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과 균형은 서로 상반되는 개념처럼 여겨진다.
집중(Focusing)은 하나의 업무에 몰입하는 행위이다. 균형(Balancing)은 하나 이상의 업무를 두루두루 살피는 것을 의미한다. 정의 자체로만 보면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다. 실제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중요한 한 가지에 집중하자고 하는 사람과 한 방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보자는 사람들로 의견이 갈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정말로 두 개념은 서로 다를까.
1. 집중
어릴 적 돋보기를 이용하여 종이에 불을 붙여봤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초점이 맞춰지면 기적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연기가 나고 불이 붙는다. 세상에 있는 그 모든 햇빛의 극히 일부분을 모았는데도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을 할 수 있게 된다.
아무리 복잡해 보이는 업무도 충분히 집중하면 풀 수 있다. 합이 맞는 좋은 동료가 옆에 있다면 더욱 그렇다. 집중하기 시작하면 주변의 다른 것들이 블러 처리가 되어 간다.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걸어갈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나 깨어날 때, 샤워할 때, 그리고 바람이 얼굴에 닿는다는 것을 느낄 때 어떤 답을 찾게 된다. 계속 생각하면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정말로 중요한 것, 풀고 싶은 것 하나가 남는다. 초점이 맞춰질 수록 평소에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새로운 관점과 연결고리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것이 어렵다.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을 하나씩 걷어낼 때 잡음은 사라지고 문제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중요한 것들을 잘못 걷어내는 것이 아닐까의 불안에서 벗어나게 되면 시야가 분명해진다. 무엇에 집중해야 할 지를 알게 된다.
2. 멀티태스킹
집중을 가로막는 가장 큰 개념이자, 오늘날의 직장에서 가장 Overvalue된 개념이다. 한 사람의 리소스를 100으로 넣고, 이를 온전히 업무에 투여했을 때 100의 성과를 얻는다고 해보자.
- 직원A: 한 가지 업무에 100을 투여하여 성과 100을 얻는다.
- 직원B: 다섯 가지 업무에 20씩 투여하여 성과 100을 얻는다.
위 둘의 가치는 동일하다. 업무는 얼마나 '많은' 업무를 동시에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자신의 리소스를 투여했을 때 회사에 어느 만큼의 영향(Impact)을 가져왔는지에 따라 평가되기 때문이다. 만약 한 가지 업무에 100을 투여해서 150의 성과를 낼 수 있다면, 굳이 20개씩 다섯 가지 업무에 투여하여 100을 달성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 여러 개의 업무를 동시에 할 수 있다고 어떤 가산점이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멀티태스킹이 완전히 무익한 개념인 것은 아니다.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는 멀티태스킹이 효율적이다. 가령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이라면 뻔히 사람이 없는데 '나는 한 가지에 몰입하겠소'라고 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사람이 많아졌음에도 여전히 10명이 10개의 업무를 1/10씩 나누어 모두 같이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 대기업의 경우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는가'가 채용할 때나 승진할 때 더 중요한 자질로 평가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첫째,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를 찾는 것이 꽤 어렵기 때문이다. 집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집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실타래 같이 얽혀있는 업무더미를 찬찬히 살피며, 하나씩 매듭을 풀어가며 집중할 1-2가지의 업무를 찾아내는 것은 상당한 안목이 필요하다. 만약 엉뚱한 것에 리소스 100을 투여했다면 성과는 20이 되어 버린다. 이 위험을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는 격언을 떠올리고, 사람들은 멀티태스킹 안으로 숨어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3년, 5년, 10년을 보내면서 자신의 안목을 키울 시간을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
둘째, 관리자는 중요한 모든 것을 챙겨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위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의사결정은 관리자, 관리자의 관리자, 그 관리자의 관리자로 계속해서 올라간다. 현장에서 적시에 의사결정이 내려지지 않으며 업무는 지체되고, 최상위 관리자는 여러가지 업무의 진행사항을 살피며 의사결정을 내리는 자기자신의 역량을 과신하게 된다. 음... 실제로 그렇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적다. 그리고, 꼭 그렇게 일할 필요도 없다. 직책이 올라가면 '관리'를 해야한다는 생각부터 버리는 것이 좋다.
3. 스위칭코스트(Switching Cost)
하나의 업무에 집중하다가 과제를 바꾸어 두 번째 업무에 집중하는데까지 걸리는(혹은, 잃어버린) 비효율을 의미한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한 가지 업무에서 다른 하나의 업무로 쉽게 왔다갔다 할 수 없다. 물론, 다른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스위칭코스트가 낮은 사람들도 있는데, 이 것이 꼭 장점은 아니다. 한 업무에서 다른 업무로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은 진득하게 앉아 한 업무에서 끝장을 보는데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5개의 업무에 20씩 투여해서 100의 성과를 올렸던 사람을 다시 떠올려 보자. 스위칭코스트가 없다면 얼마나 많은 업무를 하는지는 크게 중요치 않다. 그냥 자기 리소스를 자신이 맡은 업무의 수로 나눠서 각각의 일에 해당 리소스를 투여하면 된다. 그러나 실제로 일할 때는 (사람이라면) 스위칭코스트는 꽤 높게 발생한다.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거나, 전화를 받거나,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부장님이 잠깐 찾으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업무저하는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메일을 보는 시간을 따로 정하라거나, 집중시간 같은 것을 두고 해당 시간에는 외부의 연락을 끊으라고 하는 조언들은 '몰입'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집중하고 있는 것'과 '집중하고 있는 것' 사이의 비효율을 줄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4. 안목
집중을 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무엇에 집중할 것인지'를 찾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아무 일이나 주어진다고 덥썩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아직 주어지지 않았지만 원래 내가 하고 있었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러한 일들이 해결되지 않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기저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한다.
