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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Feb 16. 2024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들

내가 나를 인식하고 있는 걸 인식하는, 메타인지

목소리가 작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묻는 말에 속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늘 입속에서 웅얼거렸다. 상대방이 잘 안 들린다고 말하면 그 말에 더 주눅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감이 부족했었다. 안다고 생각한 것들에 확신이 부족했었다. 모르는 걸 부끄러워했고, 몰라도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모르는 걸 배우기보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거라며 기다렸다. 심지어 아는 것도 제대로 아는지 나조차 나를 의심했었다. 그러니 매사에 자신감이 떨어졌고 목소리도 덩달아 작아졌다. 그래서인지 늘 나에 대한 평가는 중간 어디쯤인 것 같았다. 아홉 번 직장을 옮길 때도 환영받았던 곳도, 가지 말라고 붙잡는 곳도 없었다. 속된 말로 버리자니 아깝고 내가 갖자니 어딘지 아쉬운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스스로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내 수준을 알기에 언제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해 그럭저럭 큰 욕심부리지 않으면 남들만큼은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전까지 그렇게 살려고 했다.     


읽은 책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자신감도 올라갔던 것 같다. 직장인으로 느껴보지 못했던 조금 다른 자신감이었다. 직장에서는 별 볼일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독서만큼은 상위 1% 안에 들 거라고 스스로 자부했다. 그렇다고 회사에서나 주변 사람들에게 드러내지는 못했다. 책을 읽는 게 흉은 아니지만 책을 읽을 시간에 내 할 일이나 잘하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았다. 물론 주변 사람이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때는 괜한 자격지심이 있었다. 무엇보다 책에서 배운 것들이 업무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일찍부터 알아야 했던 당연한 것들을 그제야 배우게 된 걸 부끄러워해야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르기 때문에 책 읽고 공부한다는 걸 그제야 이해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는, 모르는 걸 모른다고 인정하는 용기가 배움의 시작이라는 거다. 이런 자신감을 진작 가졌다면 아마도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소심한 모습은 안 보였을 것이다. 꾸준히 책을 읽으며 늦게라도 내 목소리에 힘을 싣는 중이다.     


글을 쓰면서도 자신감이 올라갔다.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던 것도 책을 읽고 얻은 자신감 덕분이었다. 만약 글을 먼저 쓰려고 달려들었다면 시작도 못했거나 시작했어도 얼마 못 가 포기했을 수 있다. 7년째 글을 써보니 자신감 만으로는 드러내고 글을 쓴다는 게 만만한 게 아니었다. 내 글을 공개한다는 자체로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또 남들에게 이해와 공감을 받는 글을 쓰는 것 또한 만만치 않았다. 괜한 말 썼다가 흔한 말로 물어 뜯기는 경우도 생길 테니 말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 필요했다. 그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했다. 답은 간단했다. 쓰고자 하는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다. 안다는 건 경험했다는 의미이다. 경험만큼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게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제가 되는 건 경험도 없이 아는 척하는 글이다. 잠깐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겠지만, 결국엔 밑천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내 글에는 첫째로 경험을 쓰려고 노력했다. 플러스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아 글을 썼다. 무엇보다 내가 쓰려는 내용에 대해 늘 의심하고 확인했다. 잘못된 정보는 없는지 틀린 내용을 쓰지 않았는지 늘 되물었다. 어쩌면 그게 공부인 것 같다. 안다고 믿는 것들에 한 번 더 의문을 품는 것, 틀리면 다시 공부하고 언제나 질문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장점은 이런 태도를 갖게 된 거라 생각한다. 배우기를 게을리했던 내가 글을 쓰기 위해 알아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논어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곧 앎이다.' 그동안 나는 반대로 살아왔다. 아는 것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모르는 건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니 늘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책 읽고 글을 쓰면서 아는 것들에 의심을 품고, 모르는 걸 인정했고 궁금한 건 배우려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논어에서 말하는 앎의 정의처럼 선명하진 않았지만, 나에 대해 조금씩 '인식'하는 중이다. 이처럼 내가 나에 대해 올바로 인식하게 되는 걸 심리학 용어로 '메타 인지'라고 한다. 메타 인지가 필요한 이유는 나처럼 모르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과 알고 있는 게 전부인 양 믿는 사람의 생각을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 나 지식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검증함으로써 보다 나은 인지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배운 걸 상대방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올바로 베웠다고 말한다. 설명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말로 설명하는 것과 글로 풀어내는 것이다. 표현 방법은 달라도 결국 명확하게 알아야 올바로 전달할 수 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나는 말로 설명하기 전에 글로 써보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생각에 체계를 잡는 데 글로 써보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또 어떤 면에서는 글로 쓰는 게 더 높은 사고력을 필요로 할 수 있다. 말은 표정과 몸짓 뉘앙스 등을 활용할 수 있지만 글은 그렇지 않다. 종이에 옮겨 적은 글은 오로지 글로 써 상대방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로 적는 과정에서 앞서 말한 질문과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할 수도 있다. 이렇게 글로 적는 과정이 결국 자신의 메타인지를 향상해 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배움에는 때가 없다고 했다. 모르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 없고 아는 걸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세상에는 배우는 사람과 배우지 않는 사람으로 나뉜다. 모르는 걸 묻는다고 흉보는 사람 없고 배우려 하지 않는 이에게 먼저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다. 내가 7년째 글 쓰고 책 읽으면서 배운 것들이다. 많이 안다고 자신감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모른다고 주눅 들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내가 나를 올바로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게 배움의 시작이다. 남은 시간을 의미 있고 알차게 보내는 데 배움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배우는 내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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