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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직장맨 Jan 07. 2021

회사 가기 싫을 때 읽는 글

누구나 그런 날이 있다

회사 가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누구나 그런 날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어떤 분들은 매주 월요일일 수도 있고 또 어떤 분들은 매일 그러실 수도 있습니다. 싫은 일을 하는 것처럼 괴로운 일은 없습니다. 싫은 일을 할 때 에너지는 몇 배가 소모되고 시간도 느리게 갑니다. 또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싫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싫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업무량이나 잘 풀리지 않고 진전도 없는 프로젝트, 갑질 하는 거래처나 고객, 스트레스를 주는 상사, 불필요하게 사생활까지 이래라저래라 조언하는 선배 등, 머릿속에 많은 것들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또 아마도 그보다는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해 세부적인 내용들을 구체화하지 않아도 그냥 꼴도보기 싫을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싫은데 그렇게 이유가 많아야 할 필요도 없죠.


싫다는 느낌은 감정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정적 감정은 우리의 사고를 제한하며 피곤하고 짜증하게 합니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죠. 스노우볼을 들어 흔들고 나면 그 안의 부유물들이 시야를 가립니다. 우리의 감정 상태가 흔들리고 나면 시야를 확보하는 데에는 시간이 소요됩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태도에도 영향을 줍니다. 의도하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날카로운 말을 뱉거나 화가 나기도 하고 그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감정을 "경험"하며 그 감정에 지배당합니다. 감정이 뇌의 작용인지 신체적 작용인지는 몰라도 분명 그 주체는 자신일 텐데 동시에 지배를 받게 됩니다. 내가 나의 주체라면, 나에게 일어난 일이 나를 지배하는 형국입니다. 그리고 좀처럼 통제되거나 쉽사리 바뀌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기다리며 나의 마음에 일어나는 부정적 감정들을 무감하게 지켜보면, 그 어떤 부정적인 감정이나 느낌도, 특별한 의도나 그에 대한 해석 없이 그야말로 무감하게 바라보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고 어떤 시기에 나를 스쳐 지나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뇌는 부정적인 정보들을 좋아합니다. 우리의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선조 중에 좀 더 부정적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선조들이 생존하였고, 이 기묘한 유전의 법칙 속에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으로 부정적인 뇌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일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뇌는 아주 긴 세월을 정글이나 초원에서 살던 우리 조상들에게는 매우 유용하였지만, 사실 지금의 세상에는 그 유용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반면 우리의 웰빙을 위협하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부정적인 감정을 다룰 수 있는 방법들이 필요하고, 전문가들이나 명상 수련가 같은 분들은, 다들 입을 모아 그 부정적 감정이 스쳐가는 것을 인지하고 그것에 반응하지 않으며 관찰하는 것이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여러분은 지금 느끼는 감정을 마치 타인 마냥 무감하게 관찰하며 그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으신가요?


만약 조금이라도 감정이 통제가 되고 난 이후엔 우리의 이성적 자아가 활용될 수 있습니다. 과연 내가 싫은 것이 무엇인지 좀 더 객관적인 사과를 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객관적 사고의 가장 중요한 스킬은 적는 것입니다. 우리가 머릿속의 생각은 매번 꼬리에 꼬리를 물며 비숫한 패턴을 반복합니다. 이 패턴을 벗어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록을 하는 것입니다. 기록을 하는 순간 기록된 내용은 고정이 되기 때문에 반복적인 패턴에 빠지지 않고 효과적으로 나열을 하거나 정리를 할 수 있습니다.


