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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30. 2023

집필 순서, 정답은 없지만 정도는 있습니다

 

몇 개월 만에 대구로 출장을 갔습니다. 이 말은 오롯이 혼자 밤을 보낼 수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해 지는 시간에 맞춰 저녁까지 먹고 숙소에 들어갔습니다. 혼자 밤을 보내는 데 넷플릭스만 한 게 없습니다. 무알콜 맥주 2캔과 과자 몇 봉지를 테이블에 차려놨습니다. 하룻밤 원픽 시리즈는 하정우, 황정민 주연의 '수리남'입니다. 초반 몇 편은 집중해서 봤습니다. 밤이 깊어갈수록 졸음이 쏟아집니다. 11시를 넘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TV를 켜둔 채로 말이죠. 잠결에 TV소리가 들리면 다시 깨 이어서 봤습니다. 그러다 또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길 수차례 반복하니 영화가 끝났습니다. 내용은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나름 정주행으로 완결 지었습니다.


멋모르고 책을 내겠다고 덤벼들었습니다. 엉성한 목차를 들고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첫 꼭지를 쓰고 나니 기운이 빠집니다. 요즘은 A4 한 페이지 반이 한 꼭지 분량입니다. 5년 전에는 A4 두 장 반이 한 꼭지였습니다. 반 페이지도 채우기 힘든 실력으로 두 장 반을 쓰고 나니 당연히 나가떨어졌습니다. 그때는 구성도 배우지 않아서 내용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막막했었습니다. 한 꼭지 쓰는 게 막막하니 쉬운 내용부터 쓰려고 했습니다. 목차에서 쓸 만한 주제를 먼저 썼습니다. 어떤 날은 2장 1 꼭지를, 다른 날은 4장 5 꼭지를 쓰는 식이었습니다. 오락가락 쓰다 보니 내가 지금 어떤 주제로 책을 쓰는지도 흐리멍덩해졌습니다. 몇 달 동안 매달렸지만 1/3도 채우지 못하고 포기했습니다.


2년 10개월째 매주 책 쓰기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사이 5권 분량의 초고를 썼고 그중 2권을 출간했습니다. 책 쓰기 수업에서 집필순서도 배웠습니다. 목차가 완성되면 서문을 제외하고 무조건 목차 순서대로 쓰라고 했습니다. 반신반의했습니다. 이전에는 마음 가는 대로 썼던 터라 순서대로 쓸 수 있을지 의아했습니다. 한편으로 순서대로 써보는 것도 경험이 될 것 같았습니다. 이미 내 마음대로 썼다가 실패했던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배운 대로 의심하지 않고 순서대로 써 내려갔습니다. 순서대로 쓸 때 세 가지 장점이 있었습니다.


첫째, 쓰는 동안 주제를 놓치지 않습니다.

앞서 내 마음대로 썼을 때는 결과적으로 산으로 가는 글을 쓰고 말았습니다. 목차에 따라 순서대로 쓰면 끝까지 주제에 맞게 쓰게 됩니다. 이미 주제를 꿴 목차가 완성됐으니 순서대로만 쓰면 주제에서 벗어날 걱정이 없는 겁니다.


둘째, 꾸준히 쓸 수 있습니다.

순서대로 쓰다 보면 집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땅을 파고 기초를 다지고 벽을 세우고 지붕을 덮으면 집이 완성되는 것처럼 내 글이 점점 모양을 갖춰가는 게 보입니다. 성과가 쌓이는 게 보이니 계속 쓸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됩니다.  


셋째, 꾸준히 쓰니 초고 완성 속도가 빨라집니다.

제대로 배우고 쓰기 시작한 첫 책은 초고를 두 달 만에 완성했습니다. 얼렁뚱땅 썼을 땐 두 달 동안 1/3도 못썼던 제가 40 꼭지를 두 달안에 써냈습니다. 이게 가능했던 건 순서대로 꾸준히 썼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출장가서 하룻밤 동안 '수리남'을 드문드문 보기는 했어도 전체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봤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초고 쓰는 것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가 말하는 게 정답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두 경우를 경험해 본 결과 적어도 목차 순서대로 쓰는 게 훨씬 효과 있었습니다. 성과도 더 잘 났고요. 초고는 속도가 관건이라고 합니다. 목차대로 최대한 빨리 다 쏟아낸 뒤 천천히 퇴고하는 겁니다. 퇴고를 해보면 초고 쓰는 건 일도 아니라고 느낍니다. 오히려 초고는 빨리 쓰길 잘했다고 위안을 삼습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효과적으로 덜 힘들이고 써내는 방법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초고는 목차 순서대로 빠르게 써내라고 말씀드립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12-vP0TwwY7e94KQqn3HO4eSSUas0hsAi6xDlu2mUNtE/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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