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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복 Aug 06. 2018

시 쓰는 법학자의 산촌일기

소선재: 소박하고 욕심 없는 마음이 머무는 집

2018년 2월 10일. 팔공산 덕곡동()에 집을 지어 이사했다. 덕곡동은 “덕이 넘쳐흐르는 골짜기 마을”이라는 멋진 뜻이다. 마을이름에 골짜기를 뜻하는 ‘골 곡()’자가 포함되어 있는 것만 봐도 이곳은 산골이다.

  

새 집의 이름은 “삶을 꾸미거나 덧붙이지 않고 어디에 얽매이거나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 머무는 집”이라는 뜻으로 소선재라고 지었다. 소선재는 희다는 뜻을 가진 소와 바느질(자수)을 뜻하는 침선의 선, 그리고 집을 뜻하는 재에서 따왔다. 평소 소박한 삶을 살고자 하는 내 생각과 자수를 하는 아내의 취미활동을 두루 살핀 끝에 작명한 것이다. 한마디로 소선재는 시 쓰는 법학자인 남편과 바느질을 하는 예인 아내의 소박하고 욕심 없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집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도시생활이 영 재미없고 따분하였다. 길을 걷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보면 마치 사각으로 만든 성냥갑 같았다. 아래위층과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지 못했고, 복도나 계단 혹은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더라도 형식적으로 인사하였다. 좁은 공간에서 함께 서있는 그 순간은 서로 몹시 어색하고 불편하였다. 마음 편하게 쿵쿵 소리 내며 힘차게 걷거나 큰소리 내어 말하거나 웃지도 못하였으니 내 집이랄 수도 없었다.


주말이면 답답한 아파트를 벗어나 교외로 치달리곤 했다. 전망이 훤하게 열린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시켜놓고 하릴 없이 밖을 쳐다보면서 “나도 이런 집을 갖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품었다. 도시 근교 한적한 곳에 있는 카페와 식당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아마 도시민들 덕분일 것이다.  

도시민들이 전원생활을 꺼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땅을 사고 집 지을 돈이 없어서, 생활이 불편해서, 벌레가 무서워서, 안전하지 않을 것 같아서, 주민들과의 갈등이 성가실 것 같아서 등 사람들마다 내세우는 사유는 천차만별이다. 전원생활은 부부 혹은 가족의 동의와 협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남편(혹은 아내)은 전원생활을 원하는데 아내(혹은 남편)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만다.


우리 내외도 처음부터 합심하여 전원생활을 하고자 하지는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도시를 벗어나 전원에서 살고 싶어 하는 나와는 달리 도시생활에 익숙한 아내는 머뭇거리고 이런저런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남편인 내가 워낙 전원생활을 원하니 아내는 어렵사리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리고 마음먹었다. 거기에 더하여 몇 해 전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병을 앓고 난 뒤에는 아내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는 집을 지어 이주하기로 결정했다.


집을 짓고 산촌으로 이사하기 전 아내의 우려는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남편인 내가 그저 전원생활이 주는 이상에만 젖어 모든 일을 자신이 도맡게 되는 것은 아닐까, 평소 싫어하는 파리와 모기, 지네 등 각종 벌레와 해충에 적응할 수 있을까, 안전과 방범에 취약하지는 않을까, 팔공산은 깊은 산인데 겨울에 춥지 않을까 등.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와는 달리 아내는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도시로 이주하여 줄곧 생활했으니 이런저런 걱정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전원생활을 좋아한다고 할지라도 아내에게 지나친 심리적 압박을 주어 동행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 대신 한걸음 물러서 단계별로 접근하되 시간적 여유를 갖기로 했다.


비록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고는 해도 나 역시 직접 시골에서 이뤄지는 모든 생활을 책임져본 일이 없다. 그래서 먼저 집지을 수 있는 땅을 구하여 주말텃밭농사를 지으면서 서서히 전원생활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평소 아내는 벌레라면 지레 겁부터 냈다. 그런 아내가 호미를 들고 땅을 일구고 채소를 가꾸고, 잡풀을 뽑고 땅을 파다가 지렁이가 나와도 아무렇지 않게 반응했다. 아내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적응했고, 나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놀라기는 아내 자신도 마찬가지. 자신의 변화가 스스로도 놀라운 듯 했다.


텃밭을 가꾸면서 나와 아내의 역할은 자연스레 나눠졌다. 삽과 괭이로 땅을 파고 낫으로 잡풀을 베고 정리하는 등 몸을 쓰는 일은 내가 하고, 아내는 채소밭의 잡풀을 뽑거나 상추와 고추 등 결실을 거두는 일을 맡았다. 남편이 텃밭농사를 좋아하고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본 아내는 내심 안심을 한 모양이었다.


결혼하고 아내의 눈에 비친 남편은 땀 흘리며 몸을 쓰기보다는 책상 앞에 앉아 공부만 하는 전형적인 서생의 모습이다. 이제까지 공부를 한답시고 가정의 모든 일처리는 아내에게 일임하였다. 말이 ‘일임’이지 아내는 하나부터 열까지 번거로운 가정사를 도맡아 처리하였다. 학자를 남편으로 둔 자신의 몫이려니 아내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이해하였다.

그렇게 모든 일을 아내에게 맡기고 나 몰라라 하던 나는 이제 그럴 수가 없다. 전원생활이란 TV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낭만과 여유로 포장된 모습이 아니다. 나 자신이 스스로 부지런히 몸을 쓰고 움직이지 않으면 며칠 사이 집 주변은 엉망이 되고 만다.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뒤덮인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땅이 가진 어마어마한 힘과 풀이 가진 왕성한 생명력을 알지 못한다. 아침저녁으로 시간을 내어 채소밭을 가꾸고 정원의 잡풀을 뽑아야 한다. 집 안팎의 모든 것들이 내 손을 필요로 하니 여간 부지런하지 않고는 전원생활의 낭만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하지만 도시를 떠나 집을 지어 산촌으로 옮긴 내 결정을 물릴 생각은 조금도 없다. 평생 책상물림으로 살아온 나는 책을 읽고 논문을 쓰다가 정원에 나가 꽃을 가꾸고 잡풀을 뽑으며 과열된 머리를 식힌다. 아침저녁으로 텃밭의 채소에게 물을 주고, 열매를 따면서 세상살이에서 가득 차오르는 욕심을 내려놓는다. 하심()-학문에 들어섰을 때의 초발심을 잊지 않고 올곧게 학자의 길을 걸어가려 마음을 다잡는다. 정원과 텃밭에서는 매순간 온갖 생명들이 태어나 자라고, 늙고, 죽고 사라진다. 생로병사의 본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정원과 텃밭은 나의 멋진 수행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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