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물어오는 게, 특히나 한국에서 여행 온 사람들은 거의 100% 묻는다.
어떻게 미국에 오게 되었어요?
그때마다 똑같은 대답을 한다. '딸애 때문에요..' 말은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은 덕분이다. '딸애 덕분에요..'라고..
지난 1997년도 한국의 슬픈 시절, IMF 관리하에 들어갔다고, 쉽게는 한국이 망했다고 전해 들은 곳은 호주의 시드니였다. 생전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나가서 10개월여쯤 되었던 것 같다. 한국이 망했다니.. 귀국하여 한국을 살려야겠다 라고,, 했으면 좋았겠지만 단순히 한국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 예정보다 2개월 일찍 귀국을 하였고 그 이후로 기회가 되면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이후 1년 정도 LA에 시장을 개척한다는 기치(?) 아래 국가가 발행해준 여권을 가지고 머물렀던 적은 있었지만 2011년 결혼하고 그 해 10월에 딸애를 만나고 나서 이때가 기회다 하면서 미국행을 준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전 언제쯤인가? 1년 정도 지냈었기 때문에 막연하고 낯설지 않았던 점도 있었고, 워낙에나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이 좋았던 나였기에 마음이 들떴었다. 그렇게 준비하여 11월에 다시 미국, LA 땅을 밟았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것은 진리이다. 그 당시 어찌어찌 일을 만들었던 것도 나의 마음이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었을까? 아니,, 딸애의 기운이 그리 만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미국에서 8년이라는 시간을 지냈지만, 요즘 같이 힘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사람이 문제일까? 아니 나 자신이 문제일 것이다. 사람에게 상처 받는 것도 나의 문제라고 생각해야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힘든 시기에 또 하나의 생명을 만났다. 둘째,, 늦둥이가 생겼다.
둘째 덕분에 다시 LA로 돌아왔다. 나에게서 LA는 어떤 곳일까?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첫째, 둘째가 이끈 곳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 덕에 그동안 이곳 미국에서 지내는데 받침이 되어온 땡땡민박을 뒤로하게 되었다. 항상 입버릇처럼 하던 '땡땡민박을 접게 되면 리얼하게 책 한 권 쓴다'라고 했는데.. 과연 가능할까? 어쨌든 그 시작으로 이렇게 온라인에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2020년도 벌써 3개월이 지나간다. 오늘도 반길만한 좋은 소식이 아닌, 역시나 하면서.. 아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직인가.. 하면서 그래도 새롭게 시작해 보기로 했다. 땡땡민박 이야기를..