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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복 May 08. 2018

자작시로 읽는 에세이(3)-자유

  

무엇을 하고자 하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 일체의 욕망을 버리고// 어디로 가고자 하는/ 어디로 가려하는/ 일체의 의지도 내려놓고// 나를 속박하는/ 나를 억압하는/ 일체의 체제와 형식을 거부하고// 숨 쉬고 싶을 때 숨쉬고/ 밥 먹고 싶을 때 밥 먹고/ 잠자고 싶을 때 잠잔다// 목숨을 내주어도 좋다/ 목숨과 바꾸어도 좋다/ 자유를 지킬 수만 있다면//(졸시, <자유> 전문)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부모님께 어떤 마음을 갖고 있을까? 나는 돌아가신 부모님께 감사드리는 게 있다. 바로 한 번도 나를 속박하지 않은 것. 나는 청소년기를 엄청 헤매면서 보냈다. 속이 답답하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면 낮밤을 가리지 않고 훌쩍 집을 나서곤 했다. 그리고는 마그마처럼 들끓는 욕망과 실타래처럼 엉클어진 생각에 사로잡혀 몇 시간이고 산과 들로 쏘다녔다.      


그런 막내아들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심경은 어떠하셨을까? 하지만 부모님은 한 번도 “왜 나가냐? 어디 가냐?” 묻지 않고, 아들의 방황이 끝나기만을 묵묵히 기다리고 이해하려 애쓰셨다. 아마 부모님은 어릴 적부터 간섭과 속박을 싫어하는 내 성격을 파악하고 계셨던 것 같다.      


내가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되어보니 이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식에 대한 연민도 잠시 “도대체 왜?”라는 생각에 먼저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런데 부모님은 어떻게 그 순간들을 묵묵히 참고 견딜 수 있었을까?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키워보아야 철이 든다고 했던가. 어버이가 되어 자식을 키우면서 나는 절로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     


열린 공간인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탓일까. 나는 닫힌 공간을 싫어한다. 아니 견딜 수 없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대구 도심의 좁은 아파트와 주택에서 살았는데, 미칠 지경이었다. 온종일 자동차가 뿜어내는 소음과 온갖 냄새, 밀폐된 가옥구조는 물론 조용하게 방해받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공원이나 녹지공간의 부족 등 도심은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이런 도시를 왜 좋아하는지, 땅값은 왜 이리 비싼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만일 외계인이 있어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에 갇혀 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할 수만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작은 집일지라도 하늘과 땅이 시원하게 열린 공간에서 살고 싶었다. 문제는 돈. 명색이 외국에서 공부한 법학박사라고 해도 수중에 돈 한 푼 가진 것 없으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빈털터리주제에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는 없었다. 냉혹한 현실에 의해 강요된 삶은 고통 그 자체였다.      


사실 나는 무엇이 되겠다, 무엇을 공부하겠다라는 뚜렷한 목적이나 목표의식도 없이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게다가 딱딱한 법학은 도무지 적성에 맞지도 않고, 재미도 없었다. 갑과 을의 소유권을 따지는 민법도, 누가 누구를 단죄하고 처벌하는 형법도 싫었다. 헌법은 재미있었지만 학문의 성격상 권력과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나는 누구와 다투고 싸우기를 싫어한다. 민주화운동의 거센 바람이 불던 때 여차하면 교도소행도 감수해야 할 상황이라 겁도 나고, 좁은 감방에서 오랜 시간을 갇혀 살 자신도 없었다. 헌법을 전공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국내법은 ‘쩨쩨해서’ 싫었다. 나는 어떤 체제와 형식에 구속받지 않고 ‘통 크고 자유로운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국제법이다.      


국내법과 달리 국제법은 원칙적으로 국가와 국가의 법률관계를 다룬다.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보편적으로 적용할 국제적인 원칙과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국제법의 할 일이다. 그러다보니 국제법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국가의 충돌과 갈등을 다루는 국내법에 비하여 스케일이 크다고나 할까.      


문제는 법학은 국제법 혹은 국내법이든 엄정한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국제법이든 국내법이든 법학은 엄정한 논리에 바탕을 두고 본질적으로 갑을병정의 법률관계를 따지고 물어야 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세세하게 따지고 묻거나 누구와 다투거나 언쟁하기를 싫어한다. 그런 내게 법학은 맞지 않았다. 그러나 어이하랴. 공부 밖에 할 줄 모르는 내게는 다른 선택의 자유는 없었다. 내가 원하는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결단을 내려야했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얼기설기 얽힌 국내현실을 떠나자! 프랑스로의 유학은 피할 수 없는 나의 선택이었다.   

   

그 선택에 따라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강의를 하면서 내가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바로 ‘자유’다. 이 땅의 학생들은 어릴 적부터 기성세대의 권위에 복종하고, 국가에 순응하도록 교육받았다. 그러다보니 국가체제에 대해 비판하고 자신만의 의견 제시를 극도로 꺼린다. 아니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이런 현상은 법학부는 물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 모두 별반 차이가 없다.      


매 학기 개강 후 3~4주 정도는 학생들과 난상토론을 벌인다. 국가라는 체제와 형식, 그리고 기성의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도록 요구하는 선생의 강요에 학생들은 격렬하게 반항한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내가 바로 주인(주체)이다. 나는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 국가의 모든 권력은 나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주권자는 바로 .      


나는 이 사실(진리)를 끊임없이 가르치고 반복하고 재확인한다. “내가 바로 권리의 주체(주인)”임을 깨달은 학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학생들은 한동안 두려워하고 당혹감에 빠진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우리에 갇혀있던 호랑이를 초원에 풀어놓아도 머뭇거리고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형국이랄까. 주인이 종복(從僕)을 두려워하도록 주입된 우리의 교육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유는 국가를 중심으로 한 거대권력과의 투쟁의 역사다. 자유를 얻고, 또 지키기 위해 죽고 다친 수많은 민중들-자유는 곧 피의 역사다. 자유는 민중들의 피를 먹고 자란다.      


자유는 국가를 중심으로 한 거대권력과의 투쟁의 역사다. 자유를 얻고, 또 지키기 위해 죽고 다친 수많은 민중들-자유는 곧 피의 역사다. 자유는 민중들의 피를 먹고 자란다. 이 사실을 잊는 순간 민주주의는 시대를 거슬러 과거의 권위주의로 퇴행하고 만다. 최근 우리 사회가 겪은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촛불혁명과 헌법재판소에 의한 박근혜대통령의 파면과 구속을 보더라도 우리가 어찌 이 자유를 가볍게 여길 수 있겠는가.      


자유와 평등은 새의 양 날개와 같다. 우리는 자유가 가진 그 역사적 의미를 후속세대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만일 우리가 자유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엄청난 혼란과 파국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수업시간에 나는 어린 제자들에게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하곤 한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자유다. 목숨을 내어달라고 하면 흔쾌히 내줄 수 있을지언정 자유는 내줄 수 없고, 또 내주어서도 아니 된다. 물러설 수도, 타협할 수 없는 민주주의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유다.”      


 세월호 참사-최순실게이트-박근혜대통령 파면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자유와 민주주의원칙을 둘러싸고 심하게 요동쳤다. 거센 파도에 휩쓸리며 ‘대한민국호’는 위태롭게 떠돌고 흔들렸다. 하지만 전국에서 타오른 천만 시민의 함성과 촛불이 ‘대한민국호’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았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국가에게 물어야 한다. 그리고 늘 깨어 두 눈 부릅뜨고 국가권력을 감시해야 한다. 우리의 자유는 안녕한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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