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는 걸 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내가 가을이 오는 걸 느끼는 건 샤워 후이다.
물에 젖은 몸을 수건으로 닦아내도 물기는 남아있다.
한여름에는 샤워 후에도 몸에 남은 게 물기 인지 땀인지 분간이 안 갔다.
욕실을 나와도 뜨거운 공기가 몸에 들러붙어 덮기는 마찬가지였다.
요즘은 몸에 묻은 물기가 찬 공기를 만나면서 서늘하기까지 하다.
집안에서도 찬 공기를 느낄 수 있는 요즘, 나에게 가을이 오는 중이다.
가을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존재했다.
어릴 때도 가을을 경험했었다.
사춘기에도 가을을 만났었다.
성인이 되고 군대에 다녀오고 직장에 다닐 때도 가을은 곁에 있었다.
곁에 있었지만 가을을 가을이라고 온전히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 가을이 왔구나.
'겉옷 하나 더 입어야겠다' 정도였다.
어떤 해에는 가을을 만끽하러 산을 찾기도 했을 터다.
눈에 보이는 단풍에 가을이구나 싶었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부터 주변을 다르게 보려고 노력 중이다.
글은 사실을 쓸 때 전달력이 높아진다.
감정이 아닌 사실을 쓰려면 보이고 느껴지는 대로 써야 한다.
사실을 쓴다는 건 오감으로 느껴지는 것들을 그대로 쓰는 거다.
더하거나 빼는 것 없이.
그러기 위해 느껴지는 것들을 세세하게 관찰할 필요 있다.
설렁설렁 보고 느껴서는 자세히 적을 수 없다.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오감을 동원해 주변을 느끼려고 한다.
그러니 일상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그냥 지나쳤던 것들도 한 번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샤워 후 몸에 남은 물기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글로 쓰려고 작정하니 별일 아닌 것도 별 일 아니게 보인다.
이런 태도를 관찰이라고 한다.
관찰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걸 글감으로 만든다.
글감으로 쓰기 위해 관찰하고, 관찰하면서 글감이 생긴다.
글을 쓰면 좋은 게 여러 가지 있다.
주변에 관심 갖게 되는 것도 좋은 점 중 하나다.
당연하지만 당연하게 보지 않으면서 의미를 발견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의미를 발견하면 평범하지 않은 일상이 된다.
일상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기에 삶이 무료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재미를 준다면 삶은 무료해지지 않는다.
그 재미를 주변에 관심 가지면서 찾는 건 어떨까?
관심을 갖는 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눈으로 보면서 머리로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거다.
관심 갖고 보는 그 순간 느껴지는 것들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 보는 거다.
의미도 저마다 다르다.
내가 보고 느낄 때 떠오르는 것들이 정답이다.
계절은 돌고 돈다.
어느 해 계절도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관심 갖고 보지 않으면 늘 똑같은 사계절일 뿐이다.
관심 갖고 보면 같은 가을에도 남다른 의미를 부여해 볼 수 있다.
의미가 부여된 가을은 이전과 똑같이 기억되지 않는다.
남다르게 기억될수록 인생도 보다 풍요로워질 거로 믿는다.
삶이 충만해진다는 의미, 관심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