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Jul 27. 2023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 간다


누구나 잘하는 한 가지가 있다. 직장인도 맡은 업무 외에 유머 감각이 탁월하고, 화술이 뛰어나고, 공감을 잘하고, 임기응변에 능한 이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어디서나 자기만의 색을 드러낸다. 물론 일에서도 탁월한 역량을 보인다. 못하는 게 없는 것 같아 주변의 부러움을 사면서 한편으로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들을 동경해 자신을 더 성장시키려 노력한다. 반대로 누군가는 이들을 시기하며 깎아내리려고 한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이다. 우리 대부분은 남들과 구분되는 자기만의 존재감을 갖고 싶어 한다.


존재감은 어떻게 드러날까? 직장에서는 대개 직함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 능력에 따라 직함이 주어진다. 나이와 경력이 많아질수록 직위가 올라가던 시대는 지났다. 어린 나이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면 높은 자리에 앉는 요즘이다. 그들의 탁월함은 애써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빛이 난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결과가 곧 그들의 존재감인 것이다. 그들은 성과를 내기 위해 치열하게 도전과 실패를 반복한다. 그 과정이 오롯이 그들을 말해준다. 주변 사람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가치를 인정한다. 결국 존재감은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과정을 통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무색무취 직장인이었다. 일도 잘하지 못했고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는 재능도 없었다. 시키는 일도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었다. 늘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노력하고 애쓰는 모습을 보였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 같다. 노력은 성과가 말해준다.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건 노력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과정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성과도 없으니 존재감도 없었다.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할수록 스스로 움츠러들었다.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 되어 갔다. 고만고만한 회사로 옮기면서 역량을 키울 기회도 점점 줄었다. 13년 동안 아홉 번 직장을 옮긴 게 그 결과다.


지금 다니는 곳이 아홉 번째 직장이다. 2018년 5월 입사했다. 업무적으로 탁월한 기량을 보이지 못했다. 어느 정도 존재감이 있는지 가늠이 안 간다.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상사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잘 모르겠다. 꼭 필요해서인지, 대체할 사람을 못 구해서인지, 연봉이 저렴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어떤 이유이든 내가 생각하는 나는 그다지 존재감은 없는 것 같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주어진 업무보다 딴짓에 더 열중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책 읽고 글 쓰는 게 불법은 아니지만 좋게 보는 것도 아닌 게 현실이다. 적어도 지금 직장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생망'은 '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의미이다. 이제까지 '직장 생활'은 이생망이다. 직장은 언제든 한 번은 퇴직해야 한다. 그 시기는 스스로 정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게 정해지면 남들보다 일찍 퇴직을 감행할 수 있다. 반대로 할 일을 찾지 못하면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까지 버티고 버티려고 할 테다. 다행히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지금은 퇴직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퇴직을 쉽게 결정한 건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에 더 용기를 내려고 한다. 앞으로 가고자 하는 길에 조금씩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성과가 나오면서 존재감도 조금씩 모양새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6년 전 시작한 책 읽고 글쓰기가 좋아하는 일이 되었다. 좋아지면서 잘하고 싶었고, 잘하고 싶은 만큼 더 노력하는 중이다. 노력만 한다고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노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성과물이다. 지금까지 종이책, 전자책 포함 9권을 냈다. 물론 돈이 되고 이슈가 된 책은 아직이다. 나만의 성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주춧돌을 놓는 중이다. 좋아하지 않았다면 이 시간을 견디지 못했을 것 같다. 눈앞에 성과만 쫓았다면 벌써 포기했을 것 같다. 6년 동안 만들어온 성과가 남들에게 그저 그래 보여도 나에겐 더없이 값지다. 예전의 나라면 엄두도 못 낼 성과였고 이만한 꾸준함도 없었기 때문이다.


몇 개월에서 몇 년 애쓴 책이 한 권씩 나올 때면 내 존재의 이유를 입증하는 것 같다. 대중을 움직일 만큼의 영향력은 없다. 그럴 욕심도 없다. 내 이야기가 내 주변의 몇몇에게 전해져 작게나마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어둠을 밀어내는 햇빛처럼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닿길 바란다. 이제까지의 과정과 앞으로의 시간을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존재감의 크기도 자랄 거라 믿는다.


조정래 작가의 존재감은 글을 써온 50년이 말해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존재감은 그동안 써온 수많은 소설이 말해준다. 봉준호 감독의 존재감은 아카데미 감독상이 아닌 상을 받기까지의 과정이 말해줄 테다. 과정이 없는 결과는 없다. 과정을 건너뛴 결과는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과정에 충실한 사람에게 보상처럼 결과가 주어진다. 결과가 쌓이면서 존재감도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난다. 조급해하거나 남들과 비교할 필요 없다. 존재감은 스스로 빛이 나기 마련이다. 그러기 위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한 눈 팔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나를 믿으면서 말이다.





<직장 노예> 예약 판매 중


직장 노예 | 김형준 - 교보문고 (kyobobook.co.kr)


알라딘: 직장 노예 (aladin.co.kr)


직장 노예 - YES24



매거진의 이전글 감정과 잘 지내고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