일을 왜 하는지 정리를 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유 없이 하는 일은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일의 없는 일을 하면서 받는 고난이나 역경을 극복할 방법은 없습니다. 의미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 그 이유가 바로 의미입니다. 이런 의미는 여러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생계 수단일 수도 있고 사회적 지위를 유지기 위한 것일 수도 있으며 성취나 자아실현의 목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소속감을 제공해 줄 수도 있고 회사가 제공하는 여러 가지 보호를 받아 안전함을 추구할 수도 있습니다. 사회적 차원으로는 동료나 주변에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친분을 맺을 수도 있으며 혹은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에 기여할 수도 있습니다.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세상에 어떤 이익을 줄 수도 있고 회사에서 시행하는 재활용 정책이 환경에 도움이 될 수도 있으며 회사에서 참여한 봉사 활동으로 사회적 약자를 도울 수도 있습니다. 업무별로 의미를 찾거나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서류 작업으로 회사의 프로세스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기여하거나 빠른 업무 처리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있고 협업을 통해 어려움을 겪는 부서나 동료에게 손길을 내밀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의미는 우리가 어떤 일에 부여를 하는 것입니다. 수 없이 많은 의미를 우리가 하는 매일의 업무와 일상에 부여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영향을 주기 때문이죠. 내가 아낀 프린터 용지 한 장도 그 크기만 작을 뿐이지 환경에 영향을 주고, 기업의 비용에 영향을 주며 용지 구매하는 부서의 일을 줄여줍니다. 


업무를 하는 사회적인 나와 인간으로의 나를 구분하는 방법은 어떨까요? 제가 해외에서 근무할 때 함께 근무하던 외국인 동료들끼리 미팅 중에 날 선 발언으로 서로에 대해 비난을 하며 언쟁을 하다가 미팅이 끝나면 아무렇지 않게 서로 웃으며 점심을 먹는 모습을 보며 매우 낯설고 이상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근무를 하며 가만히 관찰을 해 보니 그들은 마치 일을 게임을 하듯이 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게임을 할 때 이게 마치 나 자신인 것처럼 공을 들여 헌신적으로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그러다 게임의 캐릭터가 미션을 실패하여 죽더라도 나를 자책하거나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실패한 것이 아니고 게임의 캐릭터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직장에서 나도 하나의 게임 속에 캐릭터 같은 것이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그 실패나 어려움이 있더라도 굳이 내가 나 자신이 상할 만큼 괴로울 필요는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전히 열심히 하고 그 경험을 통해 무언가 계속 배울 수는 있겠죠.


그런데도 정말 싫은 것이 있고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누가 옆에서 좋은 말로 이야기해주고 위로를 해 주어도 감정이 추슬러지지 않는 대상들도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그 상대에 들어간 나의 감정 이입을 조정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숲 속을 걷다가 나뭇가지에 긁혀 상처가 나거나 아끼는 옷이 찢어졌다 해도 그 나뭇가지를 상대로 미워하거나 화를 내지 않습니다. 길을 가다가 실수로 개똥을 밟더라도 기분은 나쁘지만 그 개가 미워서 잠이 오지 않거나 분이 풀리지 않아 개를 찾아다니진 않습니다. 그런 이유는 그 대상이 나에게 어떤 의도가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고 그럴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같은 방식으로 나에게 부정적인 경험을 주거나 싫은 대상을 나뭇가지나 개와 같이 감정을 이입하지 않는 대상으로 여겨 보는 것은 어떨까요?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대상이라면, 아마 나뭇가지나 길에 다니는 개 정도로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대상인 것은 아닐까요? 그 대상을 하찮은 존재로 생각하면, 그 대상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이유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다니는 것이 싫다면, 그만두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 보도록 합시다. 사실 우리의 많은 부정적 감정들은 우리가 지나치게 매여 있거나 집착을 하거나 아니면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옵니다. 제가 가장 즐겨 쓰는 방법은 "그만 두면 되지 뭐"입니다. 물론 저는 그 생각을 20년째 하면서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 그만두는 것과는 별개로 내가 그 대상을 떠날 수 있고 끝낼 힘이 있으며 그만 할 수 있는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좀 더 가벼워집니다. 그리고 오히려 더 명료하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여유도 생깁니다.


그리고도 정말 싫다면, 그만둡시다. 이 세상에 나를 해쳐 가며 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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