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 언니다

by 김형준

일요일에도 수업을 듣는 아내.

일요일에도 학원에 가는 큰딸.

일요일에도 친구 만나 춤연습 한다는 작은딸.

일요일에도 강의안 만들고 글 쓰는 나.


집에서 수업 듣는 아내를 두고 두 딸과 밖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부녀끼리 점심이다.

언젠가부터 둘의 식성이 달라졌다.

메뉴 고르는 게 남북통일보다 어렵다.


나는 물냉면, 큰딸은 냉메밀, 작은딸은 치즈 돈가스.

구성은 다양했지만 맛은 단순했다.

각각 한 입 씩 먹었지만 셋 다 만족하지 못했다.

역시 푸드코트는 선택이 중요하다.


둘째는 점심을 먹고나도 단맛이 당기나 보다.

언니 팔을 붙잡고 공차에 가자고 울부짖는다.

이럴 때 큰딸은 대개 쌀쌀맞게 뿌리치고 만다.

'왜 저래'라는 썩소를 날리면서.


오늘은 뿌리치치도 썩소를 날리지도 않는다.

매달리는 둘째가 싫지 않은 눈치다.

다만 용돈이 부족한지 시원하게 대답을 못한다.

내 눈치를 보며 SOS를 요청할 것도 같은데 말이다.


둘의 실랑이를 가만히 두고 봤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다.

식당을 빠져나오는 내내 칭얼대는 둘째를 어떻게 달랠지 두고 봤다.

결국 큰딸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 "나 만 원 밖에 없는데."


횡단보도를 건너니 공차가 보인다.

말없이 공차로 두 딸을 데려갔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두 딸의 발걸음이 가볍다.

키오스크에서 원하는 걸 하나씩 골랐다.


난감했던 큰딸을 구해줬다.

달달한 게 먹고 싶었던 작은딸에게도 구원의 손길을 건넸다.

두 딸은 나의 배려가 고마웠나 보다.

"아빠 고맙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제 갈 길 갔다.

나는 남은 강의안과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카페로.

큰딸은 중간고사 준비를 위해 스카(스터디 카페)로.

작은딸은 친구들과 춤연습 하러 동네 놀이터로.


운전석에 앉으니 저만치 가는 두 딸이 보인다.

아직은 키가 큰 언니가 동생 어깨에 팔을 얹고 나란히 걷는다.

평소엔 냉랭한 언니이지만 늘 마음으로 동생을 아낀다고 믿는다.

만 원밖에 없다는 의미는 아까워서가 아니라 사주지 못하는 아쉬움이라고.


나는 동생을 아끼는 그 마음이 보인다.

오늘처럼 달달한 걸 손에 들고 있을 때는 기분이 좋아진다.

그때 마음이 묻어나는 행동이 자연스레 나온다.

'내가 네 언니다.'


가끔 서로 툴툴거리며 뚝딱거릴 때가 있다.

어쩔티비 저쩔티비 유치한 말장난으로 티격태격한다.

그래도 가만히 두고 본다.

저러다가도 젤리 하나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나눠먹는다.


아내도 나도 둘의 마음이 보인다.

먹을 것에 약하고 아직까지는 서로를 챙긴다고.

먹을 게 없어도 서로를 챙기는 그 마음은 변치 않길 바란다.

남는 건 형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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