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라떼'를 버리는 것부터

[이해] 하루 한 페이지 나를 돌아보는 글

by 김형준

“이번이 벌써 세 번째야. 너무한 거 아니니.”

“죄송해요. 2G 폰으로 바꿔도 괜찮아요……”

“이게 지금 폰을 바꾸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왜 하지 말라는 걸 몰래 해.

그것도 세 번씩이나 걸리고. 숨기면 모를 줄 알았니. 왜 거짓말을 해.”


올해 초 큰 딸에게 스마트폰으로 바꿔주며 몇 가지 조건을 걸었다. 그중 하나가 카카오톡 설치 금지였다. 초등학교 5학년인 큰 딸에겐 조금 이른 것 같았다. 카톡은 이미 친구들 사이엔 활성화되어있다고 한다. 주변에 카톡으로 인한 여러 문제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단톡 방 안에서 따돌림, 집단 괴롭힘 등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다고 한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일이 없을 거란 보장도 할 수 없었다. 큰 딸에겐 모든 게 새롭다. 게임, 동영상, SNS 등이 일상의 한 부분처럼 인식하는 것 같다. 아내와 내가 스마트폰을 처음 접했을 때 보다 받아들이는 게 다를 수밖에 없다. 하나의 문화가 자리잡기까지 그에 대한 저항도 존재한다. 순기능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이도 있고, 역기능을 우려하고 거부하는 이도 있다. 우리 세대는 그런 과정을 겪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좋고 나쁨이 걸러지며 진화하게 되었다.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 당연해지고 있다. 아내와 나의 인식에도 변화가 필요해 보였다.


게임 만렙, 미드 완방, SNS 팔로우 증가, 목표에는 수단이 따른다. 수단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는 시간은 의미 있다. 여기저기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이들을 단편적으로만 봤었다. 시간 낭비하는 것 같았다. 폰에 빠져 있는 그 시간이 길수록 삶은 나아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이런 걱정이 앞서 내 아이도 통제해 왔다. 그들의 겉모습만 봐서는 그럴 꺼라 짐작했었다. 내가 사는 삶이 정답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시간을 내 의지대로 사용하는 건 필요해 보였다. 남는 시간 내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는지에 따라 삶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몇 달 전만 해도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니 스마트 폰에 빠져 있는 이들을 안타깝게 생각했었다. 책이 좋은 건 유연한 사고를 통해 기존의 인식을 변화시켜 준다는 거다. 이재붕 교수의 『포노 사피엔스』가 그랬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이해할 수도 있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스마트 폰의 의미를 넓게 인식하게 되면서 관점이 달라질 수 있었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세대에 따라 스마트 폰의 의존도가 다르다. 통계에 따르면 20대와 50대 이상이 활용도 차이는 있지만 사용시간은 가장 길다고 한다. 20대는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부터 스마트폰 사용이 일상이 되었다. 말 그대로 삶의 일부분이 된 거다. 50대에겐 스마트 폰이 은퇴 이후 사회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준다고 한다. 다른 세대보다 월등한 메신저 사용량이 이를 방증해 준다. 이렇듯 어떠한 현상은 그 이면을 들여다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스마트 폰엔 분명 양면성이 있다. 사용 목적에 따라 유익하기도 하고 해가 되기도 한다. 게임, 쇼핑, 동영상, SNS 등 다양한 기능은 더 이상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게임을 통해 교류하고, 쇼핑을 통해 시간을 아끼고, 동영상을 통해 정보와 지식을 배우고, SNS를 통해 관계를 확장해 간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것이다. 이런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 한 체 ‘라떼는 말이야’적 사고로는 지금 세대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공감은 다름을 인정하는 이해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아이에게 바라는 한 가지가 있다. 옳고 그름, 순기능, 역기능을 바르게 인식한 뒤 스마트 폰을 사용했으면 한다.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기보다 좀 더 현명한 삶을 살 수 있는 도구로써 충분히 활용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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