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가끔 골목을 지난다

by 시와 카피 사이

<태양계>

-삼청동



승용차 한 대

겨우 지나는 돌담길


벽과 벽에 기대어 선 두 남녀가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이쪽 벽에서

남자가 허릴 굽혀 렌즈를 맞추면

저쪽 벽에서

여자는 수줍은 듯 몸을 꼬고


셔터가 눌리기 전까지

사람들은 잠시 기다려줍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아주머니도 강아지도

골목을 지나던 봄도 바람도 가로수도

모두

조용히 멈춰서줍니다


태양을 따라 늘어선

크고 작은 행성들처럼

나란합니다


기다려 준 사람들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

함께 사진을 확인하며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 뒤로


나도 함께

마음 깊은 곳의 셔터를 눌러봅니다




어떤 장면은 그 자체로 영원의 입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날의 삼청동, 좁은 골목이 그러했죠. 그곳엔 젊은 두 남녀가 서 있었습니다. 양쪽 돌담에 몸을 기댄 채로요.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찍어주는 듯 보였습니다.


카메라 셔터가 눌리기 직전의 순간, 세상은 잠시 무중력. 분주하고 소란하던 풍경이 고요해집니다. 골목을 지나던 사람들이 멈춰섭니다. 기다려줍니다. 태양계의 크고 작은 행성들처럼, 나란히.


각자의 은하를 떠돌던 별들이 잠시 같은 궤도에 머문 순간이었습니다.


누구도 그들의 장면 속을 가로지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사진을 다 찍을 때까지. 카메라가 폭죽처럼 플래시를 터뜨릴 때까지. 사람들의 눈꺼풀 위로 하얀 빛이 깃털처럼 내려앉을 때까지. 사람들은 기다려주었습니다.


우린 이런 장면들을 모으러 이 땅 위에 온 걸지도 몰라요


지나치는 순간 속에서

지나가지 않을 영원을 붙잡는 일.

그 찰나의 영원을 위해

누구나 마음 속에

카메라 한 대쯤 필요할 것만 같은


봄밤입니다




시간은, 멈출 수 있다

-캐논 EOS m2 카메라 광고



*위 시는 자작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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