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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Sep 21. 2023

나는 마흔여덟 살 어른이야

'난 여섯 살 어른이야'

주인 따라 나온 반려견 목줄에 적힌 문구이다.

개의 시간은 인간보다 7배 정도 빠르다고 들었다.

6살짜리 반려견은 인간으로 치면 44살이다.

견생은 나이가 많든 적든 주인에 이끌려 다닌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산책시켜 주는 모든 게 그렇다. 

개는 매일 산책을 시켜야 건강해진다.

제 발로 산책 다니면 더 좋겠지만, 사람과 달라서 혼자 두지 못한다.

그렇게 견생 내내 주인에게 이끌려 살 운명이다.


사람은 사춘기만 지나도 혼자 살고 싶어 한다.

가족의 구속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스무 살 이면 성인이다.

자기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독립을 꿈꾸고 돈을 번다.

직업, 직장, 연애, 관계,  등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한다.

판단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자기 몫이다.

판단이 언제나 옳지는 않다.

그릇된 판단으로 실패와 실수를 경험한다.

다시 바로 잡으면서 조금씩 성장해 간다.


20대가 되기 전까지는 견생과 같은 삶을 살았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용돈에 공부까지 시켜줬다.

그렇게 서서히 사람이 되어갔다.

20살이 되면서 군대를 다녀오고 혼자 설 각오를 다졌다.

24살에 독립하면서 혼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혼자 판단하고 결정해 왔다.

부모님의 도움은 간간히 받으면서.

독립 이후 부모님께 받은 도움은 대개 경제적인 부분이었다.

적지 않은 돈을 결혼할 때 지원받았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또 도움을 받았다.

그 외 살아가는데 필요한 선택은 스스로 결정했다.

잘 된 결정도 있었고 틀린 선택도 있었다.

잘못된 선택은 온전히 감당해야 했다.


직업을 바꿀 용기를 냈었다.

자영업자가 되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전혀 경험이 없었다.

가족은 말렸다.

경험도 없고, 성격도 안 맞을 것 같고, 경기도 안 좋다는 이유였다.

해보겠다고 버텼다.

버틸수록 더 완강했다.

결국 내가 굽히고 말았다.

굽힌 결정이 최선인지 장담할 수 없다.

욕심부려 자영업자가 되었다면 다른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적성을 찾아 날개를 달았을 수도 있었다.

누구도 모를 일이다.


인간과 강아지의 가장 큰 차이는 생각하고 판단한다는 점이다.

성인이 되면 대부분 홀로 설 수 있을 만큼 생각과 판단을 한다.

간혹 나이 들어도 생각과 판단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이도 있다.

책임지는 게 싫어서인 것 같다.

책임질 깜냥이 안 된다며 숨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보이지 않는 목줄을 차고 있다.

목줄의 길이만큼 주인에게서 떨어질 수 있는 견생처럼 간격을 유지한다.

언제든 주인의 품속으로 달려들 수 있게 말이다.

나를 지켜주는 존재가 있다는 건 든든하다.

누구나 그런 존재를 갖길 바란다.

나이가 많든 적든 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곁을 지키지 못한다.

내가 떠나든 부모가 놓아주든 언젠가 홀로 서게 된다.


견생은 목줄이 채워진 채 지내는 게 안락한 삶이다.

인간은 반대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가두는 게 없을 때 비로소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선택도 스스로 책임지는 인생.

어떤 결과도 겸허히 받아들이는 인생.

그로 인해 성장과 변화를 이어가는 인생.

변화와 성장을 통해 원하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인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후회 없이 사는 인생.

이 모든 걸 해내는 사람이 누구보다 안락한 삶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기 위해 만들지 않았다.

배는 바다를 만났을 때 비로소 배 다뤄진다. 

사람도 주어진 환경에 살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자기 인생을 개척해 나갈 때 비로소 자기다워질 테다.


내 나이 견생으로 치면 이제 7살이다.

인간나이 7살은 호기심으로 가득할 때다.

결과보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나이다.

그러니 미움도 많이 받을 때다.

아마도 그때가 가장 모험심이 강하고 도전정신이 투철했던 것 같다.

마흔여덟, 

다시 7살을 산다는 각오로 매일이 도전이고 모험이다.

인생 50부터다.

남은 인생은 더 자주 시도하고 더 많이 실패하고 더 크게 성공하고 싶다.

내 인생 오롯이 나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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