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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석 Apr 05. 2018

직장인의 장표 만들기

#직장을즐겁게 #11

모든 직장인이 스티브잡스처럼 장표를 만들고 준비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1. For whom, for what?


장표를 만들 때는 타겟과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디카에 있는 오토포커스 기능은 PPT에는 없다. 만약, 대상과 목적 없이 장표를 만들었다면 결과도 초점을 잃을 뿐이다.


장표의 '대상'은 크게 내부(internal)와 고객사(external), 임원과 실무의 2by2 매트릭스로 구분할 수 있다. 내부용 장표에서는 형식보다는 내용, 외부용 장표에서는 최소한의 포맷은 갖추고 시작하게 된다. 장표에 담는 내용에 있어서의 차이도 큰데, 기밀여부나 관점이슈도 있지만 장표 내용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자체가 굉장히 다르기 때문이다.


임원과 실무의 차이도 중요하다. 발표의 타겟이 임원인 경우, 그에 맞는 수준의 아젠다와 설득 논리를 준비하고 핵심 위주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면, 실무를 대상으로 한다면 '그 사람이 실제로 실행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장표를 만들어야 한다. 설득이 되면 누군가에게 그 업무를 지시할 수 있는 임원과, 직접 그 일을 해야 하는 실무는 장표를 볼 때의 관점이 정말로 다르기 때문이다.


장표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이다. 1) 의사결정을 받거나, 2) 공유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예산이나 프로젝트 승인을 받거나, A or B에 대한 교통정리를 확실히 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에는 설득이 아닌 설명이 핵심이다. 그리고 둘 모두의 공통 목표가 있다면, '재보고'가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For whom, For what'을 설정하지 않고 장표를 만든다. 쉽게 생각하자. 모든 사람에게 박수를 받으려 하지 말고, 하나의 목적으로 한 명만 공략하자.


2. Less is Better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장표는 분량이 적을 수록 좋다. 100장짜리 장표를 만들고 흐뭇해 하는 것은 자기만족이다. 폰트 10으로 우겨넣을 필요는 없겠지만, 불필요한 것은 최대한 걷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장표를 줄이기 위해서는 세 가지만 기억해도 큰 도움이 도움이 된다.


첫째, 상대방이 이미 알고 있거나 설득할 필요가 없는 내용은 최대한 짧게 처리한다. '당연히'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가령 이커머스 광고주에게 피칭하면서 '모바일이 왜 중요한지'를 한참 설명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작은 프로젝트를 피칭하면서 세계시장의 흐름을 조사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선수끼리는 적당히 하자.


둘째, 발표하지 않을 장표는 본문에 넣지 않는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발표하지 않을 내용을 본문에 추가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이건 따로 설명드리지 않겠지만'이라고 말한다. 얼마나 많은 리서치를 했는지를 굳이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자존감이 굉장히 떨어지는 경우다. 정말로 꼭 넣고 싶다면 appendix에 넣는 것으로 충분하다.     


셋째, 한 장에 넣어도 되는 내용은 한 장에 넣자. 가령 핵심 원인이 3가지이고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는 상황이라면, 3+1장으로 구성하는 것보다는 그냥 한 장으로 하는 것이 낫다. 능력있는 리더일수록 키워드만 보더라도 관점과 관점과 맥락을 이해한다. 불피요한 내용을 굳이 여러 장으로 설명한다면 당신이 그를 평가절하하는 것이다. 또한, 장면 전환이 많게 되면 보는 사람이 집중하기 힘든 이유도 있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당신이 화면을 자꾸 돌리기 때문이다.


장표의 성공은 장수에 있지 않다. 3장짜리 장표는 3장에, 100장이 필요한 장표는 100장으로 만들면 된다.


3. 두괄식 vs. 미괄식: 결론부터


결론부터 말하라, 이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왜 회사에서는 두괄식(혹은 연역법)을 좋아할까? 그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을 굳이 설명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만약 발표를 마쳤는데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면 두 가지 중 하나다. 완벽한 발표였거나, 완전한 시간낭비였거나.


기승전결이라는 말이 워낙 뇌리에 박혀 있어서인지 항상 뭔가의 배경을 설명하고 갈등과 극복방안의 대서사시를 전개하려는 사람이 많다. 특히, 본인의 발표에 자신이 없거나 보고받는 사람의 반응에 대한 예측력이 떨어질수록 '기승전'에 목숨을 건다.


그러나 의사결정을 목적으로 하는 장표의 경우 핵심은 '결'이다.


