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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r 11. 2024

땜질식 인생을 더는 살 수 없었다

전기 자동차는 도로 정체를 해결할 수 없다. 내연 기관만 바뀌었을 뿐 자동차 숫자는 끊임없이 증가할 것이다. 이는 눈속임이나 다름없다. 도로 정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근무 시간 단축, 대중교통 사용자 편익 증진, 교통 체계 개선, 자가용 사용 제한 정책 등 삶의 모습이 변했을 때 도로 정체에도 변화가 생긴다. 이 말은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 방법은 원인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라는 의미이다. 

한 사람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지금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무엇이 문제인지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내가 가진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하나씩 들여다보며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그래야 땜질식 대책이 아닌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서른 살에 제대로 된 회사에 입사했다. 낙하산이나 다름없었다. 현장 근무에 계약직이었다. 직함은 주임이었다. 나보다 어린 먼저 입사한 직원은 기사로 불렸다. 나도 기사나 다름없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혜택을 받았다. 직함을 달았지만 그만한 능력은 없었다. 현장도 회사도 첫 경험이었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깜깜했다. 며칠은 눈치만 봤다. 시키는 일만 했다. 간단한 표 작성이나 현장에 출근한 근로자 수를 세는 게 전부였다. 몇 주 반복하니 얼굴이 익고, 자리가 편해지고, 업무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 일찍 익숙해진 탓일까, 긴장이 풀렸던 것 같다. 여전히 아는 게 없었지만 배우려고 안 했다. 모르는 걸 배우려고 하지 않고, 알려주고 해야 할 일만 했다. 맡은 일도 하나씩 늘었지만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시키니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추가 왜 필요하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하니 아무 생각 없이 달았던 것 같다. 서른에 시작한 직장 생활은 스스로 첫 단추를 잘못 꿰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첫 구멍을 잘못 찾아간 단추는 결국 잘못 입은 꼴이 되고 만다. 


그 뒤로도 직장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내 일에 자부심을 갖지 않았다. 나와는 맞지 않는 일이라고 불평만 했지 벗어나려고 안 했다. 나이만 먹을 뿐 업무 역량이 나아지지 않았다. 언제 깨질지 모를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혹여 얼음이 깨져 물에 빠져도 누군가 다시 구해줄 줄 알았다. 곡예나 다름없는 삶을 아홉 번 직장을 옮기는 동안 이어왔다. 적어도 직장인으로서 서른 살에 나와 지금의 나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언제까지 이런 직장인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여기까지가 직장만 다녔던 2018년까지의 내 모습이었다. 이때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이전의 내 모습을 들여다봤다. 용기를 냈다.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마주하기로 했다. 직장만 옮기는 땜질식 대책은 더는 효과가 없을 것 같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나이 들어서까지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찾아보겠다고 선택했다. 용기와 선택은 과거의 나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미래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게 했다. 


지금의 나는 과도기를 겪는 중이다. 직장에 다니면서 직업인으로 가능성을 실험 중이다. 실험에 앞서 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질문하고 답을 찾았다. 교통 체증을 줄이기 위해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 것처럼 근본적인 물음을 고민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옳은 질문과 바른 답을 찾을 필요 있었다. 그래야 적어도 남은 삶은 이전과 같은 실수를 안 할 테니 말이다. 1년 가까이 탐색의 시간이 이어졌다. 직업인으로서 작가, 51퍼센트의 가능성을 믿고 도전해 보기로 했다.


배우길 주저하지 않았다. 모르는 건 잘못이 아니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게 더 큰 잘못이다. 과거의 내가 그랬던 탓에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 순순히 인정했다. 그리고 배웠다. 배움은 또 다른 가능성이었다. 작가의 역량을 성장시키는 데 배움만 한 양분은 없다. 어쩌면 배우지 않고는 작가로 성장해 갈 수 없다는 걸 이해했던 것 같다. 책을 읽고 사람에게 배우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며 차츰 성장해 갔다.


배웠으면 써먹어야 내 것이 된다고 했다. 배운 대로 하나씩 실천해 옮겼다. 매일 쓰는 게 작가라고 해서 매일 쓰기를 실천 중이다. 좋은 글은 좋은 생각에서 나온다고 했다. 좋은 생각은 바른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알려줬다. 불평, 불만, 화와 짜증을 멈췄다. 여전히 어렵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고 노력 중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 또한 꼭 필요한 태도였다. 시간을 아끼고 게으름을 경계했다. 나눔을 실천하며 고인 물이 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안다고 자랑 말고 모른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이런 나도 먼저 걸었던 이들을 뒤따라 걷는 거다. 그들에게 배운 대로 하나씩 따라 하는 중이다. 그들이 간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대로 따라 걸으면 그들처럼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믿음이 생기면서 믿는 대로 하게 되었다.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도 앞으로도 나는 내가 믿는 가치에 따라 행동하고 실천할 것이다. 결코 나 잘났단 자랑이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 적어도 지금은 내가 하는 모든 게 옳다고 믿기에 그대로 따르는 것뿐이다.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나와, 직업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나는 분명 다르다. 이전의 잘못된 태도를 고쳐 보다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과거의 내가 어땠는지 인식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문제부터 이해한 뒤 답을 찾으려고 애썼다. 전제를 인식하고 이해하지 못한 해결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나머지 인생이 달린 문제이기에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고민했고 신중했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삶으로 이어졌다. 


여전히 직장에 다니며 매일 같은 일과를 반복 중이다. 나에게 있었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삶을 살아내는 중이다. 이 삶의 끝에 어떤 모습이 기다릴지 나는 모른다. 결과는 누구도 모른다. 다만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그 일을 좋아할 뿐이다. 해야 할 일을 즐길 수 있다면 분명 다른 결과를 얻게 될 거라 믿는다. 과거 내 모습과 현재 내 모습은 정반대다. 당연히 지금 내 모습에 만족한다. 과거의 나를 마주한 용기와 변화를 결심한 선택 덕분에 기회를 얻었다. 어렵게 만든 기회를 잃고 싶지 않다.  지금 변화 앞에서 망설이는 누군가 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자신을 들여다볼 용기 내는 게 변화의 시작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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