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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공 Sep 30. 2019

죽음, 그 이후의 경험에 대하여

희미하게 수술실의 불빛이 보이고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나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육체의 요동과 긴장이 점점 심해지다가 정점에 달했을 때 심전도기의 소리가 ‘삐-’ 하며 한 음을 유지한다. 의사가 내 죽음을 선고하는 것이 들렸다. 갑자기 귀에 시끄럽게 왕왕대는 것 같은 거슬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후에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맹렬한 속도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나는 내가 육체에서 빠져나왔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육신에서 빠져나온 뒤 나는 의료진이 나의 육체에 소생술을 행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무의미한 노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잠시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누군가 나를 만나러 온 것이다. 예전에 돌아가셨던 부모님, 친척, 친구들이 어디선가 다가와 내게 인사했다. 그리고 잠시 뒤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사랑과 온정으로 가득 찬 빛의 존재가 나타났다. 이 존재는 내 삶에서 중요했던 일을 한순간에 파노라마처럼 보여주었다. 


잠시 후 어느 시점에서 나는 일종의 장벽, 아니 경계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아직은 경계를 넘어갈 때가 아니라고,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갈등이 일어났다. 살아생전 느껴보지 못한 따스함, 사랑, 편안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얼마 뒤 나는 다시 깨어났다. 다시 희미하게 수술실의 불빛이 보인다.


앞의 이야기는 죽음학자인 레이먼드 무디(Raymond Moody)가 정리한 150명의 근사체험자들이 고백한 경험을 재구성한 것이다. 쉼 없이 뛰던 심장이 멈추면 죽음이란 이름의 손님이 노크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는 내면의 문을 열어줄 것이다. 과연 그때 우리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근사체험(near-death experiences)은 입관체험 같은 수준의 것이 아니다. 이는 공식적인 사망 판정, 다시 말해 심장이 한동안 정지되었다가 다시 살아난 경우를 말하며, 죽음의 세계에 직접 발을 디딘 경험이다. 


의술이 발달하면서 심정지가 일어난 사람을 살려내는 심폐소생술도 발전했다. 초기에는 심장을 직접 손으로 마사지를 하는 방식이었지만 점차 산소를 기도에 불어넣고 두 손으로 흉부를 압박하는 현재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또한 의과학이 빠른 속도로 발달하면서 제세동기(defibrillator)가 개발되어 심정지로부터의 생존율을 높여주었다. 적은 확률로 사망했다가 소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소생한 이들 중 일부(10~25%)가 심장이 멈춰 있던 동안의 경험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근사체험 연구의 선구자인 레이먼드 무디는 1969년 어느 날 강의가 끝나고 한 학생이 찾아와 자신의 할머니가 수술 도중 죽었으나 다시 깨어나 죽은 상태에서 겪은 경험을 전해 듣게 된다. 이후 그는 근사체험에 관심을 갖고 자료를 수집해 150여 가지 체험 사례를 분류하고 《다시 산다는 것(Life After Life)》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천만 부 이상이 팔릴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책 속에서 근사체험은 ‘사망 선고를 들음’ ‘마음의 안온감’ ‘귀에 거슬리는 소리’ ‘터널을 빠져나가는 경험’ ‘유체이탈하는 느낌’ ‘죽은 자와의 만남’ ‘빛의 존재와의 만남’ ‘살아온 삶을 돌아봄’ ‘경계/장벽과 부딪힘’ 등 대략 아홉 가지로 추려진다.



무디의 연구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호의적인 반응도 있었지만 비판도 많았다. 주된 비판은 그 내용이 비과학적이라는 점이었다. 비판론자들은 무디의 연구 대상이 과학적 방법에 근거해 샘플링되지 않았고, 단순히 여러 에피소드를 나열한 형식에 불과하며, 체험의 빈도수를 객관적 확률로 계산하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러나 무디가 불을 붙인 근사체험 연구의 불씨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2000년대 이후부터는 전문의학 저널에도 근사체험에 관한 연구가 실리고 있다. 의학저널에 어떤 연구가 출판된다는 말은 그것이 곧 ‘과학의 영역’에 들어왔음을 뜻한다. 대표적인 연구로 판롬멜(Van Lommel)의 연구가 있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학저널 《란셋(LANCET)》에 심정지 후 소생된 환자 344명을 대상으로 한 근사체험 사례를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근사체험 환자들이 공통으로 경험한 내용은 무디의 연구과 거의 일치한다. 


체험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사망 후 첫 단계로 ‘〇〇〇 씨께서 〇〇〇〇년 〇월 〇일 사망하셨습니다.’라는 자신의 사망 선고를 듣게 된다. 심장은 멈추었지만 청각은 작동하기 때문일까. 그리고 이후에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탈 때처럼 무언가 쏠리는 느낌과 함께 터널을 통과해 어딘가로 빠져나가는 경험을 한다. 이 경험은 다음 단계인 체외이탈의 경험과 연관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많은 체험자가 마치 타인을 보듯이 자신의 육체를 멀찍이 서서 바라보았다고 말하며 직후 돌아가신 아버지나 엄마, 가족들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그들과 함께 이제껏 보지 못한 아름다운 풍경의 공간으로 갔다고 전한다. 그리고 큰 장벽이나 경계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고, 다시 현실에서 깨어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사람들이 죽음의 문턱 앞에 서고 나서야 뒤늦게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무디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사후세계의 체험은 죽음에 대한 태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거의 모든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죽음을 미화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자살 같은 비정상적인 죽음을 원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다수의 근사체험자들은 체험 이전보다 주변 사람에게 더욱 친절한 태도를 보였고, 타인을 돕는 일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돈이나 명예 같은 외면적인 가치보다는 인생, 사랑, 자비 같은 내면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죽음은 어떤 것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무섭고 고통스럽고 두렵기만 한 것일까. 언젠가 병실에 누워 쉼 없이 뛰던 우리의 심장이 멈추고 사망 선고가 내려지면 우리는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이 말한 것과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될까.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나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가고, 먼저 간 이들을 반갑게 만나 인사하게 될까. 그곳에서 따뜻한 빛의 존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물론 모든 이들이 똑같은 경험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근사체험 연구는 우리에게 죽음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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