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 내려/ 어디로 갈까/ 하늘로 갈까/ 땅으로 갈까/ 님의 마음 적셔
눈물로 흐를까/ 나일론 쫄쫄이바지 입고/ 누런 콧물을 줄줄 흘리며/ ‘쪼대흙’*으로 물막이 놀이를 하던/ 누렁이 황소를 만들던/ 어릴 때의 기억 속으로 흐를까
이 비 내려/ 어디로 갈까/ 하늘로 갈까/ 땅으로 갈까/ 님의 마음 적셔/ 눈물로 흐를까/ 앞산에 걸린 비구름/ 장대비로 주룩주룩 내려/ 내 고향 ‘望亭뜰’**은 황토물로 바다를 이루던/ 참외, 수박, 그리고 돼지까지 건져 올리던/ 어릴 때의 기억 속으로 흐를까
이 비 내려/ 하늘만 적셨으면/ 고향 집 초가지붕의 이엉은/ 갈 필요가 없었을까/ 이 비 내려/ 마음만 적셨으면/ 고향집 흙담장은 무너지지 않았을까/ 비는 땅으로 흐르고/ 일렁이는 황토물로 흐르고/ 구멍 난 지붕을 바라보는/ 아비, 어미의 눈물로 흐르고// (졸시 <비> 전문, 「늙은 아내의 마지막 기도」중에서)
*쪼대흙:황토의 경상도 사투리
**望亭(망정):내 고향마을 이름. 望亭 뜰은 마을 앞 벌판
내 고향은 대구 성서 ‘망정동’(望亭洞)이다. ‘대구성서공단’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공단이 들어서는 바람에 졸지에 실향민이 되어 버렸지만, 그곳에서 태어나 이십 삼년을 살았다.
고향마을 ‘망정’에는 120여호가 있었다. 마을 뒤쪽으로는 그리 높지 않은 야산이, 앞쪽으로는 너른 들판이 있었다. 그 들판을 사이에 두고 ‘월배’와 ‘화원’을 마주하고 있었다. 수리관개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어린 시절, 여름 장맛비가 내리면 들판은 몇날 며칠이고 누런 황톳물에 잠기곤 했다. 뒷산에 올라 근심어린 눈으로 물에 잠긴 들판을 바라보며 애를 태우던 어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참 이삭이 피는 때 물에 잠긴 벼는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했다. 애써 벼를 거두고 타작을 해도 소출은 나지 않았다. 타작을 하면 흙먼지만 뽀얗게 피어올랐다. 반은 쭉정이로 남은 나락을 보면서 부모님들은 한 해 농사를 망쳤다고 탈기하셨다. “비만 오면 물에 잠기는 고향, 무슨 미련이 있으신가? 도회지로 나가면 훨씬 돈도 많이 벌고, 살기 편할텐데...” 고향을 떠나지 못하는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때는 고향이 소중하다는 것을 몰랐다. 공단지역으로 지정되어 집과 토지가 수용되어 어찌할 수 없이 고향을 떠났다. 어느 날 다시 찾아간 고향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거대한 불도저는 굉음을 내며 어릴 적 추억과 영혼이 깃든 고향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고향은 그렇게 사라져갔다.
만일 고향의 산과 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극심한 정신적 방황으로 힘들어하던 청소년 시기를 버틸 수나 있었을까? 머리가 혼란스러울 때면 나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훌쩍 집을 나섰다. 산과 들은 사유의 공간이었고, 이름 모를 풀과 나무는 나의 스승이자 도반이었다. 사회와 제도, 사람과 지식으로 다친 내 영혼은 자연을 통해 치유 받고 성장할 수 있었다.
몇 해 전 집안 어느 형님의 전화를 받았다. ‘향토지’를 만드는데 고향인 성서를 빛낸 인물란에 나를 소개하기로 결정했는데 동의하느냐고 묻는다. 이런 전화를 받으면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그저 “네, 고맙습니다.” 해버리면 간단하다. 그런데 학자의 소신으로 위장한 까칠한 성격의 나는 그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형님, 말씀은 고마운데 제 이름은 등재하지 않아 주시면 안될까요?” 형님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네 큰형은 동의했는데, 같은 형제이면서 너는 왜 다르냐?”는 질책이 이어진다.
만일 우리나라가 혈연, 지연, 학연에 얽매이지 않고, 출신이나 가문 또는 배경으로 인한 차별이나 특혜도 없는 사회라면 나도 그 제안에 흔쾌히 동의할 수 있다. 학력이나 직업에 대한 차별이 없는 평등한 사회라면, 구태여 이름 석 자를 빌려주는데 인색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대학교수’라는 이유로 ‘고향을 빛낸 인물란’에 이름을 버젓이 올릴 수는 없다. 강단에서 인권을 가르치고 공부하는 법학자로서 가지는 평소의 소신과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는 일인 까닭이다.
고향의 모든 사람이 ‘고향을 빛낸 사람들’이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타인과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선행을 베푸는 많은 사람들, 헐벗고 굶주리며 상처 입은 이들을 위해 따뜻한 밥 한 끼를 짓고 봉사하는 많은 이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고향을 빛낸 사람들’이다. 그들이 소위 ‘유명인물란’에 소개되어야 한다. 고위공직자, 대학교수, 사업가 등 세속적으로 ‘출세한 인물’들을 굳이 인물란에 소개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이미 사회로부터 많은 관심과 특혜를 받아 편안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학자의 길은 외롭다. 그 외로움을 즐기고 받아들일 수 없으면 올곧은 학자의 길을 걸어갈 수 없다. 세인(世人)들은 학자로서 내가 어떤 학문을 하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대학교수’라는 사회적 지위에 관심을 가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지식인에 걸맞는 고도의 도덕윤리적 덕목과 함께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요구하기도 한다. 자신들의 관심과 요구에 맞지 않는 처신을 하지 않으면 나를 오해를 하기도, 또 비난을 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인간적 삶’과 ‘학자의 삶’ 사이에서 고민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형님, 부탁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도의적으로’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학자의 길을 선택한 집안 동생을 이해해주세요. 제가 학자로서 올곧은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저도 고향을 사랑합니다. 꿈에도 그리운 고향 ‘망정’은 늘 절절한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잃어버린 고향을 위하여 시 한 수 올립니다. 결례를 용서하시고, 사과하는 마음으로 받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