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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r 12. 2024

갈팡질팡해도 쓰는 게 낫다


6시 45분, 신호가 슬슬 오는 게 딱 화장실에 갈 타이밍인데 볼일 보고 나갈까? 아니다, 볼일 보면 제시간에 도착 못할 것 같다. 일단 가방 메고 나가자. 걸어가면 7시에 도착할 것 같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데 이마에 빗방울이 떨어진 것 같다. 설마, 안 오겠지. 우산을 사무실에 두고 왔는데. 날씨 어플을 보니 8시에 비 올 확률이 80퍼센트다. 그 사이 몇 방울 더 맞은 것 같다. 에이,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횡단보도에 서니 버스가 온다. 지금 저 버스 타면 편하게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데. 우산을 들고 나오면 걸어가야 하고 당연히 7시까지 못 간다. 비는 아직 안 오니 일단 버스를 타자. 세 정거장 이동 후 내렸다. 7시 2분에 도착했다. 2층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쓰기 시작했다.


10여 분 동안 갈팡질팡했다. 평소 같으면 고민하지 않고 사무실을 나섰을 거다. 장에서 보내는 신호는 한 시간 정도 버틸 수 있다. 비가 오는 건 내 의지대로 안 된다. 우산 없이 나섰다가 비라도 오면 낭패다. 사무실까지 걸어서 10분이라 마냥 무시할 수 없었다. 우산을 미리 챙겼으면 어땠을까? 고민 없이 직진했을 거다. 굳이 버스 탈 고민 안 해도 됐을 거다. 10여분 걸어서 제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했을 터다. 비가 온다는 예보와 손에 없는 우산 탓에 오락가락했다.


살다 보면 더러 갈팡질팡하는 때가 온다. 예고 없이 약속이 취소되면 뭘 해야 할지 난감하다. 갑자기 내리는 비를 맞으며 계속 갈지, 피했다 갈지 고민이다. 눈앞에서 떠나는 버스를 보면 다음 차를 기다릴지 5분을 더 걸어 지하철을 타러 갈지 망설인다. 망설여질 때 어떤 선택을 하든 미련이 남는 법이다. 내 선택에 확신이 없어서일 수 있다. 선택하지 않은 게 어쩌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실상 어떤 선택을 해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인간은 만족할 줄 모르게 태어났으니 말이다.


선택의 무게와 크기가 커져도 마찬가지다. 큰돈이 드는 결정, 인생이 걸린 선택, 대가를 치러야 할 판단까지,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은 것에는 미련이 남는 법이다. 하지만 남들은 그런 선택을 잘만 내리고 매번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만 항상 망설이는 건지 의아하다. 차이가 무엇일까?


선택을 믿는 거다. 한 번 결정하면 두 번 생각하지 않는다. 선택하지 않는 것에 미련을 버린다. 선택한 걸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걸 증명해 보인다. 스스로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런 식의 판단이 계속되면 누가 봐도 올바른 선택을 하는 걸로 보이지 않을까?


나도 십여분 동안 갈팡질팡 했지만 결국 원하는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노트북을 열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비 예보, 장 예보(?)에 버스까지 눈에 보이니 오락가락했다. 그래도 결국 오늘 쓸 글을 위해 시간을 만들어 냈다. 선택에 앞서해야 할 일,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창 밖으로 오가는 사람 손에 우산이 들렸다. 카페를 나서기까지는 30여 분 남았다. 그 사이 비가 그치면 좋겠다. 안 그치면 직원에게 부탁해 우산을 빌려야겠다. 빌려준다면 말이다. 우산을 들고 왔으면 별 고민 안 했겠지만 이미 우산은 내 손에 없다. 그럴 땐 그 상황에 맞게 대처 방법을 찾으면 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비도 때에 따라 얼마든 대응할 수 있다. 만약 우산 때문에 갈팡질팡 하다 사무실에 눌러앉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지금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거다. 장도 시원하게 비웠을 테다. 그러고 나면 남는 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마치 뒤처리 안 한 듯한 찝찝함만 남았겠지.


한 편의 글을 쓸 때도 그렇다. 글감, 단어, 문장, 메시지 등 셀 수 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누구는 망설이다가 포기하고 누구는 꾸역꾸역 한 편 써낸다. 이것저것 간만 보다가 포기하는 것보다 그래도 오락가락하며 끝까지 써내는 게 더 낫다. 당연하다. 마침표를 찍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가져갈 수 있는 건 다르니 말이다. 대가들처럼 완벽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어쩌면 대가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기  그 잘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 같은 초보가 해야 할 일은 뻔하다. 망설이고 고민하기보다 자신의 선택을 믿고 끝까지 써내는 거다. 그래봐야 고만고만한 글이다.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그저 자기만족으로 쓰면 그만이다. 쓰고 안 쓰고만 남을 뿐이다. 이 순간 쥐어짜며 글 한 편 완성했다면 그걸로 족하다. 분명 내일 쓰는 글은 적어도 오늘 쓴 글보다는 단어 하나 정도는 나아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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