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Feb 27. 2024

명함, 그게 뭐라고


나는 내 명함이 마음에 안 든다. 내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는 게 회사 명함이다. 만들어주는 대로 갖고 다녀야 한다. 마음에 안 든다고 상대방에게 안 건넬 수도 없다. 그저 부끄러움은 혼자 몫이다. 다른 직원은 아무렇지 않을지 모른다. 유난 떤다 그럴 수도 있다. 이 또한 개인 취향이니 존중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속으로만 생각한다.


내 책상 모니터 아래 명함이 붙어 있다. 회사 전화, 팩스 번호, 주소를 외우지 못한다. 통화 중 필요할 때 커닝용이다. 그러니 늘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나마 작년에 로고는 새로 디자인했다. 로고는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 아마도 돈을 주고 작업한 것 같다. 그러지 않고는 안 나올 디자인이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명함은 업무적으로 만나는 상대방에게 나를 알리는 기능을 한다. 명함에는 회사와 개인 정보가 들어간다. 이 중 상대방에게 필요한 건 담당자인 나의 개인 정보다. 어떤 회사는 이를 위해 개인 정보를 도드라지게 디자인한다. 나는 그걸 선호한다. 상대방 명함에서 휴대폰과 이메일 주소가 잘 보이면 좋은 명함이라 인정한다. 내 명함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촘촘하게 박혀 있어서 잘 안 보인다. 돋보기로 들여다볼 정도는 아니지만 글씨를 더 키워도 될 만큼의 충분한 여백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명함은 한 번에 3~5백 장씩 찍는다. 매수가 많을수록 싸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아홉 번 이직했는데 단 한 곳에서도 명함을 다 쓴 적 없었다. 영업직도 아니어서 추가로 제작해 본 적도 없다. 퇴사한 직원 책상에는 언제나 처음 받은 거의 그만큼의 명함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남은 명함을 처리하는 것도 일이다. 개인 정보 때문에 쓰레기통에도 못 버린다. 한 장씩 파쇄해 버리는 것도 일이라 대개는 쓰레기 통 깊숙한 곳에 꼭꼭 숨겨 버리는 게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외부 활동이 많은 직군을 제외하고 명함 돌릴 일이 점점 줄어든다. 전화로 연락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명함은 문자로 주고받는 것도 한 몫한다. 영업 담당자도 온라인 홍보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발로 뛰는 횟수가 그만큼 줄기도 한다. 그러니 대개 개인 SNS에 명함을 올려놓거나 이메일에 첨부하거나 문자를 활용한다. 또 건네받은 명함이 스마트폰과 연동돼 그 자리에서 자신은 물론 회사 홍보까지 가능하다. 제작비가 비싸지만 홍보가 생명이 회사에서는 투자할 가치 있을 테다. 종이 명함이 꼭 필요한 시대는 점점 멀어져 가는 게 아닌가 싶다.


명함을 주고받는 건 비즈니스 예절에서 중요하다. 명함은 상대방에게 내 이름이 바로 보이게 건네야 한다. 플러스 내 이름과 직함을 함께 말해준다. 건네받은 명함은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상대방이 보이는 곳에 둔다. 받자마자 주머니에 넣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한다. 입장 바꿔보면 안다. 내 명함을 상대방이 받자마자 주머니에 욱여넣는 것 본다면 어느 누가 기분이 좋겠는가? 명함이 곧 상대방이라고 생각하면 보이는 곳에 두는 게 당연해진다. 또 이왕이면 명함 지갑을 따로 준비하길 권한다. 주머니나 가방, 다이어리를 뒤져서 나온 명함을 건네받는 게 썩 기분 좋지 않으니 말이다. 이 또한 입장 바꿔보면 답이 나온다.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 영업 잘하는 사람은 명함을 잘 활용한다.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명함에 기록하는 거다. 만난 날짜, 장소, 시간, 상대방의 인상착의 등을 메모해 둔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날 때나 통화를 하기 전 메모해 둔 명함을 확인하면 실수도 줄이고 대화도 풍부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상대방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사람은 관심받는 걸 좋아한다. 사소한 걸 놓치지 않는다면 아마 더 큰걸 얻을 기회도 생기지 않을까 싶다. 인지상정이니 말이다.


직장인이 새 명함을 받는 경우는 두 가지다. 입사 또는 승진이다. 굳이 하나를 더 하면 로고나 회사 정보가 바뀐 경우 정도다. 지급받은 명함을 다 쓰고 새로 찍는 건 예외다. 또 쓰던 명함을 버리는 것도 두 경우다. 퇴사 또는 승진이다. 내 서랍에는 작년에 바뀐 회사 로고가 찍힌 명함이 250장 정도 남아 있는 것 같다. 1년 동안 현장으로 관공서로 거래처에 쫓아다녀도 명함 건넬 경우가 많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남은 명함을 버려야 할 것 같다. 내일이면 새 명함을 받는다.  나는 7년 만에 승진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자, 내가 한 번 돼보지 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