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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Dec 23. 2023

밀리컨(Millican) 배낭을 아시나요?

헨리 데이비트 소로는 1845년 월든 호숫가에서 2년 동안 살았다. 그곳에서 일상을 글로 담아낸 《월든》은 누구나 한 번은 읽어야 할 인문서가 되었다. 문명의 편리함 대신 자연의 불편과 느림을 선택했던 소로, 그의 삶은 정신없이 살아가는 요즘의 우리를 멈추게 한다.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도 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가 《월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한번쯤은 잠시 멈춰 뒤도 돌아보고, 연결을 끊고 혼자되어보고, 느리게도 걸어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여유도 되찾을 테니 말이다.


밀리컨 달튼은 20세기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영국 레이크 디스트릭트라는 작은 마을의 동굴에서 살며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다. 나무를 주워 오두막을 지었고, 빵을 직접 구워 먹었으면 옷을 직접 만들어 자급자족의 삶을 이어갔다. 이런 그의 삶은 소로못지않게 현대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중에서도 요리트 & 니키 부부는 그의 정신을 이어서 '밀리컨'이라는 배낭을 만들었다. 그들은 자연 소재와 재활용실을 이용해 환경친화적인 배낭을 만든다. 소재뿐 아니라 기능면에서도 여행에 적합한 섬세함이 돋보인다.


밀리컨 배낭을 처음 알게 된 게 2020년이었다. 2019년 한 해 동안 300권 읽기에 도전했었다. 도전에 성공하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려고 마음먹었었다. 함께 도전했던 몇몇은 9박 10일 일정으로 떠났다. 나는 함께하지 못했다. 대신 제주도 올레길 4박 5일 일정을 허락받았다. 그때 여행을 준비하며 제일 먼저 '밀리컨 프레이저 럭색 32L' 배낭을 구입했다. 포장을 뜯고 처음 마주했지만, 새 제품 같지 않았다. 오래된 듯한 새것이었다. 걷는 내내 배낭을 알아본 사람은 없었다.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배낭은 제 기능을 충실히 해줬다.


지난 화요일 퇴근 무렵 출장이 잡혔다. 3박 4일 일정이었다. 노트북과 갈아입을 옷을 챙기려면 백팩은 작았다. 3년 만에 배낭을 꺼냈다. 목적은 출장이지만 배낭을 메면 여행객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두 딸도 배낭을 챙기는 나를 두고 어디로 가는지 연신 물었다. 아마도 춥지 않았으면 캐리어를 가져갔을 테다. 장갑을 껴도 시린 손을 보호하려면 배낭이 최적이었다. 정해진 숙소도 없는 탓에 매일 짐을 풀었다 쌌다 반복했다. 3년 전 올레길을 걸었던 것처럼 배낭 속 옷과 생활도구에 의지한 일정이었다.  


올레길을 걸을 때도 최소한으로 챙겨갔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내볼 작정이었다. 정 필요한 건 그곳에서 얼마든 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 하루 종일 걸어야 하니 배낭 속 짐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줄인다고 줄였지만 3일 내내 같은 무게를 지고 다녔더니 무릎에 무리가 갔었다. 돌아오고 한 달 넘게 절뚝거리며 걸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출장이라 걸을 일은 없었다. 대신 불필요한 건 최소화했다. 갈아입을 옷과 업무에 필요한 소품이 전부였다. 줄인다고 줄였지만 무게는 만만치 않았다. 더 줄여야 했을 수 있다.


나이 들수록 어쩔 수 없이 편한 게 좋아진다. 배낭 하나 메고 둘레길에 또 가라면 고민부터 든다. 무엇을 챙기고 무엇을 두고 갈지도 고민이다.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소로나 달튼처럼 맨 몸으로 갈 용기는 없을까? 아마도 없지 싶다. 빈 손으로 가면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 같아 불안하다. 물론 아무 일 안 생길 걸 안다. 다만 있는 동안 불편할 뿐이다. 아니 어쩌면 더 편할 수도 있다. 경험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일 것이다.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깟 배낭은 없어도 그만이다. 마음이 거기까지 미치기에는 내공이 부족하다.


이 글을 마무리 짓고 기차 타러 간다. 출장이었지만 여행이나 다름없었다. 아마도 배낭을 멘 탓에 그런 기분이 났던 것 같다. 기차 타고 이동하면 풍경이 바뀐다. 배낭을 메고 걸으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늘 똑같은 공간 대신 새로운 곳으로, 반복되는 일상 대신 새로운 마음가짐 덕분에 활력을 찾았다. 멀리 낯선 곳을 가야만 여행이 아니다. 다른 환경, 다른 마음가짐만으로도 여행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도 오랜만에 배낭 멘 덕분에 여행의 기분을 느끼고 돌아간다. 내 눈에 만족스러운 배낭을 갖게 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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