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과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가짐

[일] 하루 한 페이지 나를 돌아보는 글

by 김형준

오늘 업무가 일찍 끝났습니다. 사무실로 복귀하면 6시가 넘을 것 같습니다. 내비게이션으로 집까지 검색해봤습니다. 1시간 30분이 뜹니다. 서두르면 일찍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둘러 차를 몰아 수서 IC에 올라탔습니다. 서울 도로 사정은 짐작하면 낭패를 봅니다. 올라탄 도로는 이미 정체가 시작됐습니다. 동부간선도로를 지나 강변북로를 올라서는데 40분 걸렸습니다. 강변북로도 사정은 똑같습니다. 앞차 꽁무니만 따라갑니다. 가다 서다 리듬을 타니 졸음이 쏟아집니다. 자다 깨다를 반복 합니다. 껌을 씹어도 그때뿐입니다. 강력한 박하맛 캔디도 입에 있을 때뿐입니다. 강변북로 위를 1시간째 기어가고 있습니다. 점점 지쳐갑니다. 졸음은 더 이상 의지대로 조절이 안 됩니다. 소리도 지르고 뺨도 때려 봅니다. 아픈데도 잠이 옵니다. 문득 왜 2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고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답은 쉽게 나왔습니다.


나는 직장인입니다. 9시부터 6시까지는 나는 내가 아닙니다. 집을 나서면 본래의 ‘나’는 집에 두고 명함 속 나를 꺼냅니다. 회사는 나를 위해 명함을 만들어 줬습니다. 명함 속 나는 회사를 위해 서류를 꾸미고, 거래처와 협상하고, 현장을 관리하고, 관공서와 협의합니다. 그들도 명함 속 나에게 견적서를 주고, 작업지시를 받고, 행정 업무를 요청해 옵니다. 내가 하는 모든 업무는 회사 이익을 목적으로 합니다. 회사가 돈을 벌어야 내 월급도 나오기 때문입니다. 월급만큼만 일하고 싶지만 회사는 그렇게 놔두지 않습니다. 월급만큼 일하면 월급도 안 줄 수도 있습니다. 밥줄이 잘릴 겁니다. 안 잘리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는 건 당연한 미덕입니다.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허리를 굽히는 건 필수가 되었습니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연봉 협상을 위해 사내 정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기계를 고장 없이 돌리기 위해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해 줘야 하듯, 회사가 원하는 직장인이 되기 위해 자발적 야근으로 성과를 내고, 나의 공을 상사의 공으로 돌리는 아량을 베풀어야 하고, 주말도 기꺼이 반납할 수 있는 살신성인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고장 없는 기계처럼 직장생활도 원활하게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철저히 나를 버리고 최적화시켜야 하는 게 직장인입니다.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은 여성 직장인의 애환을 담고 있습니다. 남성보다 차별적 대우를 받는 그녀들의 애환을 보니 남녀를 떠나 직장인으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중 한 부분을 옮겨 봅니다.


"정중하게 새치기 생산을 부탁하는 게 난 두렵지 않았다. 술도 따르지 않았고 블루스도 추지 않았다. 다만 내 여자 상사에게 처음부터 그런 지시를 받았다는 게 억울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 깨달았다. 그런 조직 문화 속에서 그녀도 오랫동안 길들어왔다는 걸. 어려운 자리에 여자를 보낼 땐 이유가 있었다. 생글생글한 미소로 ‘꽃순이’가 되어주라는 것. 그런 방식이 전통이고 습관이었던 조직에서 그녀는 단지 의문을 던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애환은 비단 여성 직장인의 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남성도 일을 하다 보면 부당한 지시도 받고 원치 않는 자리를 가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싫다고 원하지 않는다고 안 갈 수도 없습니다. 전통이고 관습이니 무조건 가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 가해집니다. 이런 압력도 직장인이기에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의문을 갖는 것도 불필요합니다. 의문을 가지면 답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회사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애초에 의문 갖기 원하지 않습니다. 그냥 전통이니 잔말 말고 따르라고 합니다. 기꺼이 입을 닫는 것도 직장인의 덕목 중 하나일 겁니다.

나를 버리면 부당한 지시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내 생활을 포기하면 어디든 달려갈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 했을 때 비로소 직장인으로 인정받고 자리를 보존할 수 있습니다.


그랬습니다. 저는 이 모든 걸 해내야 조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직장인이었습니다. 강변북로를 2시간째 졸면서 달린 것도 직장인이기 때문입니다.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것도 직장인이기 때문입니다. 월급만으로 한 달을 버텨내야 하는 것도 직장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직장인은 그만하고 싶습니다. 졸음을 이겨내기 위한 껌도 턱이 아파 못 씹겠습니다. 껌 대신 뺨을 때리는 것도 아프기만 합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강변북로에 2시간씩 붙잡혀 있는 것도 더는 못 하겠습니다. 직장인을 그만두고 싶습니다.

'사회적 공동체에서 나의 존재가 사라져 간다는 것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회사라는 굴레에서 자유로워지길 꿈꾸지만, 한편으론 망설인다. 단지 생계에 대한 걱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막상 회사가 내 정체성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 잡았을 때,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 사회적 정체성을 완전히 버리고 새로 무언가를 쌓기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중 한 부분입니다.


지금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용기 내 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쌓아 온 경력과 경험은 언젠가 써먹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것들을 버리고 이제 다시 하나씩 쌓아가 보려고 합니다. 내 시간을 내 의지대로 사용하고 싶습니다. 내 인생을 나 스스로 책임지고 싶습니다. 내가 조직이 되고, 회사가 되어 나를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많이 벌어 도 내 탓이고 적게 벌어 도 내 몫입니다. 나를 브랜드화 해 나를 팔며 일하고 싶습니다. 더 이상 막히는 도로 위에 왜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찾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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