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매일 아침/ 거울을 본다/ 머리를 손질하고/ 화장을 고치며/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거울을 보는 이유는/ 단 하나/ 타인의 시선/ 거울은 수천수만의 눈이다/ 나를 바라보고/ 규정하는 칼이다/ 단매에 깨트리지 못하고/ 다시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본다// (졸시, <거울> 전문, 시집「묵언」중에서)
거울은 보이는 대상을 모습 그대로 비춘다. 고우면 고운대로, 미우면 미운대로 거짓 없이 보이는 모습 그대로 비춘다. 매일 아침 우리는 거울 앞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 머리를 손질하고 화장하며 옷을 챙겨 입는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거울과 가장 먼저 만난다.
보리달마는 9년 동안 벽을 보며 ‘면벽수행’(面壁修行)을 했다. 달마는 9년이란 긴 시간 동안 무슨 이유로, 무슨 생각을 하며 벽을 마주하며 바라보고 있었을까? 그 벽을 바라보고 달마가 깨우친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달마가 세인(世人)들에게 던지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우리의 고민과 번민은 대부분 타인과 경쟁하고 비교하는 마음에서 일어난다. 세속의 삶을 살면서 타인과의 경쟁과 비교는 피할 수 없다. 어느 정도의 경쟁과 비교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타인을 통해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동기유발을 시키니까. 그러니 그런 상황을 무조건 비난할 수만은 없다. 자신이 처한 현실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 현실이 아무리 요동친들 세상만사 생각하기 나름이다.
문제는, 우리가 지나칠 정도로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생활하고 있다는 데 있다. 또 그에 따라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맞추도록 교육받는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갓난아기 때부터 다른 집의 아기들과 비교하기 시작한다. 걸음마가 조금만 늦어도 ‘혹시 우리 아기가 다른 집 아기보다 늦은 것은 아닐까?’ 걱정한다. 아기가 말문을 트고, 첫걸음을 떼기도 전에 부모들은 아이들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비교한다. 지독한 강박관념이다.
부모의 마음상태가 이러하니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쉼 없이 몰아친다. 아이가 첫돌이 지나기도 전에 교육이란 명분으로 사교육시장으로 몰아대고, 아이들이 입는 옷과 장난감, 웃음소리 하나까지 민감하게 반응하고 신경 쓴다. 이런 지경이니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과도한 경쟁 속에서 부모와 교사, 그리고 어른들의 눈을 의식하고, 절대적인 권위와 체제에 순응하는 생활방식에 길들여진다. 또래친구들마저 협력과 연대가 아니라 경쟁과 비교의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나보다 똑똑하고 힘 있는 친구 앞에만 서면 괜히 주눅 들고, 반대로 나보다 힘 없고 약한 친구를 무시하고 차별하며 괴롭히기까지 한다. 우리는 왜 이런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어릴 때부터 우리는 ‘나-자아’에 대해 배우고 성찰하지 못했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자 주체라는 ‘자아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오로지 타인의 눈으로 규정되는 노예이자 종복(從僕)으로서의 ‘수동적 나-자아’만 존재할 뿐이다. 과정은 없고 결과에 대한 평가만 남는다. 성적과 외모를 비교하여 평가(당)하는 ‘대상으로서의 나-자아’만 존재한다. 내가 주체적으로 ‘나-자아’를 정의하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나-자아’는 오로지 타인의 눈과 세상의 기준에 의해 정의되고 규정된다. ‘수동적·종속적 나-자아’로 인하여 ‘능동적·주체적 나-자아’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고 마는 형국이다.
지금도 아이들은 성적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키가 작다는 이유로 다리를 잘라 이어붙이는 수술을 한다. 외모 컴플렉스로 성형수술을 하다 온갖 부작용에 시달린다. 심지어 목숨을 잃기까지 하니 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반인권적인 행태인가.
보리달마가 벽을 바라보듯 아침마다 거울을 바라보자. 거울의 투영대상으로서 존재하는 내가 아니라 ‘나-자아’란 존재의 투영대상으로 거울을 바라보아야 한다. 내가 거울이 되어 ‘나-자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주체와 객체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교류가, ‘나-자아’의 물성의 본질적 변화(즉, 본성)가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세상의 편견과 판단에 흔들리지 않고, 편견에 휘둘리거나 편벽되지 않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나는 나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자 주체다!” 강하게 외칠 수 있어야 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내 삶의 주인이자 주체인 나의 눈으로 세상과 자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아야 한다.
세속의 삶을 살면서 달마처럼 하루 종일 앉아서 벽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매일 아침 ‘면벽’하듯 거울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면 된다. 내가 거울이 되어 거울의 눈(입장)에서, 나의 입장에서 거울을 바라보는 연습을 계속하다보면, 머잖아 나를 비롯한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가진 고유한 주체성을 깨닫게 된다.
그러다보면 어느 날 불현 듯 ‘한 소식’(깨달음)을 듣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을 수 있다. 세상만물은 모두 아름답고, 존귀하다는 것을. 누가 누구를, 무엇이 무엇을 잘 낫다 못 낫다 비교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하찮은 일이라는 것을.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그는 그대로, 우리 모두 그대로 소중하고 아름답다. 고운 모습 그대로, 미운 모습 그대로 바라보면, 나도, 너도, 그도, 그리고 우리 모두 부처고, 예수다.
오늘 아침 거울을 보며 지극히 간단하고 상식적인 깨달음을 얻기를. 그래서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자기주체선언’을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