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이나 창문을 등지고 앉는 자리를 바랐다. 등 뒤로 시선이 느껴지지 않으면 안도감이 든다. 딴짓도 마음껏 할 수 있다. 일할 때도 집중이 잘 된다.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 그러니 내 마음대로 차지할 수 없는 자리이다. 어느 곳이나 좋은 자리는 윗사람들 몫이다. 서열이 낮을수록 한눈에 보이는 자리에 앉는다. 언제나 눈에 띄는 곳에 있어야 일도 시키고 관리가 쉽기 때문이다.
등 뒤에서 나를 지켜보는 시선이 있다는 건 부담이다. 딴짓한다고 잔소리하지 않지만 시선의 존재만으로도 감시로써 충분하다. 선생님이나 되니 잔소리하지 직장에서 그럴 일은 드물다. 알아서 자기 할 일 하고, 시키는 일 잘하는 게 직장인의 참된 도리이다. 도리를 다하지 않는 일부 때문에 칸막이를 없애고 기꺼이 뒤통수 뷰를 선택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도리를 다하는 이들에게 딴짓은 일종의 보상이다.
학교 때는 키 순서대로 자리에 앉았다. 키가 작은 나는 늘 두 번째 줄이었다. 그때 등뒤 친구들은 불편한 존재는 아니었다. 뒷자리를 동경했지만, 자라지 않는 키에 현실을 받아들였다. 사회에서는 경력으로 줄을 세웠다. 학력도 경력도 짧은 탓에 정해주는 대로 앉는 게 숙명이었다. 학교처럼 앞 뒤 구분은 없지만 늘 뒤통수를 허락하는 게 내 자리였다.
어떤 회사는 친절하게 사방을 막아줬다. 또 다른 회사는 사생활은 없다는 식의 자리 배치다. 구석 자리는 아닐지언정 최소한의 파티션이라도 둘러주길 바랐다. 이 또한 내 의지로 할 수 없으니 잠자코 일이나 해야 했다. 바라는 자리를 갖고 싶으면 경력을 세탁해 뱀의 머리가 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조직의 단점은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원하는 자리를 포기하고 용의 꼬리가 되어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는 게 좀 더 나은 처세다. 고작 자리 때문에 수명 단축할 이유 없다.
직장에서 뒤통수를 내려다보는 느낌은 어떨까? 일종의 권력의 맛일까? 아니면 책임감이 더 클까? 뒤통수를 보이는 건 암묵적인 복종이다. 반대로 뒤통수를 볼 수 있는 위치에는 책임이 따른다. 어느 쪽이든 생사 걸고 한 배를 탄 관계다.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믿음으로 따라야 한다. 상호 의존과 쌍방 신뢰가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권력을 휘두르고 반란을 일으킨다.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니 뒤통수에 섰다고 으스대지 말고 뒤통수 보인다고 꼬리 내릴 필요 없다.
부장을 달았지만 부서에서는 여전히 막내다. 자리도 옮기기는 했지만 여전히 뒤통수를 내놓는다. 서열을 중시하는 조직이라서 끝까지 남지 않는 이상 뒤통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에 못 가지 싶다. 그렇게 까지 오래 뼈를 묻고 싶지도 않다. 머지않아 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내 책상을 갖는 게 꿈이다. 남의 뒤통수가 아닌 근사한 경치를 눈앞에 두고 싶다. 서열도 없고 복종도 없고 권력의 단맛도 없는 그런 자리이고 싶다. 그날을 위해 이제 내 자리로 돌아가야겠다. 출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