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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석 Jul 01. 2020

모두가 알고 있는데 아무도 하지 않는 일

모든 회사에는 모두가 알고 있는데 아무도 하지 않는, 그러나 매우 중요한 업무가 있다.


1. 모두가 알고 있는 일


회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업무들은 보통 숨겨져 있지 않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한 번쯤 생각했거나, 어떤 부서가 검토했다가 빠그라졌거나 대충 그렇다. 오히려 문제가 있다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업무들과 같이 나란히 있는 측면이 강하다.


아, 그 이슈 이미 알고 있어요. 


이 말은 굉장히 여러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대략 아래와 같다.


- 말 그대로 이미 알고 있다! (자부심 같은 것?)

- 당신이 처음 발견한게 아니다 (그러니 좀 나서지 말아라)

- 이걸 또 설명해야 하나 (바쁘거나 지쳐있음)

- 하지만 하지 않을 거에요 (왜냐하면 하지 않을 거니까요)


회사를 다니면서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은 어떤 이슈를 이미 알고 있는 경우(아예 이름도 있다. Known Issue라고 한다) 뭔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뭔가 자신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이슈를 접하면 사실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닌데도 굉장히 많이 걱정하고,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하는데, 이미 알고 있는 이슈는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직원들이 이미 알고 있는 업무를 발견하기 위해 경영진이 컨설팅 회사를 쓴다! 그것도 매우 큰 돈을 매우 어이없게 쓴다. 업계 지식이 거의 없고, 그 업무를 해결하지도 않을 분들이 와서,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폭풍처럼 묻고, 100장짜리 장표를 만들고 사라진다. 보통 '기승전'은 매우 훌륭한데 '결'은 정말로 부실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매우 당연하게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원인은 그대로니까.


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아니다.


2. 아무도 하지 않는 일


엄밀히 말하면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이라기 보다는 '이미 누군가 실패한 일'에 가깝다. 하자고 했다가 대박 깨졌거나, 일단 시작했는데 망한 경우다. 이러면 회사에서 그 업무는 '해봤는데 안된 일'이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상태값(Status)는 유지된다. 계속 '해봤는데 안된 일'로 남는다. 그리고 시대가 바뀌었고, 상황이 바뀌었고, 회사가 자원을 충분히 가지게 되었고, 그리고 그것을 할 사람들이 질문을 하면?


아, 그거 예전에 검토했었는데 안하기로 했어요.


그러다가 좀더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도 헷깔려한다. 나이를 먹어서 기억력이 감퇴했기 때문이기도 한다. 그러면 다음같이 말하거나 혼자 속으로 생각한다.


뭔가 (안하게 된) 사연이 있을거야.


요런 과정을 반복하면 회사에서는 '모두가 알고 있는데 하지 않은 일'에 대한 리스트가 만들어진다. 집단지성으로 이 'Known List'를 업데이트하고 '하지 않기로 한다'.


3. 중요한 일


물론, 알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회사의 업무 우선순위는 고려하지 않고 눈앞에 놓여진 수많은 업무들을 다 하자고 관심이 분산될 경우 회사가 골로 가는 경우가 더 많다. 언제나 '집중'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집중을 위해서는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제발 모든 것이 다 중요하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리고 그 우선순위를 결정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 중요도: 그 문제를 해결했을 때 얼마나 큰 Impact이 있는가.

- 리소스: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얼마나 많은 자원이 투여되어야 하는가.


종이와 펜을 준비하면 된다. 가로축엔 중요도, 세로축엔 리소스라고 적는다(그 반대로 적어도 된다). 이 둘의 비율을 보고 우선순위를 정하면 된다.


그냥 중요한 순서대로 해결하면 되지 않나요?


그러면 '알고 있는데 하지 않는 일 List'가 너무 길어진다. 아예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아니라면, 리스트는 적당할 때 줄이거나 털어내는 것이 낫다. 


4. 모두가 알고 있는데 아무도 하지 않고, 그런데 매우 중요한 업무


- 모두가 알고 있는 업무

- 아무도 하지 않는 업무

- 매우 중요한 업무


각각은 사실 의미가 없다. 모두가 알고 있는 업무라고 해서 꼭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무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할 어떤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성립한다.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세상의 모든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셋의 조건이 동시에 작용하는 경우(AND 조건)은 다르다.