장표를 다 들었는데 'So What?'이 빈약하면 허망하다. 꾹 참고 다 들었는데 '결'은 다음 시간에 다시 보고하겠다고 하면 한숨이 나온다. 시간도둑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왠만하면 결론부터 시작하자. 장표의 맨 앞장에 넣기가 정말로 부담스럽다면, 최소한 장표를 만들 때라도 결론부터 먼저 작업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론이 빈약하면 결론부터 제대로 만들고 시작하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미괄식은 언제 필요할까? 크게 세 가지 경우이다. 1) 보고를 받는 사람이 해당 이슈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거나, 2) 공유 목적의 장표이거나, 3) 보고자와 보고를 받는 사람의 관계가 굉장히 돈독하여 어떻게 발표해도 대세에 지장이 없을 경우이다.


두괄식이 좋을 지, 미괄식이 좋을 지 헷깔리면 그냥 두괄식으로 하자. 아홉 번 성공하고 한 번 혼나는게 낫다. 그 반대가 아니라.


4. 킬링샷(Killing Shot)


킬링샷은 두괄식, 미괄식과는 다른 개념으로, '발표를 마친 후에 띄워놓고 질문을 받는 슬라이드'를 의미한다.


Thank You 슬라이드 말인가요?


예, 맞습니다. Q&A라고 써 있는 슬라이드를 대신 띄워 놓으셔도 됩니다. 어떤 분들은 그냥 Appendix를 선호하시기도 하지요.


물론 농담이다.


모든 장표에는 그 장표 전체를 아우르는 1장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공유 목적의 장표였다면 Executive Summary를, 의사결정을 받는 목적의 장표였다면 필요한 의사결정을 1장으로 정리한 슬라이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발표가 끝나면 그 슬라이드를 띄워놓으면 된다. 장표의 성패를 가르기 위해서.


5. 블랭크차트(Blank Chart)


블랭크차트는 '각 슬라이드에 제목(혹은 키메세지)을 적으며 전체 장표를 완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컨설턴트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식인데, 직장인에게도 굉장히 유용하다. 왜 그럴까?


블랭크차트를 만들 때의 장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1) 몇 장짜리 장표인지를 알 수 있다

2) 스토리라인을 미리 확인할 수 있다

3) 여러 사람이 장표작업에 참여하는 경우 담당할 장표를 나누어줄 수 있다


직장 초년생들이 가장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납기'의 개념이다. K-pop스타와 같은 서바이벌 게임을 보고 있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보고날짜가 정해져 있다면, 장표의 '완성도'는 납기 안에 처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진행해야 한다. 문제는 장표를 만들 때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지 예측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 때, 블랭크차트를 만들면 대략 감이 온다. 이 속도로 만들면 불가능하겠구나 하는 바로 그 생각이.


스토리라인도 마찬가지이다. 장표를 다 만들었는데 '근데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이런 생각이 들면 끝장이다. 여러 명이 장표를 만들 때도 블랭크차트까지는 같이 만들거나, 아니면 한 명이 만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전체 맥락을 모르는 상태에서 각자가 부분을 만드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블랭크차트는 일종의 장표설계도이다. 장표가 10장을 넘어갈 것 같으면 블랭크차트부터 만들자.


6. 장표는 머리 속에서 넘겨볼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 장표를 만든 사람은) 장표의 순서를 외울 수 있어야 한다. 발표 스크립트를 외우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머리 속에서 장표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각 장표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제대로 외워지지 않는다면 장표를 잘못 만든 것이다.


10장짜리 장표든 100장짜리 장표든 관계 없다. 만든 사람도 기억할 수 없는 장표를 '보는 사람'이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장표가 머리 속에서 정리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장표 안에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나 체계(Framework)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바둑을 두는 사람이라면 '복기'의 개념을 떠올리면 된다. 바둑이 끝난 후에 두 대국자가 특정 부분(주로 가장 어려웠던 부분)으로 돌아가 돌을 놓으며 의견을 나눈다. 필요하다면 첫 수부터 한 판을 똑같이 다시 둘 수도 있다. 바둑기사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기억력과는 관련이 없다. 각각의 돌이 놓여진 의미가 '맥락' 속에서 기억되기 때문이다. 만약, 초짜가 서로 막 돌을 두었다면 천하의 이세돌이라 하더라도 그 판을 복기할 수 없다.


장표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장표가 맥락을 잃을 경우, 머릿 속에서 장표를 넘기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특히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형태의' 장표가 그렇다.


장표순서가 안 외워지는 것은 기억력 때문이 아니라, 그냥 장표를 잘못 만든 것이다.


7. 장표는 거들 뿐(feat. 슬램덩크)


예전에는 장표 자체가 '자료'의 의미를 가지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이러한 전통이 유지되는 회사가 있겠지만, 많은 회사에서 장표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갖기 보다는 '발표'를 통해서 완성된다.


