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시간을 훔쳤다.
[부부] 하루 한 페이지 나를 돌아보는 글
아내의 시간을 훔쳤다. 결혼 후 줄곧 그래왔다. 결혼은 동등한 위치의 연인이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시작된다. 누가 누구의 위에 존재해서도 안 되고 누구를 위해 맹목적인 희생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상대방도 할 수 있게 똑같은 기회를 가져야 한다. 불행이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결혼 후 힘의 기울기는 경제력에 따라 정해진다. 통계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 게 이를 뒷받침 해 준다. 연봉을 많이 받는 건 더 많은 시간 일을 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렇다고 여성이 적은 시간 일을 한 다는 의미는 아니다. 직업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평균적 기준의 예를 든 것이다. 여성도 적은 연봉에 많은 일을 할 수도 있고, 남성도 많은 연봉에도 적게 일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들을 따지겠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십 여 년 결혼 생활 중 내 시간을 가진 게 아내보다 많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이다.
우리는 맞벌이다. 내가 일하는 곳은 집에서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자가용으로 한 시간 거리이다. 아내의 직장은 버스로 50분 거리에 있다. 자가용으로 20분이면 갈 수도 있지만 차는 주로 내가 사용한다. 나는 막히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 6시쯤 집을 나선다. 이렇게 일찍 나서지 않으면 길 위에서 버리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상대적으로 출근이 여유로운 아내가 아이들의 아침을 챙긴다. 아이를 챙기는 게 힘들다는 건 잘 안다. 그렇다고 아내를 돕기 위해 7시 넘어 일어나는 아이를 챙기려면 나는 제 시간에 출근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만 항상 갖고 있다. 내가 일찍 나서는 또 다른 이유는 업무 시작 전 적어도 1시간은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하루 중 유일하게 아무런 방해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아내의 아침을 희생해 준 덕분에 나는 1시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문제는 퇴근 후 시간이다. 6시에 나서도 집에 도착하면 8시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그나만 30분 일찍 도착하는 게 최선이다. 회식이나 술자리라도 잡히면 저녁 시간은 오롯이 아내의 몫이 된다. 2년 전 까지는 퇴근 후 시간을 내 의지대로 사용했다. 주로 술자리가 대부분이었다. 갖은 이유와 핑계를 만들어 주2회 이상 술자리를 가졌던 것 같다. 그 많은 시간 아내의 희생이 있었다. 그나마 최근 2년 간 술자리를 자제해 왔다. 술자리 보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시간이 더 가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퇴근 후 잠자리 들기까지도 아내의 시간 일부를 훔치게 된다. 일찍 퇴근 하는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면 설거지는 내 몫이다. 설거지 시간을 쌓아두면 나이 들어 소박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자발적 생존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간단한 청소와 정리 후 아이를 재운다. 아이들이 잠들면 1시간 정도 자유시간이 생긴다. 내 나름 집안일을 분담하려고 하지만 아내의 손길이 더 많이 닿는 건 어쩔 수 없다. 내 손이 야물지 못해 아내의 손길이 두 번 필요한 경우도 있어 배려의 차원으로 덜 움직이려 한다.(쓰고 나니 비겁한 변명이 되어 버렸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다. 올 해 들어 토요일 오전 시간을 나를 위해 쓰고 있다. 사람을 만나고 배우고 싶을 걸 배우고 있다. 이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건 아내의 시간을 훔쳤기에 가능했다. 아내도 주말이면 쉬고 싶어 한다. 적어도 주말엔 아이들을 봐 줬으면 한다. 물론 아이들은 알아서 잘 논다. 외부활동을 못 하는 제약이 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있다. 아내도 주말은 살림은 접고 책도 읽고 티브이도 보고 사람도 만나고 싶어 할 거다. 아내의 시간 보다 내 시간을 우선순위로 배려해 주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예전에 도둑질은 큰 죄에 해당했다. 훔친 걸 돌려주지 못 할 땐 목숨까지 내놓아야 했었다. 지금도 남의 물건을 훔치는 건 범죄에 해당한다. 더욱이 금보다 귀한 시간을 훔치는 건 더 큰 죄가 될 수 있다. 다만 우리 서로가 시간의 소중함을 자각하지 못하고 서로의 시간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훔친 아내의 시간을 되돌려주기 위해 목숨 바쳐 충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