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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Feb 15. 2024

19년 차 자발적 외톨이 직장인

우리 회사는 해마다 2월에 산행을 간다. 한 해 동안 사건 사고 없이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상에서 안전 기원제를 지낸다. 이번 산행은 워크숍을 겸해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된다. 전 직원이 모여 내일까지 일영 유원지 내 모 리조트를 빌려 하룻밤 보낼 예정이다. 와~ 한 직장에 오래 다니니 이런 경험도 하네. 어쩌면 오래 기억에 남을 날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지금 구미에 내려왔다. 공사 수주를 위한 현장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설명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입찰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누군가는 반드시 참석해야 했다. 설명회 참석은 일주일 전에 결정됐다. 일주일 동안 오늘만 기다렸다. 나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산행에 참가하지 않게 되었다. 속내를 드러낼 수 없다는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지만 이 자유는 반나절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 날씨가 변수였다. 눈비로 인해 산행을 다음 날 가기로 한 것 같다. 내일 아침 시간 맞춰 산 입구 주차장으로 오라고 한다. 젠장.


산행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를 땐 힘들어도 정상에서 느끼는 맛을 잘 안다. 산만 타고 하산해 집으로 가면 더 바랄 게 없다. 하지만 이런 날 빠질 수 없는 게 술이다. 단합에는 술만 한 게 없다고 여전히 믿는 윗분들이다. 한 번 자리 잡으면 끝장을 보는 편이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와 여직원은 앉아 있는 게 고역이다. 그렇다고 도망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알아서 보내주면 좋겠지만 술이 들어가면 알아서가 되지 않는가 보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한지 끝까지 눈앞에 두려고 한다. 술이 어느 정도 취하면 가든지 말든지 신경 안 쓸법한데 취하는 것과는 상관없는가 보다. 


직장 생활 19년째다. 여전히 단체 생활이 불편하다. 업무 이외에 여럿이 모이는 자리는 가급적 피하고 싶다. 회사 선후배와는 아무리 친해지려고 해도 거리감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10년 이상 관계를 유지해 온 동료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친해지기 위해 만남을 갖기보다 친해진 사람과 반복해서 만나는 게 더 편하다. 아무래도 내 기준에 따라 골라서 사람을 사귀는 것 같다. 거리를 두겠다고 마음먹으면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도 가까워질 마음이 안 든다.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거리감이 들면 거리를 두고 관계를 이어간다. 어느 직장을 가도 늘 겉도는 편이었다. 스스로 아웃사이더를 자처했다.


누군가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도 걱정할 수 있다. 걱정해 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맞다. 나는 사회성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넉살 좋게 대화를 잘하지도 못한다. 실없는 농담은 안 한다. 먼저 술 한잔 마시자고 말도 안 꺼낸다. 또 분위기를 주도할 만큼의 말재주도 없다. 아무려면 어떤가. 그런 능력은 있으면 도움이 되지만 없다고 매장당하는 건 결코 아니다. 나는 내 나름 콘셉트를 잡았다. 자발적 외톨이인 듯 외톨이 아닌 게 내 콘셉트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관계를 이어간다. 그래야 덜 피곤하다. 대책 없이 거리가 좁혀졌을 때 서로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이제껏 많이 경험했다. 사회생활을 잘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상처 주고 상처받는 일은 만들지 않는다. 그게 내가 직장에서 관계를 유지해 가는 노하우다.


지금 직장을 7년째 다니는 중이지만 여전히 자발적 외톨이다. 매일 점심도 혼자 먹는다. 3년째다. 이미 익숙해졌다. 오히려 같이 먹는 게 불편하다. 나는 먹는 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같이 먹자는 말도 안 꺼낸다. 오히려 점심시간이 몸 건강 정신 건강을 챙기는 데 도움이 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1시간을 오롯이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이런 나를 익숙해한다. 아닐 수도 있고. 원치 않는 메뉴를 억지로 먹는 것보다 원하는 메뉴를 마음껏 먹는 게 더 나를 위한 선택이다. 선택에 후회 없다. 반대로 다른 동료들에게도 혼자 점심 먹기를 권하고 싶다. 억지로 같이 먹는 게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건 아니니 원한다면 혼자서 먹거나 혼자 보내는 시간을 꼭 가져보길 추천한다. 길지 않아도 혼자 있는 시간이 어쩌면 자신을 위해 꼭 필요할 수도 있다. 거리를 둠으로써 관계는 더 건강해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런 기질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달라져야 할 이유도 없다. 그저 생긴 대로 살면 그만이다. 적당히 함께하고 적당히 모른척하고 사는 거다. 누군가의 눈밖에 나지 않을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말이다. 가수 이효리가 2006년 모교인 국민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독고다이다. 그러니 남의 말 귀담아듣지 말고 알아서 잘 살면 그만이다"라고 말이다.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직장은 언젠가는 떠날 곳이다. 동료 중에도 평생 갈 사람 드물다. 살아보니 그렇다. 그러니 낄 때 안 낄 때 안 가려가며 동분서주할 필요 없다. 나의 필요에 의해 적당히 치고 빠지면 좋겠다. 그래도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영원히 이별할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먼저다. 내가 건강해야 남에게도 정성을 다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가끔은 휴식을 위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도 도움이 된다. 변할 수 없는 걸 고치려고 애쓰기보다 인정하는 쪽이 훨씬 현명해 보인다. 나도 그렇게 믿고 달라질 수 없는 건 인정했고 적당히 눈치 보며 낄낄빠빠 중이다. 


그나저나 내일은 기온이 떨어진다고 하니 옷 잘 챙겨 입고 나서야겠다. 내일도 비가 와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솔직히 산에 오르기 싫은 게 내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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