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살다 간 내 친구, 아들, 동료, 가족이었던 페퍼에게
4월 5일 일요일, 성급한 마음으로 널 데려오던 때의 설렘과 걱정이 생생해. 내가 할 수 있을까란 걱정과 사랑스러운 너와 함께한다는 설렘. 정현이와 나는 둘다 나이만 먹었지 한번도 아이나 강아지를 길러본 적이 없었거든.
애완견들을 파는 Pet shop에서 널 데려왔을 때, 그래서 성수동 사람들에게 “아, 펫샵에서요? 아…” 하며 따가운 눈총을 받았을 땐, 난 애써 아무렇지 않은척했어. 너가 처음 그 유리 박스안에 놓여져 있는 것도, 너의 부모를 모른다는 펫샵주인의 말도 애써 무시했어. 어서 저 안의 너를 ‘구해주고’ 싶었거든.
그런데, 그때 내가 알았어야했던 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널 ‘애완’동물, ‘도구’쯤으로 본다는 거였어. 모두가 나처럼 널 끔찍하게 아끼고 생명으로 소중히 다룰 거라 생각했나봐. 그렇지 않다는걸, 펫샵사람들도 내 가까운 지인들도 사람들은 대부분 널 사람만큼 소중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걸 알았었더라면… 모든 사람들이 널 예뻐한다는게 모든 사람들이 너를 생명으로 책임감을 여긴다는 뜻은 아니었단걸…. 내가 그때 미리 알았더라면… 너가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리진 않았을텐데…
페퍼야….
Pepper!
페퍼! 페퍼…. 내가 태어나서 가장 많이 부른 이름, 페퍼야.
4월 5일부터 바로 어제까지, 24시간 함께했던 나의 페퍼야. 너는 내가 세상에서 가져본 가장 특별한 존재였어. 그냥 ‘반려견’이라기엔 너무나 큰 의미였고, 하나의 생명체도 아니고, 내 아들이자 친구이자 동료이자 가족이었어. 겨우 7개월 남짓 함께한 시간이었지만, 페퍼 너는 내 일부였단다.
매일 함께 출근하던 내 차안의 너. 내 다리사이에 앉아 가던 900그램 아기 강아지일 때부터, 이제는 다 커서 줄을 메지 않아도 자기 자리에 의젓하게 앉아가던, 창문 열어주면 고개내고 바람을 느끼길 좋아하던 나의 페퍼. 운전을 하다 뒤를 보면 나를 빤히 보며 무엇인가 매번 말하고 싶어했던 나의 페퍼. 함께 달린 차를 탄 거리가 2만키로를 넘겼을테니, 넌 아마 단기간에 가장 오래 차를 탄 강아지가 아니었을까?
출근길 매일 빠짐없이 Mesh coffee로 가던 길은 우리의 매일 산책코스였어. 너가 너무 아쉬워하는 것 같아서 사무실까지 바로 가지 않고 서울숲 후문에서 정문으로 돌아가면, 그렇게 신나할 수 없었지. 너가 항상 소변/대변을 보던 모든 스팟과 너의 엉덩이가 솟구치듯 신이 나서 뛰던 뒷모습이 너무 생생하다. 내가 매일 30분만 일찍 일어나면 될 것을 매일이라도 돌아갔을텐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서울숲 산책은 너가 가장 좋아하던 산책이었어. 그 진흙탕에 놀기를 정말 좋아했고, 흐르던 냇물을 용맹한 사자처럼 거꾸로 올라가며 물마시기를 좋아했지. 서울숲 구석구석 너가 있단다.
사랑하는 나의 페퍼야, 함께 출근해서 내가 매일 밤 12시를 넘겨 퇴근할 때까지 너는 항상 문자그대로 내 옆에 있어줬어. 미팅으로 잠깐 자리를 비웠다 돌아왔을 때마다 내 더러운, 이제는 너의 털로 범벅이 된 운동가방에 자고 있는 모습은 정말 사랑스러웠단다. 내가 일을 하다 잠깐이라도 널 보면, 넌 항상 내 눈을 똘망똘망 쳐다봤어. 그리고 어찌 알았는지 놀고싶어하는 내 눈을 보고 새벽 1시라도 무엇이든 물어다 내게 던지길 바랬지. 내가 가방을 들면 언제나 너도 나가겠다며 문앞을 나서던 모습이 생생하다. 아니, 그냥 너의 모든 것이 생생해서 괴롭다.
너와 함께 걷던 늦은 밤 퇴근길은, 사실 내가 널 위해 산책시켜준게 아니라 너가 날 힐링해주던 시간들이었어. 아무도 없는 서울숲은 정말 고요했고 아름다웠지? 세상에 우리 둘만 있는 느낌으로 함께 걷고 뛰다보면, 난 참 행복했어. 너도 그렇게 행복했었겠지?
