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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복 Aug 05. 2018

시 쓰는 법학자의 산촌일기

사람은 이 땅 위에서 시적으로 산다

“사람은 이 땅 위에서 시적으로 산다.”


이 말은 <사랑스러운 푸르름 안에>라는 시에서 횔덜린이 남긴 멋진 시구(詩句)다.


사람은 땅 위에서 산다. 땅에 기대어 살고, 땅을 딛고 산다. 땅이 없다면 사람은 살 수 없다. 땅은 사람에게 생존할 수 있는 당위이자 현실이다. 사람에게 땅은 생명이다. 그 생명이 다할 때 사람은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 땅은 사람에게 존재의 근원이자 본향이다.


땅에서 태어나 그 땅으로 돌아가기 때문일까? 사람에게 땅은 욕망의 대상이다. 살아서는 물질적 욕망의, 죽어서는 영생하고자 하는 욕망의 대상이다. 살아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으면 욕심을 버릴 만도 한데 사람은 죽어서도 넓은 땅에서 화려하게 치장된 석물에 둘러싸인 무덤에 눕기를 바란다. 죽어 한 시간만 지나도 썩기 시작하여 결국 한 점 먼지로 사라질 육신인데도 어찌하여 사람은 죽어서도 자신 소유의 땅을 가지고 싶어 할까.


횔덜린은 우리에게 이 땅 위에서 시적으로 살라고 한다. ‘시적으로 산다’는 말은 모든 욕심을 버리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지혜롭게 사는 삶을 뜻한다. 하지만 제 아무리 이런 삶을 살고자 하나 사람은 ‘이 땅 위’에서 ‘집을 지어’ 살지 않을 수 없다. 산다는 것(삶)은 거주하는 것이고, 거주를 통해 비로소 사람은 이 땅 위에서 존재할 수 있다. 시인이 언어라는 도구를 빌어 시를 짓듯이 ‘이 땅 위’라는 현실의 공간을 빌어 사람은 집을 지어 산다. 어쩌면 시인이 시를 짓는 것-시짓기-과 사람이 집을 짓는 것-집짓기-은 그 맥락이 같다.


시짓기와 집짓기는 나의 오랜 꿈이었다. 한때 문청(문학청년)이었던 나는 시짓기라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사십 후반에 늦깍이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시를 ‘쓴다’ 혹은 ‘짓는다’란 말이 가진 의미는 중요하지 않았다. 시인이 되어야겠다는 욕망도, 그럴 자신도 없었다. 나로서는 그저 시를 쓰거나 짓는 그 행위 자체가 즐겁고 행복했다.                                          

      

   

집짓기도 시짓기와 같다. 집터를 찾고, 돈을 마련하고, 집의 모습을 구상하고, 설계하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멋지고 화려한 집도 가보았고, 소박하게 꾸민 집도 가보았다. 집의 크기나 화려함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만족하고 행복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사람냄새 나는 집을 짓고 싶었다. 오십 년의 세월 동안 열심히 살아온 나와 아내-우리 자신을 축복하고, 선물을 주고 싶었다. 잘 살았든 아니든 나 자신에게, 또 우리 스스로에게 한번쯤 멋진 선물을 해야지 않겠는가. 어차피 죽으면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한다. 숟가락 하난들 가지고 갈 수 있는가? 내일, 다음에 하면서 머뭇대고 미루다 늙고 기력이 떨어지면 집을 짓고 싶어도 지을 수 없다. 이승의 삶을 마감하면서 “이것은 하고 싶었는데...” 후회나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시를 짓기 시작했을 때 나는 “시인이 되어야겠다”라든가 “멋진 시를 써야겠다”라는 욕심을 내세우지 않았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집을 지었다. 전원에 묻혀 주변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면 된다. 해 뜨면 새소리와 함께 일어나 정원의 나무와 꽃, 그리고 텃밭의 채소를 가꾸고, 해 지면 고요와 정적에 묻혀 책 읽고, 시 짓고, 잠들면 된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위압적인 마천루로 가득 찬 도심이 아니면 어떠리. 이 땅 위에서 사는 동안 시 짓듯이 집을 짓고, 그 속에서 시적으로 살면 된다. 그렇게 살다 죽으리라. 그러면 된다.   



사과 하나, 호두 세 알

뻥 튀긴 보리 한 줌

소박한 아침 먹고


이름 모를 코스타리카 농부의

검은 눈물로 뽑아낸

커피 한 잔 마시는데


사람은 이 땅 위에서

시적으로 산다는

횔덜린의 시구가 생각난다  


시를 쓰며 이 땅 위에서 사는데도

감성마저 꽁꽁 얼어버린 추운 날이면

어이하여 떠난 이의 따뜻한 정이 그리운가


엄마의 부드러운 젖가슴을 베어 물고

곤히 잠들고 싶은 겨울날 아침


쉰다섯

철부지 막내아들

이승 떠난 엄마의 포근한 품에 안겨

괜한 투정 부리고 싶다 (졸시, <사람은 이 땅 위에서 시적으로 산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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