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TIME

by 시와 카피 사이

<벚꽃 이력서>



벚나무가 가슴팍에서

꽃잎 몇 장을 꺼내 보낸다


어느 한 장

허투루 내놓지 않고


가지 끝이 떨리도록

꾹꾹 눌러쓴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해낼 수 있습니다

기회만 주신다면,


한 줄의 스펙을

몇 개의 계절과 맞바꾸며


가지는 앙상해 가고


기울어진 의자 위

몇 번이고 자세를 고쳐앉아


이력서 쓰는

봄날엔


세상이 온통 책상이다




작년 2월, 퇴사를 하자마자

곧장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습니다.


늦어도 봄에는

취업하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죠.

그러나 취업은

마음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더군요.


업계의 불황과

굵직한 광고회사들의 파산으로

일거리는 물론,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고


더 나아가

집 문제로 수백만 원의 목돈이 나간 일과

심적 문제 등의

개인적인 악재가 겹쳤습니다.


취업 공고라도 있다면 뭐라도 해볼 텐데,

이 문제를 조금은 틀어막을 수 있을 텐데,


제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달리기 시작했어요.

매일 산이나 공원에 나가

크고 작은 나무들 사이를 달렸습니다.


그렇게 그 벚나무를 보았죠.


끝물에 다다른 벚나무는

얼마 남지 않은 벚꽃잎을 한 잎씩

천천히 정성들여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제겐 그 풍경이 마치

살기 위해 간절히

이력서를 쓰는 모습처럼 보였어요.


저 벚나무도 지금

나와 같은 시기를 통과하고 있구나, 생각하니

조금은 위로도 되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기울어진 의자 위에선

아무리 자세를 고쳐 앉아도

결코 바르게 앉을 수 없듯,

내 의지만으론 어쩔 수가 없는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흐릅니다


그 시간 속에서


사람은 만들어집니다


삶은 빚어집니다


시간은

사람을 만듭니다


그늘의 시간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그 후로 9개월이 지난 후

저는 재취업을 했고


출근 후엔 카피를 쓰고

퇴근 후엔 시를 씁니다.


이따금씩

폭포와 같은 시간의 유수 속에서


아직

이렇게 서 있습니다




지금,

자서전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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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시는 자작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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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