한달전부터 너는 “페퍼, 뛰어!”라고 하면 알아들으며 무지 뜀박질하길 좋아했어. 성수동 구석구석을, 우린 함께 뛰었어. 걸으면 지루했던지 앞장을 서다 뒤돌아서 내눈을 빤히 보면, 이젠 눈만 봐도 서로가 뛸 것인지 멈출것인지를 알았어. 근데, 그 눈빛은 너와 나만이 알던 거였단걸 너도 나도 몰랐었네. 페퍼에게, 멈춰야할 곳에서 멈춰야하는 걸 가르쳐주지 못한 채로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 이렇게 된 것 같구나…
불과 얼마전 문득, 내가 스타트업을 하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는 페퍼 너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지금 이 순간들이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걱정했어. 그리고 불과 지난주 문득, 지인이 너와 주말을 보내고 싶다 했을 때 처음으로 너가 어떻게 될까봐 불안해졌어. 그날도 못참고 일요일 낮에 널 픽업하러갔지.
그 걱정과 불안에 내가 좀더 예민했더라면, 부모님댁에 가지 않았거나, 맡길때 주의사항을 보다 꼼꼼히 알렸더라면 그렇게 무책임한 일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페퍼 뛰어”와 “페퍼 멈춰”를 둘다 가르쳤더라면, 너가 그런일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엑셀러레이터를 달아주고 브레이크를 주지 않은 나 같은 주인을 원망해줘.
너가 가장 행복했던 강아지였으면 좋겠어. 내가 가는 곳은 24시간 어디든 함께 가며 그 누구보다 주인과 오랜 시간을 보냈던 강아지, 누구보다 산책을 많이 했고,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강아지였으면 좋겠어. 나는 가장 행복한 견주였어. 어디든 너와 함께 했고, 누구보다 너와 많이 걸었고, 여자친구가 질투할만큼 사랑을 듬뿍 줄 수 있었어.
너가 죽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후회가 뭔지 아니? 너가 침대에서 나와 자고 싶어했던 걸 막았던 거야. 훈육이랍시고, 사실은 침대가 더러워질까봐, 그보다 더 사실은 왠지 남들이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해서 큰일날까봐 못오게 했던거가 후회됐어. 우리가 잠들기전 너는 항상 내게 와서 인사를 하고는 그 귀여운 엉덩이를 보이며 너가 자던 곳으로 갔어. 아침에 일어난 기척이 느껴지면 다시 내 침대 옆으로, 침대 위가 아닌 옆으로, 내가 딱 허락하는 만큼만 고개를 내고만져달라고 했었지.
오늘 뒤늦게 널 발견했을때도, 넌 마치 늘 내옆에서 자던 그 모습으로 너무나 평안하게 누워 있었어. 처음으로, 나도 너 옆에 인도위에 나란히 누워서 문득 깨달았어. 우리 페퍼가 가장 하고싶어했던 걸 지금에서야 해줬구나. 그런데 진작 같이 잘 걸, 나란히 누우니 이렇게 좋은데…
오늘 사고가 나기전 페퍼는, 어땠을까? 아마, 정현이나 나라면 주지 않았을 맛있는 음식을 할아버지가 주셨겠지. 그리고 너가 그렇게 좋아하던 할아버지와 북한산 주변을 실컷 산책했겠지. 주변의 강아지들과 새들과 시냇물들을 느끼며, 신이 나서 뛰어다녔겠지?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페퍼가 좋아하던 일들을 하다 갑자기 심장이 멎었었다면 좋겠다. 그 순간에 내가 있었더라면 사고가 나지 않았겠지만, 어차피 사고가 날 운명이었더라면 그렇게 행복했었으면 좋겠다.
페퍼야, 너에게 사랑을 듬뿍 줬던 이 많은 사람들이 너의 가는 길의 행복을 빌어주고 있단다. 그리고 나도 우리 호기심많고 발랄한 페퍼는 분명, 그 곳에서도 해맑게 뛰놀고 있을거라 확신해. 너처럼 예쁜 아이라면, 분명 그럴거야.
그런데… 나는 어쩌면 좋니? 나는 너 없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너가 없이 어떻게 살아야할까. 늘 너와 함께 타던 차, 너와 함께 걷던 성수동의 모든 골목골목, 너와 함께 살던 집, 우리가 그토록 자주가던 서울숲, 늘 우리를 완벽하게 채워주던 너가 사랑하는 너의 엄마 정현이까지… 온통 페퍼 너의 기억뿐인데… 나는 어떻게 살면 좋을까?
페퍼야, 페퍼야, 페퍼… 핑크빛 코를 가진, 코에 점이 많은 나의 페퍼. 늘 그렇듯 얼굴을 ‘휙’ 돌아보며 내게로 와주면 안되겠니?
페퍼야… 난 이제 어쩌면 좋니?
“It’s always better to burn out than fade away”
2020년에 태어나 2020년에 불꽃처럼 가버린 나의 페퍼야,
정말 너는 평소의 너처럼, 그리고 너의 견주가 좋아하는 이 말처럼 이 세상을 떠났다.
난 이제 더 이상 이 말을 좋아하지 않아. 나는 너와 함께 천천히 오래 사는 꿈을 꾸며 잠들고 싶다.
정말 미안하고, 사랑해 나의 페퍼야. 잘가.
Ps. 페퍼를 사랑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페퍼에게도 저에게도 과분한 사랑을 주셨어요. 다음주 월요일 오후 5시, 페퍼가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헤이그라운드에서 간단한 추모식을 할게요. 그때 함께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11월 9일 월요일 오후 5시,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 루프탑에 페퍼에 관한 짧은 기억들을 가지고 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