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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공 Sep 16. 2019

죽음을 가까이 하는 방법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인도에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이름을 가진 성인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자들이여. 불사(不死)의 존재에 이르고 싶은가?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아라.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 명상을 수행하면 큰 복을 받게 되고 불사의 존재에 이를 수 있다.” 즉 싯다르타는 죽음을 가까이하는 마음챙김 명상에 죽음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가르친 것이다.

  

마음챙김 명상은 이후 1980년대 매사추세츠의과대학의 존 카밧진(Jon Kabat-Zinn)이 마음챙김을 활용해 만든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 MBSR(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을 통해 서양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MBSR은 미국과 유럽의 병원, 기업, 교도소, 스포츠 팀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심지어 로스쿨에서도 필수 교과목으로 채택되었다. MBSR은 우울증 같은 심리질환뿐 아니라 건선(피부병), 유방암, 전립선 암 등 만성통증을 유발하는 신체질환에서도 통증과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MBSR은 마음챙김을 현대에 맞게 재구성했지만 사실상 마음챙김 명상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마음챙김 명상의 기본 태도는 ‘지금, 여기’를 각성해 내가 생각하고 감각하고 있는 대상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금, 여기’에 살고 있을까. 종종 많은 사람이 불안한 마음을 과거 혹은 미래로 보낸다. 현재가 힘겨울 때 ‘아! 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옛날이 참 좋았는데’ 하고 지난날을 떠올리거나 ‘아! 나는 앞으로 뭐 해먹고 살아야 하나? 앞날이 깜깜하다’라고 탄식하며 알 수 없는 미래에 기탁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하는 걱정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강아지 밥을 주고 왔나?’ ‘가스밸브를 잠갔나?’ ‘문단속을 했었나?’ ‘이따 PC방에 사람이 많으면 어쩌지?’ ‘내일 미팅에서 이야기를 잘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이처럼 아련한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여기저기를 방황한다.    



아련한 과거를 생각하면 지금이 우울해지고, 알 수 없는 막막한 미래를 생각하면 현재가 불안하다. 사실 ‘지금, 여기’에는 불안도 우울도 없다. 그저 생각하고 움직이고 호흡하는 내가 있을 뿐이다. CCTV로 우리를 관찰해본다면 어떨까? 겉으로 보면 우리는 그저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지만 우리의 마음은 기뻐했다가도 화를 냈다가 우울해했다가 힘들어한다. 마치 원숭이가 여기저기 나무를 옮겨 다니듯 마음은 바삐 움직인다. 마음챙김 명상은 이렇게 방황하는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불안과 고통이 지금 여기에는 없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이란 과연 무엇일까? 말 그대로 죽음을 ‘마음챙김’하는 것이다. 저 멀리 있는 듯 없는 듯 보이는 죽음을 마음속에 띄워놓고 우리는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될 존재’임을 각성하는 게 바로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이다.     


어느 날 붓다가 인도의 한 마을에서 제자들에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한 제자가 말했다. “저는 ‘하루가 지나면 죽음이 나에게 올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명상하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가 말했다. “스승이시여. 저는 ‘낮이 끝나고 해가 지면 나는 죽음에 이를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제자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한 끼 음식을 다 먹고 나면 나는 죽게 될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명상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방법이 더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때 다른 제자가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스승이시여. 저는 음식을 먹을 때 ‘나는 이 한입의 음식을 씹고 삼키면 죽음에 이를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명상하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의 말에 감탄하는 사이, 마지막으로 어떤 제자가 나타나 말했다. “스승이시여. 저는 ‘나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이 한 호흡이 끝나면 죽게 될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명상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대답에 붓다는 이렇게 답했다. “하루가 지나고 죽음이 온다거나, 낮이 끝나고 해가 지면 죽게 된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방일한 것이며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예리하게 닦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음식을 한 입 씹고 삼킨 뒤에 죽는다거나,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내쉰 뒤에 죽음에 이른다는 태도는 절실하고 예리하게 마음챙김을 잘 닦고 있는 것이다.”



