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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복 Dec 09. 2019

자작시로 읽는 에세이(7)-몽상

현실에서 잠든 나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꿈꾸고/ 그 꿈은 현실이 된다//

내가 사는 세상은/ 꿈일까, 현실일까/ 꿈이라 믿으면 꿈이고/ 현실이라 믿으면 현실일까//

믿고 싶지 않은 꿈은/ 현실이 되고/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은/ 꿈이 된다//

꿈속에서 나는/ 한 마리 나비로 산다/ 잠깨지 못한 나는/ 현실에서 사람으로 산다//

나는/ 나비일까, 사람일까// (졸시 <몽상> 전문, 졸시집, 「묵언」중에서)



“인생은 한바탕 꿈이런가?”


꿈속에서 한 마리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다 잠에서 깬 장자(莊子)는 비몽사몽의 상태에서 잠시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헤매었다. ‘호접몽’(胡蝶夢)으로 유명한 일화이다. 그리고 영화 ‘매트릭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꿈과 현실, 혹은 진실과 거짓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되묻게 한다.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이 ‘엄연한 현실’이 진저리나지만 우리는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참’(혹은 진실)이다.


현실은 불평등하다. 만일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고 자유롭고 존엄한 존재라면 현실은 행복할 것이다. 문제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고 그 존재의 존엄성이 침해받고 제한 받는다. 인간의 역사는 불평등한 현실을 평등한 현실로 만들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평등한 현실을 실현하기 위하여 피를 흘리며 다치고 죽어야 했다.


우리는 꿈을 꾼다. 잠을 자면서도 꿈꾸고, 현실 속에서도 꿈꾼다. 만일 꿈이 없다면 우리는 질곡과도 같은 현실에 짓눌려 압사(壓死)당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현실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그 현실을 잊고 꿈꿀 수 있기에, 그 꿈을 통해 위안 받고 미래를 향한 희망을 가질 수 있기에, 우리는 불평등한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한 번씩 현실을 벗어나 자신만의 세상에서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는 꿈을 꾼다. 그 꿈이 비현실적이라고, 비이성적이라고 비난받아도 좋다. 자신이 나비인지, 사람인지 헛갈려도 좋다. 꿈과도 같은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면, 나비가 된들 어떠하리.


어차피 인생이란 한바탕 꿈과도 같다. 지금은 우리가 현실에 살고 있지만 결국 꿈으로 돌아간다. 인간의 몸을 벗어버리고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간다. 삶이 현실이라면, 죽음은 꿈이다. 꿈이 현실이라면, 삶은 꿈이다. 우리는 지금 현실 속에 살고 있을까? 꿈속에 살고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꿈꾸는 것-몽상(夢想)이다. 몽상이란 ‘꿈속의 생각’ 혹은 ‘꿈속의 상상’이다. 현실적으로는 이룰 수 없는 허황된 생각이다. 오죽하면 꿈속에서라도 생각하고 상상할까? 현실적으로는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이런 생각에 빠져 현실성을 잃어버린 사람을 일컬어 ‘몽상가’라 폄하한다. 투자 대비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시장자본주의원칙에 비춰보면 도무지 ‘효용성’이 떨어지는 군상(群像)이다. 지극히 비판적으로 평가하면, ‘용도폐기’되어야 할 집단이다.


이런 상황이니 몽상도 ‘경제적’으로 해야 한다. 상품화시켜 시장에 내놓지 못하는 생각은 모두 쓰레기통으로 던져질 운명인 것이다. 자유롭게 꿈꾸고 상상하지 못하는 사회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이상과 희망이란 처음에는 도무지 실현할 수 없는 허황된 생각이나 상상에서 시작된다.


미술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는 아이들에게 도화지와 크레용을 쥐어주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편다. 선이나 물체의 모습은 비뚤비뚤 뒤죽박죽이다. 그러나 어른들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그림을 그린다. 아이가 그림을 잘 그린다는 생각에 미술학원에 보낸다. 미술교사의 지도를 받는다. 잔뜩 기대를 안고 호들갑을 떤다. 그런데 어이하랴. 아이를 미술학원에 보내는 순간 상상력과 창의력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 획일화되고 표준화된 그림-바로 어른인 미술교사의 그림인 것이다.


아파트든 주택가든 아이들의 놀이터가 사라져 버렸다. 설령 놀이터가 있다고 할지라도 안전과 위생을 이유로 흙과 모래는 찾아볼 수 없다. 어릴 때 우리가 놀 때처럼,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노래를 부르며 모래성을 쌓던 풍경은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다. 땅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꿈꾸고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잃어버렸다.


아이들이든 어른이든 우리는 보다 자유롭게 꿈꾸고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룰 수 있는 꿈만 쫒지 말고, 이룰 수 없는 꿈을 상상해야 한다. 현실에 지치고 힘든 시간, 잠시나마 “멍 때릴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깨어있으면서도 나비가 되어 꿈속을 훨훨 날 수 있어야 한다. 마음껏 상상하고 즐기다보면 꿈과 현실의 경계를 또렷이 보게 될 것이다. 꿈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꿈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룰 수 없고, 헛된 꿈일지라도 그 꿈을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현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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