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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형곤 Jan 20. 2021

1. 재주 많은 제주소년

그는 누구인가?

재주 많은 제주소년

 

2016 피엘라벤 폴라 / 북극횡단 지원 류형곤 포토폴리오

https://youtu.be/1A9dF7maRes

어려서부터 태권도를 4년 정도 다녔다. 그쯤이면 친구들이랑 놀다가도 멀리 관장님이 운전하는 차, 엔진 소리만 들려도 한숨이 나왔다. “아 가기 싫다..” 


나는 지금 내 앞에 구슬을 좀 더 가지고 놀고 싶었고, 레고를 더 만지고 싶었고, 좀 더 축구를 하고 싶었다. 


그러던 초등학교 3학년 생일날, 바닷가에 사는 우리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누가 먼저 도착하나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리막길에서 가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옆에서 갑자기 나오는 오토바이 때문에 큰 사고를 당하게 되고, 오른발 무릎이 크게 다쳐 운동하기 쉽지 않을 거란 병원 의사 선생님께서 걱정을 하셨다. 


어린 나이에 당시에 가장 좋았던 건, 앞으로 계속 문제가 될 무릎이 아니라 , 태권도에 안 갈 수 있다는 장점이 당시에 나에게 큰 매력이 있었다. 


그리곤 태권도를 그만두며 다시는 운동학원에는 안 가는 조건으로 4년이란 시간을 과감히 접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교실에는 몇몇의 남자아이들 주축으로 유도 학원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한 학년이 9명이라 5명이 다니면 사실 대부분 다닌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래서 부모님 눈치를 보며 갈까? 말까? 어떻게 하면 다닐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일단 체험 겸 친구들 따라가기로 했다. 


내 사정을 모르는 유도학원에서는 잘 챙겨 주셨고, 그렇게 한번 가는 게 벌써 2주가 지나고 벌써 회비 봉투를 받아 왔다. 


부모님은 당연히 회비를 줄 수 없다고 하셨고, 어쩔 수 없이 따로 사시는 할머니에게 찾아가 회비를 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할머니도 형편이 어려워 매번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친구들에게는 창피했지만 관장님께 찾아가서 상황을 말씀드렸다. 


친구들이랑 땀 흘리는 게 너무 재밌고, 태권도만 오래 한 나에게는 너무나 새로운 운동이었다. 내가 남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때려서 승부하는 게 아닌, 내 힘과 상대방에 힘을 이용해서 넘어뜨리거나 던질 수 있다는 건 너무나 흥미로웠다. 그렇지만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솔직히 말씀드렸다. 그러더니 관장님께서 갑자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고, 장비가 널 부러져 그중에 냄새 안 나는 도복만 골라 입었던 나에게 새 도복을 선물해 주셨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집 앞에서 유도 학원 차로 내려봤다. 그전까지는 걸리면 안 되기 때문에 훨씬 이전에 내리거나 할머니 집 앞에서 내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듯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앞 뒤 상황을 보지 않았다. 아니 보지 못했다는 표현이 좋을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은 다른 부모님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우선 어려서부터 용돈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형이랑 나랑 놀러 가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했다.

손님 1팀 기준으로 한 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주면 만원, 마무리 못하면 5천 원 정도로 용돈을 주셨다. 아니 아르바이트비를 주셨다. 심지어 설날이 되면 받은 세뱃돈을 써 본 적이 없었다. 


학교 등록금, 교복 등 정확하게 비용을 계산하고 우리에게 세뱃돈 주신 그분들 자녀분들한테 다시 세뱃돈 줘야 하기 때문에 그 돈은 쓰지 못하는 돈이었다. 그렇게 중학교가 되고, 남들 집에 컴퓨터가 있을 때, 형이랑 나랑 집과 외부에서 일을 해 컴퓨터를 살 수밖에 없었다.  (*2002. 8. 5일이 바로 그날이다.)


원하는 게 있으면 무조건 사야 했고, 사기 위해서는 악착같이 일을 했다. 아마 동네 어른들은 모두 나를 알 것이다. 잔칫집, 상갓집, 여름이 되면 강정천 계절 음식점, 우리 등대횟집.. 


돈이 되는 곳은 어디든 찾아다녔고, 고등학교가 될 때는 여기저기서 일손 도와 달라는 연락이 끊이지 않았었다. 