-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일, 덜 중요한 일
- 시급한 일, 시간을 좀더 두어도 될 일
-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동료가 더 잘할 수 있는 일
- 일의 선후관계가 있는 일(하나의 일이 다른 일에 영향을 주는 일)
- 자신이 끌리는 일, 끌리지 않는 일
- 그리고 많은 기준들......
당연한 이야기인데 안목은 하루 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누가 대신 발견해줄 수도 없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업무는 사람마다, 그 사람이 다니고 있는 회사마다, 그 회사의 성장단계에 따라, 자신의 매니저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가에 따라 모두 다르다. 절대적인 마법의 법칙 같은 것을 찾으려 일평생을 찾거나, 다른 사람의 기준을 애써 구해보려 하는 것보다는 자신을 믿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낫다.
안목이 없다는 생각을 할 수록 불안해진다. 하나의 업무에 집중하는 대신 여러 업무에 손을 댄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집중과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5. 균형
집중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균형'은 필요없는 개념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릴 지 모르겠지만, 집중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균형 감각이 좋다. 왜 그럴까?
불안한 상태에서는 집중하기 어렵다.
어떤 업무에 집중해야하는지 자신이 없어서 생기는 불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집중할 것을 찾았을 때의 이야기다.
집중할 것을 찾았으면 그냥 하면 되지 않나요?
아니, 그렇지 않다. 집중할 것을 찾았으면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중요한 업무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휴지통에서 연기가 나고 있다면 잠시 멈추고 가서 불을 꺼야 한다. 시급한 업무들을 적절히 처리하지 못하면, 정말로 대범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집중하기 어렵다. 시급한 업무를 놔두고 태연히 중요한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이 반드시 좋은 성향도 아니다.
여러 업무를 살피고 그 중 집중할 것을 정했다면, 나머지 업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스탠스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어느 만큼 센싱하고, 언제 관여할 것인가. 그것들이 너무 심각해져서 내가 집중하고 있는 일에 영향을 주면, 집중에서 깨어나고 그 돌발상황을 해결하고 다시 본래의 업무에 돌아오는 과정에서 스위칭코스트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집중을 하기 위해서라도, 역설적으로 집중할 프로젝트 외에 다른 업무들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이 때의 균형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모든 업무를 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의 균형과는 다르다.
가령, 20씩 나누어 5가지의 업무를 통해 100의 성과를 내고 싶었던 사람은 모든 업무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할 것이다. 각각의 업무가 20의 성과를 내었을 때 100이 되기 때문에, 한 업무가 20보다 적은 성과를 내면 다른 업무에서 그 만큼을 추가로 메워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모든 업무에서 자신이 목표하는 성과를 달성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집중할 것을 찾은 사람에게 있어 '균형'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하나의 '집중할 업무'와 9가지의 '관리가 필요한 업무'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때 필요한 균형은 10가지의 업무에서 모두 최대의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다. 9가지 업무는 각각에서 최대의 성과를 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1개의 집중할 업무를 하는데 방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 Control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각각의 업무가 100점 만점이라면 70점만 받아도 충분하다. 낙제만 받지 않으면 된다. 성과는 '집중할 1가지 업무'에서 달성하면 된다.
- 한 과목이라도 만점을 받는 것
-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받는 것
- 되도록 많은 과목에서 90점 이상을 받는 것
- 어떤 과목에서건 70점 이상을 '반드시' 받는 것
위 네 가지의 공부방법은 모두 다르다. 들이는 시간, 업무에 임하는 자세도 모두 다르다.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일을 해야 한다.
9가지 업무를 하는 목적은 마지막 1가지 업무에 집중할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함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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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제를 동시에 풀 수는 없다
정말이다. 모든 문제를 풀어야 할 이유도 없지만, 그 모든 문제를 동시에 푸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누군가는 가능하다 해도 당신마저 그렇게 살 이유가 없다.
자신이 없을 수록 모든 문제를 풀려고 한다.
많은 문제를 풀고 있을 수록 더 큰 성과를 내고 있다는 착시에 빠지기 쉽다.
시간을 들여 집중할 것을 찾고 다른 모든 것들은 균형을 통해 관리한다.
집중과 균형, 이 둘은 절대로 떨어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