붓다의 말씀 가운데 ‘방일’이란 마음을 놓아버리고 포기해버린 것, 쉽게 말해 게으르다는 뜻이다. 의식 저편에 묻어놓은 죽음을 끄집어내 내 마음속에 띄워놓되, 한 입의 음식을 먹고 난 뒤, 혹은 한 호흡이 끝난 뒤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태도야말로 죽음을 가까이하는 바른 자세라고 붓다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청정도론》이라는 책에서도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면 슬픔이 일어나며, 증오하는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면 기쁨이 일어난다. 관심 없는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면 어떤 절박함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절박함이나 마음챙김의 자세가 없다. 만약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 명상을 하려면 절박함을 가지고 마치 살인마가 내 뒤에서 들이닥치듯, ‘나에게 죽음이 곧 다가올 것이다’라고 떠올려야 한다.” 즉 ‘절박함’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어떤 일에든 절박함이 필요치 않겠는가마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야말로 이 키워드가 절실하다. 


마음챙김 명상의 기본자세는 ‘가부좌’다. 앉은 상태에서 다리를 교차해 오른쪽 다리는 왼쪽 허벅지 위에, 왼쪽 다리는 오른쪽 허벅지 위에 얹는다. 그러나 이 자세를 취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보통 한쪽 다리만 허벅지 위에 올리고 다른 다리는 밑으로 내리는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이것마저도 힘들다면 양반다리를 하고 편안하게 앉으면 된다. 이때 허리는 곧게 펴서 척추를 바르게 하고 어깨의 힘은 뺀다. 팔은 편안히 늘어뜨려 양쪽 허벅지에 살며시 얹어놓는다. 호흡할 때는 코로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입으로 천천히 내뱉는다. 


신체와 호흡을 정돈한 다음에는 앞서 보았던 것처럼, ‘나는 숨을 들이쉬고 내쉰 후 한 호흡이 끝나면 죽음에 이를 것이다’라는 마음을 계속해서 챙김한다. 그리고 정서적으로는 《청정도론》에서 말한 것처럼 마치 살인마가 내 뒤에 나타난 듯한 느낌을 떠올려도 절실한 마음으로 임한다. 또는 각자가 진지하게 죽음을 가까이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해도 좋다. 내가 자주 떠올리는 장면은 영화에 자주 나오는 심전도기의 심장 정지 사인이다. 삑삑거리는 소리가 이어지다가 마침내 ‘삐-’ 하는 긴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이미지 말이다. 물론 이 밖에 진지하게 죽음을 고민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이미지든 괜찮다.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은 복잡하고 어려운 명상법이 아니다. 바른 자세와 호흡, 진지한 마음으로 나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말하기는 쉬워도 행하기란 쉽지 않다. 비교적 잘되는 경우라면 30초, 보통은 15초 정도가 지나자마자 우리의 마음은 딴 곳을 향해 움직인다. 한참 딴생각을 하다 ‘아, 맞아. 나 지금 명상하고 있었지’ 하고 깨닫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초심라자면 이런 과정이 수십 번, 수백 번 되풀이될 것이다. 자세와 호흡을 바르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 나는 죽음에 이를 것이다’라는, 반드시 다가올 사실을 진지하게 떠올려야 한다는 점이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노약자, 임산부, 어린이,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 등 심신미약자에게는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죽음을 떠올리는 행위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간혹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다면 돌이킬 수 없는 역효과를 볼 수도 있다. 


붓다는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이 우리를 불사(不死)의 경지에 이르게 할 것이라 말했다. 사(死)는 죽음을 뜻하는데, 그렇다면 불사는 영원히 죽지 않는 상태를 의미할까? 혹은 죽음의 또 다른 의미가 있을까? 붓다는 “방일은 죽음의 길이고, 방일하지 않음은 불사의 길이니, 방일하지 않는 자는 죽지 않으며 방일하는 자는 죽은 자와 같다”라고 말했다. 


앞에서 방일은 마음을 놓아버리고 현실에서 떠나버린 상태, 즉 게으른 상태라고 했다. 그러나 방일의 보다 깊은 의미는 ‘어떤 상태에 갇혀 정신이 마비된 상태’다. 또한 ‘수동적인’ ‘막연히 살아가는’ ‘깨어 있지 않은’ 등의 정신적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새롭게 깨어 있는 마음으로 하루를 사는 게 아니라, 몸은 깨어 있지만 마음은 깨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 새로운 꿈도 어떤 의욕도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상태가 바로 방일인 셈이다.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은 단순히 죽음을 가까이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우리를 깨어 있는 삶으로 인도한다는 더욱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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