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방송>
온 세상이 스티로폼처럼 하얗습니다
잠이 많은 나는
간밤에 내리는 눈을 보지 못했습니다
눈이 쌓여가는 것을
조용히
온 세상을 바꿔 가는 것을
보지 못한
나를 위해
나무들이 가지마다 쌓인 눈을
한 번 더
허공으로 흩뿌려줍니다
지난 밤의 눈발들에게
한 번 더
날개를 달아줍니다
다시, 첫눈입니다
'인생이란 당신이 숨 쉬어온 모든 날들이 아니라,
당신의 숨이 멎을 것 같았던 순간들의 합이다'
-영화 히치(Hitch) 대사 중
무심코 거닐던 골목 위로
일순 흩날리는 눈발을 본 적 있습니다.
대낮의 맑은 하늘 위로
작은 천사처럼 내려오는 눈송이들 아래
저는 속수무책, 무방비로 선
아름다움의 포로가 되고 말았지요.
예보에도 없던
눈이 내린 것은
가지마다 쌓여 있던 눈발을
바람이 털어준 탓이었습니다.
새하얀 색으로 장엄하게 뒤덮이던
간밤의 명장면을
보지 못한 저를 위해
다시 한번
영사기를 돌려주는 마음이었겠지요.
시간이 멎고
숨이 멎은 듯한
그런 풍경을 마주할 때, 세상은
당신만을 위한 시네마가 됩니다.
아끼던 영화의 명장면들만 모아
토토에게
세상 단 하나뿐인 영화를 선물하던
알프레도처럼,
나를 위해
우주 한구석 저기 어딘가
불꺼진 방안에서 홀로
낡은 영사기를 돌리고 있을
누군가의
굵은 팔뚝을 생각하는 밤입니다.
한 해의 엔딩크레딧이
저물어가는 오늘
1년이라는,
길고 길었던 장편영화 속
당신의 명장면은 무엇이었나요
우리 대부분은 인생의 큰 상을
놓친 채 살아갑니다
퓰리처상, 노벨상, 아카데미상, 토니상, 에미상...
그러나 우리 모두는
인생의 작은 기쁨을 받을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깨를 두드리는 격려의 손,
귓가를 스치는 가벼운 입맞춤,
보름달,
텅 비어 있는
주차 공간,
활활 타오르는 난로,
멋있는 식사,
눈부시게 아름다운 황혼,
따듯한 국,
차가운 맥주.
인생의 큰 상을 잡으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작은 기쁨을 즐기세요
우리 모두를 위해
충분히 마련되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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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시는 자작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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