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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석 Jan 04. 2020

신뢰, 충돌, 헌신

짧게 줄여서 신충헌. 


신뢰, 충돌까지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헌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거부감이 들 수 있다.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는 말을 좋은 맥락으로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나저나 헌신은 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일까? 


먼저 신뢰와 충돌의 의미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1. 신뢰


개인적으로 '존중'이라는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존중(respect)은 거의 대부분 같이 일하는 동료를 '존중해야 한다'와 같은 형태로 많이 사용된다. 동료도 사람이고, 사람과 사람은 독립적인 개체로서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로는 괜찮다. 그러나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존중은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얻어지게 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 사람과 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갖게 되는 '결과'에 더 가깝다. 


존중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존중을 하게 된다'라는 말은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표현이기 때문에 막상 써 놓으면 굉장히 어색하다. 이런 의미에서 존중보다는 '신뢰'란 단어를 훨씬 더 선호하는 편이다. 


- 동료를 신뢰해야 한다

- 동료를 신뢰하게 된다


'신뢰'의 경우 두 가지 표현이 다 자연스럽다. 첫 번째는 버리고, 두 번째 의미로 사용하면 된다. 신뢰에 대한 좀더 자세한 내용은 '신뢰는 어떻게 형성되는가(https://brunch.co.kr/@hyungsukkim/107)'를 참고.


2. 충돌


일할 때 동료를 존중해야 한다, 신뢰해야 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할 때 갖는 공통적인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


-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하건간에 '좋은 의견입니다'로 시작한다

- 상대방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도 회의에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조용히 따로 이야기한다

- 분명히 망할 것 같은 방식으로 업무가 진행되려 할 때도 그냥 둔다

- 망했다는 것이 판명이 나도 서로를 배려하는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 일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뻘짓. 약간 순화하면 업무 비효율이라고 할까.


그런데,

정말로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동료를 신뢰할 수록 1) 돌려말할 것인가, 2) 솔직하게 말할 것인가.


신충헌에 있어서, 신뢰 다음에 충돌이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신뢰'하는 관계일수록 마음껏 '충돌'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신뢰할 수록 조심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신뢰하는 만큼 충돌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신뢰하는 관계에서의 충돌'은 신뢰의 수준을 낮추지 않고 오히려 강화한다. 


스티브 잡스가 일하는 모습을 실제로 찍은 영상을 보면 스티브 잡스가 엄청나게 사람들에게 무례한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만큼 사람들을 믿고 있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의견에 합리적인 반대를 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스티브 잡스는 해고하지 않고, 잡아두려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순간적으로 잘못 생각할 수 있다. 그 순간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의 가치는 정말로 크다. 개인 차원이 아니라 '조직' 자체에서 가능하다면 이를 통한 업무 효율은 비약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참고로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신뢰의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충돌한다고 신뢰가 생기는 경우는 없다.


3. 헌신


헌신은'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이라는 뜻이다.


- 회사에 헌신하세요.


미치지 않고서야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대표님은 없을 것이다. 몸과 마음을 다해 헌신하는 직원들을 따로 챙겨줄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 올해부터는 회사에 헌신해야지.


반대로, 이런 생각이 들리는 없겠다.


헌신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희생'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헌신은 강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헌신이 의미를 갖는 경우는 사실 딱 하나다. 그것은 바로 '자발적 헌신'인 경우다. 가령 나라를 잃었을 때를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데 사실 '신충헌'에서의 헌신은 이러한 맥락과는 다소 다른 부분이 있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헌신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같은데, 맥락이 다르다.


신충헌의 헌신은

신뢰와 충돌 다음에 온다.


왜 신뢰와 충돌 다음에 '헌신'이 오는 것일까에 대해서 답을 할 수 없다면, 혹은 아예 이런 의문을 갖은 적이 없다면 아직 신충헌의 개념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헌신'이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헌신은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의 뜻이라고 했다. 그런데 '무엇'에 대해서 헌신한다는 의미일까?


신뢰하고, 충돌했다면 어떤 결정이 내려졌을 것이다.


그 결정에 대해서는 본인의 의견이 반영되었건, 반영되지 않았건 간에 최선을 다해 그 결정의 성공을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가 신충헌에서 말하는 헌신이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


신뢰와 충돌에서 강조하는 것은 '의사표현'이다. 


그러나 회사는 가족이 아니고, 국가도 아니다. 만장일치나 다수결로 모든 안건을 처리할 수는 없다. 아무리 신뢰 기반으로 치열하게 충돌했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을 납득할 수 있는 결정 같은 것은 없다. 사실 모두가 동의했다면 반성하는 것이 더 낫다. 왜 그것을 아직까지 방치했던 것일까 하고 말이다.


자신의 의견이 채택되었을 때에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조직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있다는 것을 의사결정권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수평문화는 모두가 모여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정은 누군가가 한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회사의 업무가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 그 결정사항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일 수록 다음 번에 그 사람의 '발언권'에 더욱 무게가 실리게 된다.


신뢰와 충돌 없이 '헌신'만 하는 사람은 어떠한가? 신뢰와 충돌이 없다는 것은 자기가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인 경우가 많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회사에서 차지하는 의미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고 오늘, 이번 주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만 확인하는 사람을 조직은 또 어떻게 대해야 할까. 


결국 신충헌은 일종의 순환고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신뢰가 있는 상태에서, 

마음껏 충돌하고, 

결정된 것은 따른다.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별로 이 사이클이 돌아간다. 어떤 프로젝트에서 자신이 잘못 생각했던 것은 스스로 리뷰하고 다음 프로젝트 사이클에서 수정한다. 자신의 강점을 발전시키고 약점을 이해한다. 그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동료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고, 시너지를 낸다.  


신충헌은 강요하거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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