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하루 한 페이지 나를 돌아보는 글
“카드 비밀번호를 잃어버렸는데 유선 상으로 확인이 가능할까요?”
“고객님 본인 맞으신가요?”
“네 본인입니다. 가능한가요?”
“고객님 죄송하지만 유선 상으로 불가능 합니다. 직접 방문해 주셔야 됩니다.”
“아~ 저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지금 있는 곳이 런던이라 불가능하고, 카드가 안 되면 당장 쓸 생활비가 없어서 좀 절박한 상황이거든요.”
“고객님 상황은 딱하지만 원칙적으로 알려드릴 수가 없어서 안 될 것 같습니다.”
뒤로 10여 분간 사정 설명과 애원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남아 있는 현금은 사흘 정도 먹고 잘 수 있는 게 전부였다. 돌아가는 일정까지는 열흘 남아 있었다. 런던에서 사흘을 보내면 공항까지 갈 수 있는 차비만 남게 된다. 런던에서 일정을 보내고 어학연수 중인 고등학교 동창을 찾아 가기로 했었다. 현금이 바닥나 친구에게 가도 쓸 수 있는 돈이 없었다. 친구에겐 언제쯤 도착하겠다고 약속해 놓은 상태였다. 카드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탓에 빈털터리가 되어 친구에게 갈 상황이었다. 용돈 받아 생활하는 친구에겐 적지 않은 부담일 수 있었다. 비행 일정을 조정할 수도 없었다.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당초 일정보다 열흘 정도 당겨 출국하게 조정해 놓았다. 그것도 민박집 주인의 도움으로 겨우 조정할 수 있었다. 선택은 하나였다. 친구에겐 미안했지만 몸뚱이만 갖고 가기로 했다. 친구가 있는 곳으로 출발하기 위해 버스 터미널을 갔다. 매표소에서 목적지를 말했다.
“I want to go to bradford."
"bradfort?" (발음이 딱딱해 약간 의아했다)
"bradford"(주소가 적인 쪽지를 내 보였다)
내가 가야하는 곳은 ‘브래드포드’였다. 매표원의 악센트는 ‘브래트포트’를 갈 거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두 곳은 완전 반대 방향이라고 했다. 다행이도 ‘브래드포드’행 버스표를 살 수 있었다. 6시쯤 버스에 올랐다. 목적지 까지는 5시간 걸린다고 적혀 있었다. 가는 길에 휴게소 같은 곳에 쉬긴 했지만 음료수 하나 살 돈이 없던 터라 자리만 지켰다. 자고 또 잤다. 버스는 12시가 다 되어 ‘프래드포드’터미널에 멈췄다. 한 달간의 여정은 군살을 쏙 빼놓았다. 얼굴 광대뼈가 심하게 드러나 있었고, 긴 숙면 덕에 머리는 떡이 져 있었다. 크고 작은 배낭을 두 개 둘러멘 게 거지가 연상되는 행세였다. 터덜터덜 터미널을 걸어 나오는데 친구가 보였다. 수 개 월 만에 그것도 영국의 어느 마을에서 조우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당초 계획했던 일정대로 라면 친구가 있는 곳을 안 갔을 수도 있었다. 뜻하지 않게 카드가 문제가 되면서 졸지에 노숙자가 될 상황이라 염치불구 하고 친구를 찾아가게 되었다. 이런 사정을 이해해주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자신에게 오라고 해준 친구가 눈물 나게 고마웠다. 눈물을 보이진 않았지만 친구가 있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거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친구가 머무는 곳은 대학교 기숙사였지만 방학 중엔 제재가 없었던 탓에 한 방에서 잘 수 있었다. 첫 날은 잠만 잤던 것 같다. 한 달 동안 이어진 강행군에 지칠 때로 지쳐 있었다. 친구를 만난 안도감이 긴장을 풀어주었고 편한 마음으로 오랜 시간 잘 수 있었다. 점심 다 돼서 일어났다. 식사는 기숙사 내 공동 식당에 각자 식재료를 준비해 직접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친구는 한국에서 보내 준 반찬과 마트에서 산 채소로 식사를 차려주었다. 여행 기간 동안 잘 해야 하루 한 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은 저녁은 밥을 차려주는 게 기본이었다. 낮 시간 동안은 돌아다니며 빵으로 대충 때우는 게 최선이었다. 친구에게 신세진 기간 동안은 적어도 하루 두 끼는 마주 보고 밥다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밥도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함께 먹을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루 두 끼 이상은 벤치나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혼자 먹는 게 일상이었다. 수 년 간 추억을 공유해온 친구와 함께 하는 식사시간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충만한 시간이었다.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더부살이 하는 것도 부담이었을 텐데 며칠 간 주변 관광지를 구경시켜 주었다. 물론 모든 경비는 친구가 부담했다. 교통비부터 일체 비용을 모두 부담해 주었다. 옛 모습이 잘 보존 된 작고 아담한 마을인 ‘york' 이 마을을 본떠 만든 게 ’New York'이라고 한다. 그만큼 풍경이 아름답고 볼거리가 많은 곳이었다. 영국의 명물 2층 버스를 타고 ‘맨체스터 필드’를 구경하러 가기도 했다. 물론 비용 때문에 내부 투어는 못했다. 나에겐 그곳을 가 봤다는 것 자체로 감사한 경험이었다. 경기장 주변을 둘러보는 것 자체로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또 하나 떡국을 먹은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친구 숙소에 머물던 시기가 연말을 끼고 있었다. 친구는 워낙 외진 곳이라 한국인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어학연수를 왔다고 했다. 막상 오니 또래도 몇 명 있었고, 학위를 위해 공부중인 형님뻘 되는 몇 분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새해 첫 날 자주 왕래를 갔던 부부에게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다. 물론 나도 함께 참석했다. 그 댁에서 떡국을 준비해 주셨다. 음식도 좋았고 함께 먹는 그 시간도 너무 좋았다. 추억을 쌓기에 일주일은 긴 시간이 아니었다. 친구의 배려 덕분에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넘치도록 충전할 수 있었다. 떠나는 날 마음속으로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빚을 지고 간다고 되 뇌였다.
그 친구와는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서로의 대소사를 챙기며 세월을 함께 먹고 있다. 지난 주 친구의 아버님이 삶을 다 하셨다. 소식을 듣고 그날 저녁 몇몇 친구와 포항으로 향했다. 오랜 시간 연을 이어오는 많은 친구가 있지만 그 친구의 일이라면 무조건 앞장선다. 고마움이 크기는 내 처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그때 내가 넉넉하고 여유로웠다면 지금만큼 고마움이 덜 할 수도 있다. 절박하고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던 나를 아무런 조건 없이 배려해 준 그 마음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마음은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거라 생각한다. 그저 평생 함께 하며 친구가 힘들 때 의지가 되어 주는 걸로 조금씩 갚아가는 게 내가 선택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