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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r 09. 2024

궁금해하지 않게 보여주세요

"딱 3천만 원만 지원해 주세요.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코로나가 한창 창궐하던 때였다. 부서장에게 3천만 원만 지원해 달라고 했다. 인력 부족한 것은 내 몸을 때워서라도 하겠으니, 돈만 달라했다. 그 돈으로 전시회에 설루션을 출품하고 싶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부서는 제대로 된 전시회에 나가본 적이 없던 터였다. 나는 길게 보고 한 걸음 떼야한다고 생각했다. 하던 데로만 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다 믿었다.


누구는 세일즈 하는 놈이 왜 마케팅까지 하려고 하느냐고도 했다. 그런 반론에 반대로 맞섰다. 이번 기회에 우리 설루션을 얼마큼 각색하고 더 풍성하게 설명할 수 있는지 고민하면 좋겠다 했다. 우린 전부 똑똑하니까 분명히 머리 맞대면 그림 하나 이쁘게 나올 거라고. 다른 부서가 했던 현장 판매 중심의 전시회보다는 설루션을 소개해서 잠재 고객을 확보하는 걸 목표로 하자고 했다.

[출처] 장기 예측 능력이 중요하다.|작성자 저스틴프로



앞에 글을 읽고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 가지 않나요? 저는 도전을 즐기고, 변화에 앞장서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일 거라 짐작됐습니다. 여러분 의견은 어떠신가요?


내가 쓰는 글에는 내 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독자에게 설명하는 게 소통의 시작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나를 표현하는 단어는 다양합니다. 내성적이다, 덤벙댄다, 남 앞에서 나서지 못한다, 자신감이 부족하다, 계산적이다, 공감을 잘한다, 눈물이 많다, 도전을 즐긴다, 목소리가 크다 등등 다양한 표현이 있습니다.


주문이 많은 지 세 명 다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다. 주문했던 음료가 잘못 나왔다. 한 손에 음료수를 들고 계산대 앞에서 서성거렸다. "저기요" 돌아보는 직원이 없다. 몇 발 움직이며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길 바랐다. 돌아보는 직원이 없다. 몇 발 더 움직여봤다. 음료수를 들어 올려도 봤다. "저기요" 여전히 돌아보지 않는다. 


잘못 나온 음료수를 바꾸기 위해 매장 직원을 찾는 상황입니다. 여러분 눈에는 이 사람 성격이 보이시나요? '소심하다'라고 쓰지 않아도 소심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의 행동 말투 상황에서 그 사람이 어떤지 눈에 그려지는 겁니다.


우리는 글을 쓸 때 나와 내 주변 사람을 '설명'합니다. '나는 소심하다', '그는 냉정하다'라는 식으로 말이죠. 어떤 태도를 보일 때 소심하다고 할까요? 소심함의 기준이 있을까요? 어느 정도 냉정한 태도를 보여야 냉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소심, 냉정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다릅니다. 그러니 단어로만 그 사람을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게 뭉뚱그려 쓰면 독자도 그 사람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지 못할 테고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다양한 상황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내 성격이 드러나는 상황을 글로 보여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독자에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독자에게 나를 '단어'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내가 경험했던 '상황'을 보여주고 판단하게 하는 겁니다. 


보여주는 글은 세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첫째, 분량을 채우기 수월하다. 

둘째, 읽는 재미가 있다. 

셋째, 독자의 이해를 돕는 친절한 글이 된다.


독자는 친절한 글을 좋아합니다. 쉬운 단어로 읽으면서 바로 이해되는 게 친절한 글입니다. 앞에도 적었듯 상황을 보여주는 게 독자를 배려하는 것입니다. 작가에게 배려받는다고 느끼는 독자는 어떨까요? 당연히 작가를 좋아하게 되겠지요? 어쩌면 작가 쓴 글을 좋아한다기보다, 친절한 글을 쓰는 작가를 좋아하게 되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보여주는 글의 장점이 또 하나 있었네요. 


"넷째, 독자가 작가를 좋아하게 된다."  




https://docs.google.com/forms/d/1vp7NafBv7Gdxi3xN7uf0tr1GV-aPT5lbsIZMryYnOlY/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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