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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an 06. 2024

층간소음에 대처하는 소심한 복수

층간소음보복에 나선 둘째


둘째가 총대를 맺다. 눈치만 본 아내와 나보다 낫다. 사실 눈치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윗집과 얼굴 마주해 봐야 좋은 말 안 나올게 뻔했다. 물론 예의를 갖췄겠지만 막상 맞닥뜨리며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관리실에 문의도 했었다. 안내 방송을 해줄 수 있냐고도 물었다. 시큰둥한 답변만 받았다. 안내 방송 듣는 게 불편하다는 민원이 많다고 했다. 관리실에서도 눈치를 보는 꼴이었다. 그렇다고 매일 저녁 한 시간 이상 날뛰는 소리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결국 둘째가 나서서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했다. 


둘째는 이번 주부터 방학에 들어갔다. 아내가 집을 비우는 날에는 온종일 혼자 있어야 했다. 저녁에 가는 태권도 말고는 학원에도 안 다니겠단다. 영어 수학 미술 다 끊었다. 혼자 두는 게 내키지 않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낮 동안 해야 할 일과 끼니를 챙겨 먹어야 한다. 혼자 밥 차려 먹는 게 익숙지 않은 나이다. 언니도 방학을 안 한터라 별 수없이 혼자 챙겨 먹어야 했다. 퇴근이 늦는 아내 대신 내가 저녁을 준비하려고 한 시간 일찍 퇴근했다. 7시, 밥 먹기 이른 시간이라 둘째는 안방에서 나는 거실에서 할 일 했다.



미쳐 날뛴 나를 반성한다


 시간, 윗집에서는 이미 다양한 소음의 향연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거실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운동 경기가 한창이었다. 어디서 어디로 오가는지 소리로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기분이 좋을 때 괴성을 지른다. 그 소리마저 계단실을 가득 채웠다. TV 소리에 묻히길 바라며 볼륨도 키웠다. TV 소리를 뚫고 들렸다. 소심하게 층간소음복수를 감행했다. 폼롤러로 천정 이곳저곳을 두드렸다. 두드리며 소리도 질렀다. 물론 들릴 리 없었다. 윗집에는 효과가 없었지만 안방에 있던 둘째는 고스란히 그 소리를 들었다. 


다음 날, 둘째가 쪽지와 간식을 챙겨 윗집 현관문에 매달아 놨다고 아내가 말했다. 쪽지에는 층간 소음 때문에 아빠가 화가 많이 났다고 적었단다. 아마도 전날 내가 소리 지르는 게 듣기 불편했었나 보다. 쪽지에 대놓고 적을 정도였다면 둘째에게는 내가 큰소리치는 걸 여전히 불안해할 수 있다. 아마도 더 어릴 때 내가 소리 질렀던 걸 기억하고 있어서일 수 있다. 화내는 내 모습이 보기 싫어서 일부러 먼저 나섰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생각이 드니 마냥 기특하다고만 할 수 없었다. 둘째에게는 없애야 할 기억이다.



배려가 배려를 낳는다


쪽지 때문인지 몰라도 어제는 그나마 잠잠했다. 어쩌면 쪽지 때문에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다. 오히려 이해 못 하는 우리를 더 탓할 수도 있다. 짐작 건데 그들도 피해자다. 주변이 조용할 때는 그 윗집에서 내는 소음이 우리 집에서도 들릴 정도이니 말이다. 그들도 그 정도 소음은 감내하며 지내고 있을 수 있다. 보복심리로 층간 소음을 발생시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저녁 한두 시간 아들과 놀아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이 전부일 것이다. 그 마음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나도 저녁에는 내 집에서 조용히 쉬고 싶는 게 인지상정이다.


까치발로 다니는 걸 바라지 않는다. 생활 소음은 당연히 날 수 있다. 중요한 건 상대를 배려하려는 마음이 있느냐이다. 어느 정도 선에서는 알아서 지켜주는 게 필요하다. 나도 그 기준이 어느 정도라고 정하지는 못하겠다. 절대적인 기준이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상대방이 먼저 배려하면 그 마음은 어떤 식으로든 전해진다는 점이다. '아랫집을 배려하고 있구나'라고 느껴지게 말이다. 언제까지 위아래 집으로 지낼지 알 수 없다. 있는 동안은 덜 불편하게 지냈으면 한다. 둘째의 노력이 빛을 발하길 바란다.



내 아이 챙기는 것도 잊지 말자


내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게 한 가지 더 있다. 둘째의 마음이다. 여전히 내가 소리 지르는 거에 안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가이다. 두 딸에게 대놓고 소리 지른 적 있었다. 그때는 나도 나를 통제하지 못했을 때다. 지난 6년 동안 내 나름대로 수양 중이다. 큰소리나 잔소리를 안 하려고 노력 중이다. 클수록 더 그래서는 안 된다. 어쩌면 이미 안 좋은 기억이 남았을 수 있다. 그 기억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더 좋은 기억으로 덮어주는 것이다. 그래야 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층간 소음 이전에 내 아이들 돌보는 태도를 잊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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