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건 없지만

by 시와 카피 사이

<겨울 세수>



빨간 고무대야 앞에

어린 나를 앉혀두고


잠이 덜 깬 얼굴을

힘차게 문지르던

당신의 손금을 기억한다


물은 얼음장 같은데

손은 온돌 같아서


차가운 줄도 모르고

당신의 손바닥에 온몸을 내맡기던 시절,


그 겨울로부터

20년이 더 지난 나는


홀로 몸을 씻고

홀로 잠에 들고

홀로 거리를 걷는다


가로수 텅 빈 가지들 사이로


그날의 체온을 닮은

앙상한 빛이


나의 굳은 얼굴을 씻어내리고 있다




"얘는 유치원 때부터, 어버이날이면 꼭, 할머니 할아버지한테도 편지를 썼어"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인 어느 명절에

외할머니가 하셨던 말을 기억합니다.


제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할머니는

그날들을 기억하시는구나, 마음 속에 깊이 담아두셨구나,

생각했죠.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시절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에 자란 저의

몸과 마음 곳곳엔

아직 그들의 손금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길을 걷다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아이를 볼 때면

어린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시절이 아름다운 이유는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재소비할 수 없는

유한함 속에 있기 때문이겠죠.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파리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곳에 있을 시간이 삼일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삼일 있다가 떠난다는 걸 아니까 모든 게 난리인 겁니다."

-박웅현



모든 시간은

끝이 있기에, 영원하지 않기에

소중하고 아름다워지는 것인지 몰라요.


이 유한함에 맞서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

깊이 삶을 인식하는 것


나의 걸음과, 앉고 섬을 인지하고

계절의 감촉을 알아채는 것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

거실의 불을 끄고 앉아 얼마 동안

창밖의 저녁을 응시하는 것

과일 향을 음미하는 것

잠시 책갈피를 꽂고


그 순간에 잠겨보는 것,

그렇게


인생을 여행처럼

일상은 여행지처럼


매일이

파리인 것처럼


보고 느끼는 것 현존하는 것


살아내는 것.



영원한 건 없지만


이 순간을 영원처럼.




아무 것도 아닌 매일이, 바꿀 수 없는 추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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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시는 자작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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