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이 없는 자는 만족할 수 없다.

[직장] 하루 한 페이지 나를 돌아보는 글

by 김형준

불만이 없는 자는 만족할 수 없다 -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


나는 불만만 많았다. 불만으로 인해 만족 없는 삶을 살았다. 불만만 늘어놓고 개선의 의지는 없었다. 불만의 이유는 다양했다. 왜 저 사람보다 월급이 적지? 왜 이 정도 크기의 차 밖에 못 타지? 남들은 안정적인 직장을 잘 찾아가는 데 왜 내가 선택한 직장은 그렇지 못하지? 언제나 내 선택 뒤에는 ‘왜’라는 불만이 따라다녔다. 불만의 시작은 언제나 비교에서 비롯되었다.


서른 살이 되던 해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대형 건설 현장의 임시직이었다. 그 당시 대학 졸업장도 없었고, 조직생활 경험이 없어 입사가 될 지도 반신반의였다. 운이 좋았던 건 지인의 추천 덕에 반 낙하산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 운은 입사에서 그치지 않았다. 같은 사무실에 계신 분들은 내 사정을 이해해 주셨고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이 배려해 주셨다. 일이 서툴러도, 공정을 이해하지 못해도, 서류 작성이 미흡해도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으셨다. 언제나 믿고 기다려 주셨다. 나도 그런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11개월 만에 정직원이 될 수 있었다. 이듬해부터는 복학할 수 있도록 근무시간까지 배려해 주셨다. 직장이 안정되면서 학업에 필요한 비용과 생활비도 부족하지 않게 되었다. 사업으로 진 빚도 말끔히 해결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5년간 몸담은 덕분에 지금의 가정도 꾸릴 수 있었다.


처음엔 모든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경력이 없으니 시키는 일만 하는 게 당연했고, 졸업을 못했으니 직급이 낮은 것도 당연했다. 현장이니 정해진 출퇴근 시간을 넘기는 게 당연했다. 공정이 바쁘면 주말에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니 불만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고 경험이 생기니 당연했던 것들에 하나씩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가 상승률보다 낮은 연봉 인상이 그랬고, 저녁 시간을 내 마음대로 가질 수 없는 게 그랬고, 주말에 맘 편히 쉬지 못하는 게 그랬다. 주변 사람들은 불만만 있을 뿐 개선할 노력이 없어 보였다. 간혹 더 나은 곳으로 이직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극적 반전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불만이 쌓여가며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처음 자리 잡으며 누렸던 많은 혜택은 더 이상 나를 만족시켜 주지 못했다. 이곳만 벗어나면 무언가 다른 걸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돈과 근무조건을 우선으로 이직했었다. 이직은 자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일에서 연봉에서 지금보다 나은 조건을 얻기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발전시키는 게 먼저여야 한다. 이런 고민과 노력 없이 단지 돈과 근무조건 만을 따졌었다. 그랬던 결과가 잦은 이직이었고, 이직 회사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탓에 몇 개월 못가 문 닫는 곳이 여러 곳 있었다.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던 몇 해 동안 월급도 떼이고 고정 수입도 줄어 가계 운영이 힘들어졌다. 이런 과정을 겪게 된 원인은 내 안의 불만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잦은 이직은 경력에 감점 요인이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사회생활과 대학 졸업도 감점이었다. 대학 전공과 다른 실무 경력도 더 큰 감점 요인이었다. 여러 요인은 누가 봐도 매력적인 인재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나에게 일 할 기회를 주었던 회사들에 감사해야 맞을지도 모른다.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나에게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면 제일 먼저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했다.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계발하고 보완하는 노력이 불만을 해소시키는 가장 빠른 길이라 걸 뒤늦게 깨달았다. 외부 환경에 불만을 갖기보다 나 자신의 부족함에 불만을 갖는 게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현명한 길이라 생각한다.


마흔이 넘어가며 나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생겼다. 직장인의 평균 퇴직 나이가 49세라고 한다. 일부 업종은 이보다 빠르기도 하다. 직장이 주는 불만은 엷어지고 있다. 불만이 향하는 방향을 바꿔야 했다. 직장을 벗어나 오롯이 혼자 서야 하는 시간이 온다. 직장에 만족하지 못한 다고 더 나은 곳을 찾는 기회조차 없어진다. 불만은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이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이다. 스스로에게 이전보다 거 엄격해져야 한다. 내가 나를 지키고 내가 나를 채찍질해야 한다. 나 자신에게 더 많은 불만을 가져야 이전과 다른 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우드하우스의 ‘불만이 없는 자는 만족할 수도 없다’는 말처럼 남은 내 인생이 만족할 수 있는 길은 끊임없이 불만을 갖고 이를 개선해 가는 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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