그리고 생각하지도 않게 아버지와 일찍 이별하게 되었다. 

18살 겨울, 아침에 창백한 얼굴의 아버지를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건장한 사내아이로 자란 내가, CPR이라고 하는 심폐소생술이라고는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에 할 수 있었던 건 아버지를 부르며 그저 일어나라고, 깨어나라고 외치며 흔든 게 전부였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아웃도어, 그리고 안전, 구조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된 큰 요인이었다. 


당시에 형에게 전화가 왔고, 상황을 설명하니 “CPR을 했었어야지!”라고 나에게 말해서 그때 처음으로 들어 본 말이었다. 그런 형은 지금 사람들 구조하는 일을 하는 해양경찰에서 현장에서 근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당시 집 형편이 어려워서 형이랑 나랑 동시에 대학교 간다는 건 어려웠다. 형이 전역하기 때문에 내가 군대 가는 건 당연한 이치였고, 수능 전날에도 형이랑 나랑은 형의 군대 얘기를 듣는 게 더 재밌었고 새벽 4시? 까지 얘기하다가 잠도 못 자고 수능 치러 갔던 기억이 난다. 듣기 평가가 시작되자마자 집중해야지 눈을 감는 순간 잠들어버렸고, 감독관님이 깨워주셨다.


감독관 경험으로 난생처음 시작하자마자 자는 학생은 처음 봤다고.. 


남들은 멋진 대학 가는 게 학생의 최종 목적지라 생각했고, 나에게 대학은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주 돌머리는 아니 였다, 고3 당시에 반에서 내신으로는 3~4등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특히 반 담임 선생님이 잘 챙겨주셨고, 반장도 오래 하다 보니 면담도 많이 해주셨지만 정작 가라는 대학을 안 가고 군대 간다고 하니, 학교 교무실에서는 난리가 난 것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 특성상 내신으로 대학교를 많이 보내는 것이 당시에 트렌드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군대 간다는 얘기와 함께 교무실에서 큰소리 듣고, 밖에서 엎드려서 몽둥이로 맞았다. 


근데 담임 선생님도 황당하셨는지.. 그리고는 웃으셨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가고자 했던, 해병대에 장교 출신으로 평상시 해병 얘기를 많이 하고 다니셨다고 들었다. 그리고는 말투가 갑자기 장교로 바뀌시더니 가서도 똑바로 하라고.. 


그리고 남들 대학 면접 갈 때 나는 해병대 면접을 보러 갔다. 

(아버지가 해병대, 친형도 해병대, 동네 삼촌들부터 나는 군대는 해병대만 있는 줄 알았다. )


그리고 해병 특수부대 “해병 특수수색대”에 지원했고, 형이랑 수영장 가서 전투 수영을 배우고 혼자 연습했다. 결과적으로 훈련소에서 전체 달리기 1등, 어린 나이에 스쿠버 자격증 소지, 기타 체력평가가 전부 좋았는데 실기 점수가 낮아서 떨어졌다는 건 이해가 안 됐지만, 어쨌든 일반 보병으로 보직을 받게 됐다.


졸업식 날 대형 화면에 얼굴과 함께 진학할 대학교가 나왔고, 당시 진학 대학이 없었던 건 정말 공부 잘했던 친구 한 명과 그리고 내가 전부였던 걸로 기억한다. 

다들 축제 분위기에 취할 준비를 하는 한편, 나는 다음날 입대였기 때문에 일찍 포항으로 떠났고, 머리를 빡빡 밀고 입대를 했다. 


훈련소에 들어가자마자 내가 지금껏 살고 있던 세상과는 조금 달라졌다. 아니 달라야 했다. 

그저 남들에게는 대학도 안 가본 어린 제주 촌놈.. 딱 거기까지 였기 때문이었다. 


해병대 얘기도 꺼내면 끝이 없겠지만, 그 안에서도 이놈 재주가 많구나!라고 얘기를 종종 들었다.  내가 있던 부대에서는 축구, 장기, 스타크래프트만 유일하게 포상 휴가가 주어졌었는데, 장기는 동네에서 제일 잘 두는 사람이 우리 아버지였고, 어려서부터 계속 두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자신 있었고, 축구와 스타는 내 고등학교 시절과 맞바꿀 정도로 많이 투자를 했다. 그리고 부대에 들어가서도 박격 표병으로 들어가 계산병, 관측병 이렇게 모든 보직을 맡은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원하든 원치 않든 그렇게 재주꾼이라 부르게 됐다.


