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하루 한 페이지 나를 돌아보는 글
그날 마흔 살의 나에게 선물을 줬다.
나는 공부를 못했다. 공부보다 티브이를 더 좋아했다. 교과서 암기는 못해도 편성표는 줄줄 외웠다. 수업에 집중 못해도 드라마 다음 스토리를 예상할 만큼 꿰고 있었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 보다 티브이를 차지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늦은 저녁 부모님의 부재를 티브이로 채웠다. 불 꺼진 방에서 조차 티브이는 켜져 있었다. 티브이는 드라이아이스였다. 말랑했던 생각을 동결 건조 시켰고, 작은 충격에도 깨질 듯 굳어버렸다. 티브이는 생각만 굳게 하지 않았다. 눈에 뵈는 게 없어졌다. 고2가 되면서 시력은 희미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칠판 글씨가 흐릿해졌다. 학교보다 비싼 돈을 낸 학원 수업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안경이 필요했다. 이맘때 안경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반 친구 중 안경 낀 친구들 아니 그들이 낀 안경 자체가 멋져 보였다. 당시는 무태나 반 무태 안경이 유행이었다.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철없던 나에게 가격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학원도 겨우 보냈던 당시 형편에 안경은 사치였다. 그래도 조르고 싶었다. 조르면 사주실 거라 믿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공부하겠다는 자식의 의지를 무시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며칠을 졸랐다. 조름과 동시에 어디서 살지 수소문 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버티기가 약해져갈 즈음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핫 플레이스도 알았다. 치밀하게 준비를 거쳐 드디어 D-Day 가 되었다. 부모님은 떨리는 손으로 카드 한 장을 쥐어 주셨다.
“너무 비싼 거 말고 잘 물어보고 적당한 걸로 사라.”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저렴하게 맞출 수 있는 곳을 알아놨어요.”
최고의 요리를 위해 최상의 재료를 선택하듯 부푼 기대를 채워줄 멋진 안경을 주머니 속 카드가 채워 줄 것 같았다. 기세등등하게 내 발길은 남대문 시장의 안경 골목을 향했다.
나는 몰랐다. 이 발걸음이 불행, 아니 불편의 시작이었음을. 내 얼굴형은 무태도 반무태도 안 어울렸다. 그나마 금색과 은색이 어정쩡하게 섞인 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 얼굴형은 안경이 안 어울렸다. 안 쓰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이날을 시작으로 22년간 안경을 썼다. 처음 갔던 그 안경점은 단골이 되었고 해마다 한 번 씩 방문한 덕에 VIP 대접을 받았다.
새 안경을 쓰고 며 칠 뒤부터 불편해졌다. 옷을 입고 벗을 때, 세수 할 때, 운동할 때 등 대부분에 안경은 걸리적거렸다. 세상을 밝고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 말고는 좋은 게 없었다. 안경을 쓰고 군대를 갔다. 안경은 철모를 쓰는 모든 훈련에 불편을 줬다. 안경을 쓰고 건설현장에 취직했다. 안경은 안전모를 써야 하는 현장 업무에 불편을 줬다. 안경을 쓰고 결혼을 했다. 첫 아이와 첫 만남에 기쁨을 얼굴을 부비며 표현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이와 놀아주기 위해 얼굴을 부비고 싶었지만 안경은 걸림돌이었다. 더운 여름 물놀이를 가면 안경을 낀 채 물에 들어갈 수 없어 행동은 소극적이 되었다. 덥고 긴장할 때 얼굴에 터진 땀은 안경을 흘러내리게 했다. 안경은 지난 22년 동안 선명한 세상을 보는 댓가로 삶의 많은 부분 불편함가져다 줬다.
2015년, 마흔 살 나는 결심 했다. 안경을 벗기로 했다. 일 년 전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치고 자유를 얻은 아내의 뒤를 이어가기로 했다. 강남의 대형 안과에 예약 된 날짜에 정밀검사를 받았다. 수술법을 결정하고 날짜를 정했다. 별일 없을 걸 알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걱정은 안경을 벗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씻겨주었다. 드디어 수술대에 누웠다. 차갑고 육중한 기계 위에 누우니 긴장됐다. 마취를 하고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기계음과 눈 앞에 아른거리는 불빛이 몇 차례 오고 갔다. 눈을 보호하기 위해 안대가 씌워졌다. 15분의 시간이 흐르고 수술실을 걸어 나왔다. 회복 시간을 거친 뒤 약을 받고 수납을 마쳤다. 마취가 깨면서 서서히 통증이 올라온다. 강남역 4거리에서 집에 갈 길이 막막했다. 거짓말 1도 안하고 앞을 볼 수 없었고 통증이 심했다. 혹시 몰라 미리 연락해 둔 친구를 호출했다. 친구 차에 실려 집으로 향했다. 침대에 누워 이틀을 꼼짝 못했다. 통증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통증이 가라 앉을수록 기대가 솟아났다. 안경 없이 밝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기대감. 맨 얼굴로 아이의 얼굴을 부빌 수 있는 기대감. 맑은 날 선글라스를 낄 수 있는 기대감. 땀이 나도 안경을 신경쓰지 않아도 될 기대감. 삶이 달라질 것 같은 기대감이 올라왔다. 드디어 붕대를 벗었다.
모든 기대는 현실이 되었다. 더 이상 안경이 필요 없었다. 세상은 너무 맑고 선명했다. 한동안 안경을 쓴 것 같은 착각이 있었다. 기분 좋은 착각이었다. 안경을 쓸 때 안 쓴 것 같은 착각은 불편했다. 안경을 쓴 채 세수라도 하면 낭패였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너무 기분 좋았다. ‘아! 안경이 없어도 잘 보이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지난 5년간 안경을 잊고 살았다. 삶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며 모니터를 수없이 바라보니 시력이 약간 떨어진 것 같다. 그래도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적어도 몇 해 는 건강히 버텨줄 거라 믿는다. 살면서 여러 기쁜 순간이 있었다. 대학 입학이 그랬고, 첫 월급이 그랬고, 아내와의 첫 만남이 그랬고, 두 아이의 출산이 그랬었다. 그중 22년간 썼던 안경을 벗던 순간도 잊지 못할 기쁨 중 하나가 되었다. 노안이 오는 그날까지 건강한 시력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