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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석 Dec 31. 2017

직장을 떠난다는 것

#직딩에세이 #30

누군가와 헤어지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특히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같이 보냈고, 그 경험 속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알게 해준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설레였던 기억, 타오르던 시간, 아쉬움과 섭섭함, 그리고 냉정을 찾기까지의 감정의 변화 속에서,


어느날 문득 떠나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다시 한 번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몇 번이나 되새고 노력을 기울여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 것들이 있다. 깨어진 찻잔을 다시 붙이려는 노력이 의미가 없는 것과 같다. 뼈는 부러지더라도 재활을 통해 더욱 강하게 붙지만, 관절은 한 번 망가지면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처음으로 되돌아 올 수 없다. 그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을 변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장소에서 시간을 가지고 자신을 돌아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미련은 생각보다 깊은 상처를 남긴다. 아쉬움은 자신을 갉아먹는다.


견뎌야 할 때와 떠나야할 때의 구분은 생각보다 쉽다. 격한 감정에 휩싸였을 때는 그냥 판단을 보류하고 그 감정들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면 된다. 잠을 자거나, 걷거나, 책을 읽거나 어떤 것이어도 좋다. 자신이 가진 편안한 감정 회복의 루틴 속에서 냉정을 찾을 수 있다면 어떤 것이어도 좋다. 그리고 모든 것이 안정을 찾고,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때 가장 편안한 상태로 자신의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된다. 수영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몸의 긴장을 풀고 팔을 벌리면 자연스럽게 몸이 뜨는 것과 같다.


다만, 서로를 떠나보낼 때는 웃으며 헤어지는 것이 좋다. 화를 내거나, 이유를 알 수 없거나, 서로를 마주하지 않는 상태로 헤어지면 두고두고 마음의 병이 생긴다. 물론, 죽으면 안되겠다 싶어 도망치는 경우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야겠지만, 좋아했던 사람과 헤어질 때는 차 한 잔을 마시고 즐거웠다고 말할 준비가 되었을 때 헤어지는 것이 좋다.


일단 헤어지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에겐 시간이 지날 수록 기억은 더욱 흐릿해진다. 그러나, 기억을 안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한참의 시간을 보내고 길을 가다가, 버스를 기다리다가, 새벽에 잠을 깼다가, 카페에 앉아 어떤 음악을 흘러나오는 것을 듣다가 갑자기 마음에 닫아두었던 봉인이 해제가 된다.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피식 하고 웃음이 입가를 스치기도 한다. 즐거웠던 기억, 아쉬웠던 기억, 속이 상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이런 기억들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자연스럽다. 좀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거친 기억들도 모서리가 조금은 둥글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트라우마로 남는 기억도 있다.


이해가 되지 않은 채로 급하게 봉합된 기억들은 마음 한 구석에서 그대로 썩어간다.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과 그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상처의 크기는 비례한다. 조리개를 열 수록 더 많은 빛이 들어오는 것과 같다.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순간에 받은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반대로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채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을 가능성 또한 떠오른다. 이것은 형체를 알 수 없기에 붙어서 싸울 수도 시간을 거슬러 해결할 수도 없다. 달력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도 헤어짐에 있어 좋은 기억들이 더 많다.


누군가를 정말로 좋아했다면, 헤어짐으로 인해 자신이 좋아했던 바로 그 가치가 변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흘렀고 상황이 달라졌을 뿐, 다시 돌아가면 '그 당시의 자신'은 다시 같은 선택을 하고 같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만큼 성장하고, 경험하고, 헤어지고, 그리고 다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어떤 경우에든 헤어짐이 잘못된 선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했던 경험은 그 사람을 영원히 변화시킨다. 세상을 살아갈 때의 관점이 바뀌고,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이나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한계까지 간 상황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이 정말로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얼굴이고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로 행복했던 순간에서라는 자신이 바라보는 사람의 얼굴과 표정 안에서 자신에 대해 사람들의 기대와 행복을 체감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자신에 충실했다면 그 시간은 결코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슬픈 기억을 지워주는 연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아무리 슬픈 기억이라도 그 기억 없이는 더 이상 자신을 돌아볼 수 없다. 도려낸 기억은 공허함을 낳는다. 이보다는 어떻게든 꺼내어 들여다보고 지금부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낫다. 설령 그 상처들이 삶의 가치보다 더욱 커져버린 경우에도 그렇게 마주해야 한다.


이것은 내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하다.


안녕 페이스북, 굿바이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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