전역 후 하나씩 아마추어 같았던 재주꾼이 전문 재주꾼으로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했다.



2000 

-강정초등학교 전교 학생회장

-제주일보 학생기자단 활동


2001~3 SSDY(Seoghipo Sucuba Diving young) 서귀포 청소년 스쿠버다이빙 단장/전 세계 최초

2008-2010 대한민국 해병대 군생활

2010-2016 제주대학교 입학 / 관광경영학과

2010-2015 제주적십자 수상인명구조원 및 수상안전법 강사 활동

2011년 필리핀 일로일로 대학 교환학생

2012년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2013 한국 청소년 오지탐사대(알 아르차 국립공원 로그비넨코 4321m, 복수 4200m)

 제주대학교 유니브 엑스포 학생 강연

 제주대학교 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 “하영 드림” 정책국장

2014년 대한 스키지도자 연맹 레벨 2 취득, 한국스키장경영협회 티칭 1,2 취득

제니스 홈 게스트하우스 매니저 & 퍼스트 클래스 팀장

하나투어 투어챌린저(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지역 상품 기획)

랜드로바 모험 영상 공모전(한국 1위/세계 공모에 출전)


2015년 Teamax Adventure 입사(모험 아웃도어 전문 여행사)

-한국 최초의 아웃도어 에듀케이션 시범 운영(한국관광공사, k-water, Teamax Adventure)

-Nols WFA(오지 응급처치 교육 수료)

-신촌대학교 아웃도어 학과장 (카약, 캠핑, 자전거, 스키 등 아웃도어 프로그램 운영)

-미국 파타고니아팀과 울릉도 백컨트리 원정

-다수 자전거 국토종주 및 기부라이딩 진행


2016년 영원아웃도어 입사(골드윈, 노스페이스 담당)

-8.15 광복 라이딩(일본 후쿠오카-도쿄 815km 횡단)

-통영 철인 3종 첫 입문


2017년 강원도지사배 산악스키대회 동호인부 1위

-군산 새만금 철인대회 1등, 제주시장 철인대회 1위, 인천 코리아 맨(킹코스) 1위

-평창올림픽 성화봉송주자 

-서울시 핀수영 대표 (문화체육부장관 생활체육 스킨스쿠버 대회 각종 수상)

(수중사격 동메달, 핀수영 50m 금메달, 핀수영 장애물 은메달)

-유튜브 구글과 함께하는 아웃도어 영상 공모전 준결승 진출


2018년 산악스키 국가대표 감독

-중국 완롱 올림픽 교육 참가

-러시아 캄차카 유럽컵 산악스키대회 감독

-독일 프랑크푸르트 아이언맨 대회 완주(아이언맨 코스: 수영 3.8km 자전거 180km 러닝 42,195km)

-구례 아이언맨 대회 완주

-TNF100 50km

-레드 싸이클링 스캇 아마추어 사이클팀 입단

-을지대학교 아웃도어 학과 멘토링 강연, 공주고 학생 강연, 제주 서귀여고 학생 강연 등


2019

-산악스키 세계선수권대회 국가대표 감독 (스위스 로잔, 빌라스 올롱)

-kbs 영상앨범 산 “울릉도 산악스키 편 촬영"

-TNF100 50km 

-Goseung IRON MAN 70.3 완주(swim 1.9km, bike 90km, rum 21km)

-OMC (One Mile Closer in UK) 참가

-대구대 스포츠레저학과 강연, 서귀포여고 강연 등 

-스포츠산업 특강(문체부, kspo)/아웃도어&스포츠 트렌드 강연 등

-극지연구소 소속 북극 엘라 아일랜드 탐사 안전요원

-OMC (One Mile Closer in KOREA) 참가

-OutdoorAdventure 회사 설립

-Outour 모험 여행사 설립


2020 

-쌍용자동차 렉스턴 스포츠 엠버서더

-로잔 유스올림픽 산악스키 감독

-트레킹 노트 “세계를 걷다” 방송 출연

-태양의 철인 30대 1위 (swim 3.8km, bike 180km, run 42,195km) 

-ENV CONTENTS 입사 (디스커버리 캠핑리조트 아웃도어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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