'장표=자료'와 '발표를 통해 완성'된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전자의 경우에는 굳이 발표를 듣지 않더라도 장표만 보면 그 내용이 대부분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동일한 Quality를 전제로) 장표를 만드는데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이 들고, 주석 등 필요한 내용이 장표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따라서 장표가 상대적으로 매우 복잡해진다.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장표는 발표를 위해서 존재한다. 보고를 받는 사람에게는 발표내용의 이해를 돕고, 발표하는 사람에게는 각 슬라이드에서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를 상기시킨다. 형식보다는 내용이 더 중요하고, 모든 설명을 장표 안에 넣을 필요도 없다. 발표할 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부분은 '의도적으로' 장표에서 걷어내고, 디테일한 숫자와 같이 기억하기 어려운 요소는 한 구석에 적절히 추가해 두면 된다.


발표를 전제로 한다면, 장표에 모든 것을 담을 필요는 없다.


8. No animation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에게 장표를 만들라고 하면 애니메이션을 어마어마하게 사용한다. 뭔가 글자가 날아다니고, 텍스트가 서로 겹쳐서 차례대로 노출된다.


정말로 장표를 잘 만들 자신이 있거나,

대행사의 광고 PT와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애니메이션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대표적인 이유를 다음과 같다.


- 장표를 종이로 출력하는 것이 어렵다

- 애니메이션에 맞게 발표를 준비할 시간이 없을 경우 득보다 실이 크다

- 그 장표를 만든 사람이 아닌 상사가 발표해야 할 경우 난감해진다

- 불필요한 화면전환이 많을 수록 보고받는 사람이 이해하는데 방해가 된다

- 정말로 필요한 순간에 애니메이션을 넣을 자신이 없다면 처음부터 넣지 않는 것이 낫다


어설픈 프리젠테이션만큼 발표자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이 없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요소들은 최대한 제외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것이 훨씬 더 낫다.


9. 용량에 신경쓰자


10M 이상이면 메일 발송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 '저희 회사는 괜찮은데요?'라고 말하는 경우에는 그 회사 내에서만 그렇게 사용해서 쓰고, 다른 회사에 보낼 때는 용량을 줄여서 보내자.


메일에 장표를 첨부로 넣으면 원래의 용량보다 사이즈가 더 커지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대략 7M 이내로 장표를 완성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마지막 순간에 1-2장의 버퍼를 둘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장표 용량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이미지다. 잡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PPT에 필요한 이미지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원본을 넣고 크기를 조정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용량을 일괄적으로 줄여 사용하는 것이 낫다. 검색을 하면 용도제한 없는 프리웨어 소프트웨어가 얼마든지 있다. PPT에 넣을 이미지를 모은 후 한 번에 파일 사이즈를 줄이는데 1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미리 용량을 줄일 시간이 없었거나, 파일을 공유하지 않고 발표할 목적으로만 만들었는데 추후에 공유해야할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럴 때는 PPT에 있는 이미지 일괄 압축 기능을 사용할 수도 있다.


동영상이 들어가는 경우는 답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유투브 등에 이미 올라가 있는 경우에는 장표에 URL주소를 넣는 것으로 충분하다. PC에 있는 있는 경우라면 영상을 삽입한 슬라이드를 제외한 뒤 장표와 영상을 분리해서 보내주면 된다.


중요한 것은 장표 용량을 신경쓰는가 하는 점이다. 크리에이티브가 굉장히 중요한 장표라면 어느 정도 예외가 될 수 있겠지만, 장표는 최대한 슬림하게 유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10. 생각하는 시간 vs. 장표를 만드는 시간


장표를 잘 만드는 사람일 수록 '실제로 장표를 만드는 시간' 자체는 매우 짧다. 대신 누구에게, 무엇을 목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에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한다.


급한 마음에 일단 노트북부터 켜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장표를 만드는 것은 연애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장표를 만들다보면 뭔가 전달할 것이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전달할 것이 있는 상태에서 장표를 만드는 것이다. 시간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충분하면 충분한 대로 만들어야 할 장표에 대해서 차분히 앉아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이 우선이다. 생각이 떠오르지 않다면 회사 밖으로 나가서 한 바퀴 걷다가 올 수도 있겠다.


우리 사수는 그냥 바로 만들던데요.


이건 둘 중 하나다. 1) 머리 속에 이미 장표를 만들기 위한 방법들이 깔려 있거나, 2) 그래서 늘 그렇게 시간만 오래 걸리고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제대로 된 장표를 만드는 것은 절대로 '헛짓거리'가 아니다. 장표를 잘 만드는 것은 직장에서 누군가를 설득하고, 성과를 내고, 즐거움을 찾는데 실제로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 장표는 업무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직장인에게 장표는 명함보다 더 중요한 '얼굴'이다.  

 

일러스트 ehan  http://bit.ly/illust_e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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