그런 불만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분노의 감정으로 표출되었고, 결국 흉기를 사용해 사람을 해하는 행동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사람이 분노를 느끼고 상대방을 해하기까지 6초가 걸린다고 했다. 6초를 견디지 못해 살인도 일어나고 폭행과 상처 주는 말까지 내뱉게 된다. 6초는 아주 짧은 시간이다. 6초쯤이야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6초는 충분한 동기를 일으킬 수 있는 시간이다. 사람의 생각은 0.7초마다 바뀐다고 했다. 이 말은 감정도 그만큼 빨리 변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바꿔 말하면 6초 동안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면 행동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말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행동에도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갈피를 못 잡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직장도 내 뜻대로 구해지지 않았다. 어렵게 구한 직장도 오래가지 못했다. 일이 내 마음대로 안 되니 불만이 쌓였다. 성격이 소심해 감정을 드러내지도 못했다. 술자리에서도 신세를 한탄하기보다 속으로 삭이는 편이었다. 남들처럼 속 안에 감정을 풀어내지 못했다. 술자리가 끝나도 볼일 보고 뒤처리를 제대로 안 한 것처럼 찝찝했다. 시간이 갈수록 감정의 찌꺼기가 그대로 남았다. 쌓이면 썩는 법이다. 썩으면 냄새가 고약하다. 고약한 냄새는 내 주변 힘없는 아이들에게 스며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내가 풍기는 썩은 내를 고스란히 맡아야 했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6년 전까지 그랬다. 6년 동안 읽고 쓰면서 내 몸에서 나던 썩은 내를 지워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감정을 통제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감정이 사라진 건 아니다. 여전히 누구나 느끼는 그런 감정을 갖고 산다. 상사 때문에 화도 나고,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사소한 일에 짜증 내기도 한다. 사는 모습이 거기서 거기여서 느껴지는 감정의 종류도 고만고만하다. 차이가 있다면 그런 감정들로 인해 일상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가장 큰 변화는 감정과 상관없이 해야 할 일은 한다. 외부 사건은 언제나 일어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은 내가 통제할 수 없다. 상사가 화내는 건 내 의지와 상관없다. 아이가 내 말을 듣지 않는 것도 내 뜻이 아니다. 그런 모든 상황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나의 태도와 감정뿐이다. 화나는 감정을 선택하면 행동도 그렇게 된다. 짜증을 선택하면 행동도 그렇게 된다. 반대의 감정을 선택하면 행동도 달라진다. 성인군자 같은 소리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당연히 어렵다. 하지만 고민해 볼 문제이다. 감정을 잘못 선택한 탓에 삶을 의지대로 살 수 없다면 말이다.


가장 적절한 예로 월급쟁이를 들 수 있다. 월급쟁이도 사람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온갖 일 다 겪는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일도 감당해야 하는 게 그들의 숙명이다. 그래도 그들이 꿋꿋이 직장을 다닐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월급이라는 진통제가 있기 때문이다. 내 감정에 따라 행동한다면 하루에도 수백 번 때려치웠을 거다. 그놈의 월급이 발목을 잡고 있기에 다시 감정을 추스르고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한다. 아무리 감정이 날뛰어도 월급이 모든 걸 통제한다. 이 말은 일상에서도 감정을 통제하는 무언가 있다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책을 1시간 읽으면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다고 했다. 감정을 통제하는 데 독서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책 읽는 동안 적어도 내 문제에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지금 문제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또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내 문제가 크지 않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독서가 아니어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어떤 것이든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글을 쓰는 게 가장 효과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도 이제까지 경험해 왔고, 주변에도 나와 비슷한 경험한 이들이 셀 수 없기 때문이다. 효과가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글을 쓰는 건 내 감정이 형태를 드러내는 거나 다름없다. 갇혀 있던 감정을 종이 위해 표현하는 것이다. 글로 적다 보면 그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눈으로 보게 된다. 실체가 드러난 감정은 대응이 가능해진다. 두려움을 느끼는 건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두려움의 실체를 알면 두렵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감정도 같은 원리이다.


글로 내 감정을 적어보면 다음 단계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월급쟁이가 감정에 휩쓸려도 아무렇지 않게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게 월급 때문이듯. 글이 일종의 진통제가 되는 것이다. 진통제를 자주 맞으면 중독된다. 월급쟁이도 월급에 중독되었기 때문에 좀비처럼 매일 출근할 수 있다. 글도 매일 쓰다 보면 적어도 내 감정을 자연스럽게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내 감정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 자연히 외부 자극에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습관을 만들거나 목표를 이룰 수 있게 해 준다.


신림동 묻지 마 살인도 결국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결과였다. 살인을 저지르고 나쁜 말을 뱉어 내는 것도 잠깐의 화를 참지 못해서이다. 감정을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다. 통제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런 노력이 결국에는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감정 통제는 남을 이해하고 나를 아끼는 방법이다. 분명 과정은 어렵다. 어렵다고 감정에 휘둘려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감정을 통제함으로써 내 삶이 달라질 수 있다면 충분히 노력해 볼 가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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