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짝꿍 혜림이

by 시와 카피 사이

<두 마리 세트>



치킨이 담긴 봉지를 건네받다


배달원의 차가운 손끝과

내 손끝이 문득 포개어집니다


뚜껑을 열면

나란히 담겨 있는 닭 한 쌍


몇 개의 언덕을 넘어왔을 겁니다

오토바이가 가고 서는 동안

같은 굴곡

같은 진동을 느끼며


서로

어깨를 부딪히기도 하고

날개로 감싸주기도 하며


그렇게

먼 길을 돌아왔을 겁니다


창밖으로

오토바이 엔진소리 점점 멀어지고

그가

주방 어딘가에 두고 온

치킨무 같은 별들만


고요히 빛나는 겨울밤입니다




처음 이성의 손을 잡은 건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입니다.


체육시간이었고

운동장 한 모퉁이었어요.


짝꿍과 함께 손을 잡고 달려야 하는

2인 3각 수업이었는데, 저는 왠지

짝꿍의 손을 잡기가 싫었습니다.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아이의 손을 잡는다는 부끄러움 반,

떨리는 두려움 반이었던 것 같아요.


끝까지 손을 안 잡겠다며

저는 고집을 부렸고

짝꿍은 제 옆에서 볼을 붉힌 채

그저 가만히 서 있었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운동장 한 구석에

우리는 어정쩡하게 서 있었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성격이 유순하던 그 아이가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을 머금은 채

처음으로 화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도 너랑 손잡기 싫어!!"


감정이 격해지던 우리는 담임선생님의 중재 끝에

손잡고 운동장 한 바퀴를 도는 것으로

화해를 대신하기로 했어요. 이미

수업시간이 다 끝난 후였죠.


아무도 없는 고요한 운동장 위를

나란히 함께 달리는 동안

제 신경은 온통 그 아이에게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아이가 조금씩 뒤처질 때면

보폭을 좁히기도 하고,

숨소리가 거칠어질 때면

속도를 늦추기도 하며


온 마음을 다 써서

빛 속을 건너던 계절이 있었습니다


나와 함께

책상을 맞대고 앉았단 이유로

그날 내내 맘고생했을,


오늘도 이 세상 어딘가에서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당차게 나아가고 있을,


내 짝꿍 혜림이에게.


뒤늦은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합니다




문턱을 들어설 때는 동료, 문턱을 넘을 때는 친구


-이자카야 훗코리 광고




https://brunch.co.kr/@hyungsic7/148

*위 시는 자작 시입니다

*구독료

넷플릭스 13500원. 티빙 9500원. 쿠팡플레이 7900원. 시와카피사이 0원.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