모두가 알고 있는데 아무도 하지 않고 있는, 그러나 매우 중요한 업무를 발견하는 것은 무척이나 재밌고,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 일이다. 만약, 그 일을 Raise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면 '직접 풀어보겠다'라고 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5. 정답같은 것은 몰라도 된다.


이슈를 Raise할 때 해결방법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정말로 해결이 필요한 문제일 수록 실제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답을 찾는 경우가 더 많다.


원칙(Principle)에서 레이 달리오는 말했다.


나에게 답을 가져오지 마시오.

나에게 해결할 문제를 가져오시오.  


해결책을 모르면 말도 꺼내지 말라고 하면 모든 것들이 너무 조심스러워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로 풀고 싶은 문제를 찾으면, 찾기만 하면, 그리고 진짜로 풀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어떤 문제건 간에 그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6. 본인이 풀고 싶지 않은 문제는 꺼내지 않는 것이 좋다.


답은 몰라도 되는데, 그냥 '아무말 대잔치'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가벼운 질문이나 공유까지는 모르겠는데, 자신이 해결할 생각이 없으면서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좀 많이 그렇다.


가장 단순한 프로세스는 아래와 같다.


1) 문제를 찾는다

2) 기본적인 리서치를 한다

3) 이 문제를 같이 풀 사람들에게 의향을 물어본다

4) 본인이 정말 이 문제를 풀고 싶은지 생각한다

5) Raise한다

6) 만약 그 일을 잘 알고 있으면서, 해결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업무를 맡긴다

7)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제가 해봐도 되겠습니까?'라고 말한다.


아직 직장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회사에는 '엄청나게 빛이 나는, 그래서 모두가 하고 싶어하는 업무'가 있을 거라고 말이다. 뭐, 서로 하겠다고 나서는 아름다운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보통 '모두가 알고 있는데 아무도 하지 않는, 그러나 굉장히 중요한' 업무를 서로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서로 해결하겠다고 난리였으면 진작에 그 일이 해결되었겠지 말이다.


7. 업무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업무를 찾아갈 수 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


업무를 선택할 수 있다고요? 에이, 그게 말이 되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업무를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9시에 출근해서 6시까지 주어진 업무를 하고, 혹시 못하면 야근을 하거나 집에 가서 채워온다. 워라밸 같은 것을 하기 위해서라면 업무시간에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이직을 할 때에는 그 회사에서 어떤 업무를 할 것인지를 굉장히 오랫동안 고민하고, 상의한다. 업무가 정해지면 그 일을 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듯 하다.


그런데 사실 자신의 일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그렇다면 저는 오늘부터 제 맘대로 하고 싶은 일을 정해서 하겠습니다!'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엥, 뭐라고요.


사람들은 예시를 좋아하니,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누군가를 좋아할 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나요?

물론이죠.

그 사람한테 가서 '나 너 좋아하니, 오늘부터 사귀자'라고 하면 그 사람과 사귀게 되나요?

이 사람 미쳤...

그러면... 다시 물을께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나요?

...


왜 좋아하는 사람은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좋아하는 업무는 선택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어쩌면, 좋아하는 업무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업무를 하고 있는 원인이 사회가, 세상이, 직장이, 상사가 아니라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너무 아픈 것이 아닐까.


업무는 선택할 수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하고 싶은 업무로 '찾아갈 수' 있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는 없을 지 몰라도, 한발한발 자신이 하고 싶은 업무를 발견하고, 노력하면 그 업무를 찾아갈 수 있다. 업무가 업무를 끌어들이고, 사람이 사람을 끌어들이듯이, 업무와 사람도 서로를 끌어들인다. 물론, 업무를 선택할 때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업무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그리고, 그 업무들 가운데 이런 업무가 있다면 손을 들자. 번쩍 들자.


모두가 알고 있는데, 아무도 하지 않은, 그러나 매우 중요한 업무. 


괜찮으시다면, 제가 한 번 해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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