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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복 Dec 27. 2017

자작시로 읽는 에세이(2)-미혹

미혹/채 형 복


오십 평생 지식을 추구하며/ 배우고 가르치다//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절대 확신은 오류를 낳고/ 살아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지다// 부처를 본받아 산 속으로 숨어들고/ 예수를 본받아 광야에서 헤매고// 칠흑 같은 어둠 속 한줄기 빛을 찾아/ 진리에 투신하던 젊은 날 기상은 어디 갔는가// 이것도 옳다/ 저것도 옳다// 양비兩非와 양시兩是의 중간에서/ 한 몸의 영달과 이익을 탐하다// 헷갈리지 마라/ 남은 인생 노욕老慾으로 비루하지 않으려거든// (졸시집, 「바람구멍」 중에서)


내가 처음으로 지적 호기심을 느낀 나이가 열 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어느 날 나보다 열여덟 살 위인 맏형이 내게 어린이동화책 두 권을 사주었다. 난생 처음 받아본 선물이었다. 시골이라 서점이 있을 리 만무하고, 학교 갖다 와서 하는 일이란 친구들과 산과 들에서 뛰어노는 게 일상인 시절이었다. 나는 동화 속 상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워낙 오래 전 일이라 이제는 그 책의 제목도, 내용도 어슴푸레하다. 하지만 나는 표지가 너덜너덜하도록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역시 열 살 때의 일이다. 어느 여름날로 기억한다. 세 살 위의 형과 다투고는 뒷산으로 치달렸다. 산꼭대기에 앉아 씩씩거리며 화를 다스리며 앉아 있었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꾸부정한 허리를 한 방물장수 할머니가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었다. 머리에는 작은 몸이 가려질 정도의 보따리가 얹혀있었다. 마치 천형으로 무거운 바위덩이를 짊어진 시지프스와도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러움에 젖어 절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삶과 죽음에 대한 무상, 그리고 자각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그때의 그 느낌을 어린 나는 <나그네>란 제목의 동시로 남겼다.


천리타향 길 걷는 나그네/ 그는 무슨 곡절이 있는 듯/ 아주 심각한 표정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무슨 깊은 시름에 잡혔나/ 가을 하늘은 파아란 것이 곱기도 하건만/ 그 나그네는 무슨 사연이 있을까?//


열 살의 어린 나이에 찾아온 지적 호기심,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무상. 마른 날 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을 맞은 듯 내 머릿속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산과 들을 헤매고 떠돌았고,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책들을 찾아 읽었다. 그날부터 나는 사뭇 진지하고 심각하였고, 웃을 줄 모르는 소년이 되었다. 사춘기 시절, 어쩌다 웃는 내게 고종여동생은 말했다. “오빠의 웃음은 한 번도 웃어보지 않은 사람이 웃는 웃음 같아.”


어쩌면 나는 너무 어린 나이에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깨달음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그 충격은 마치 빅뱅과도 같아서 나의 온 몸과 마음의 구석구석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렸다. 이십대 중후반까지 나는 정신없이 휘둘리고 흔들렸다. 어디로 가는 지도 몰랐다. 마음가는대로 흘러내렸고, 떠돌았다. 한 때는 스스로 음식을 거부하기도 했고, 또 다른 때는 몸이 음식을 거부하여 몇 달 동안 밥 한 숟가락도 먹지 못했다. 쓰러져 누운 나는 아팠다. 아파하는 막내아들을 바라보며 어매는 말없이 속으로만 울었을 것이다.


20대 중반에 이르러 비로소 오랜 방황을 접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내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어느 날 재야(在野) 스승의 한분으로 모시던 무속인에게 독립을 선언했다. “나는 이제 신을 버리고 인간으로 살아갈 것이다.” 나의 이 말에 스승은, “아이고, 아지야(아재, 아저씨의 경상도말), 인간이 우째 신을 버리노. 신을 거역하고 우째 살아가노.” 이 날 스승에게 내뱉은 선언을 통해 비로소 나는 내 삶의 주체이자 주인으로-독립적인 한 인간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짜라투스트라가 “신은 죽었다!”고 한 것에 맞먹는 선언이었다.


본격적으로 정신적 방황을 시작한 열다섯 살 중2때부터 ‘자주독립선언’을 한 스물여섯 때까지 만 10년 이상 학교공부는 아예 도외시하였다. 몸은 제도권교육에 얽매여있으면서도 영혼은 늘 자유를 갈망하였다. 체제와 형식 혹은 가치와 관념이든 나를 속박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였다. 그 모든 것에서 놓여나 자유롭고자 하였다.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 돈도 능력도 없는 내가 학문의 길에 들어선 본질적 이유는 바로 자유로운 삶’-이 때문이다.


부처는 깨달음을 가로막는 세 가지 독(三毒)이 있으니 “탐, 진, 치”(탐욕, 성냄, 어리석음)라고 갈파하였다. 평생 공부꾼(학자)으로 살고 있는 나로서는 삼독 중에서 어느 것 하나인들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세속의 삶을 살면서 물욕과 권력, 그리고 사회적 지위 등을 탐하지 않고 초연하기란 쉽지 않다. 나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차별 앞에 성내지 않고 참고 있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늘 지식을 추구하고 가르치고 연구하는 학자로서 자신이 어리석다는 평가를 받거나, 또 스스로 어리석다고 시인하는 것은 죽기보다 곤혹스런 일이다.


학자로서 가장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하는 게 있다. 바로 연륜을 더하면서 아집(我執)에 빠져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절대 확신을 갖는 것이다. 물론 학자로서 도저히 물러설 수도, 또 타협할 수 없는 가치와 정의 앞에서는 당연히 당당해야 한다. 문제는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이것도 옳다, 저것도 옳다”는 식의 양비(兩非)와 양시(兩是)에 빠져 한 몸의 영달과 이익을 탐하는 것이다. 어느 날 학문에 들어설 때의 각오는 잊어버리고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등골이 오싹함을 느낀다.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다. 또 내가 학자로서 대학현장에서 연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칠 시간은 그보다 더 적다. 젊을 때는 이리저리 방향을 잃고 헤맬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탐진치’에서 벗어나 명철한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실천해야 하는 나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 한줄기 빛을 찾아 진리에 투신하던 젊은 날의 기상을 되살려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에게도, 세상에게도 속지도 말고, 속이지도 말자. 무엇보다 헷갈리지 말자. 남은 인생 노욕(老慾)으로 비루하게 살지 않으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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